프랑스 왕을 공포에 떨게 한 '검은 함대'의 여왕

남편의 복수를 위해 해적이 된 귀족 부인, 잔 드 클리송의 전설과 진실

by 김형범

상상해 보세요.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 위로, 마치 지옥에서 온 듯한 배 세 척이 미끄러지듯 나타납니다. 선체는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고, 그 위에는 핏빛처럼 붉은 돛이 펄럭이고 있죠. 이 '검은 함대'가 나타났다는 소식만으로도 14세기 프랑스 해군은 공포에 질려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함대를 이끄는 선장은 놀랍게도 거친 뱃사람이 아닌, 한때 우아한 드레스를 입던 프랑스의 귀족 부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잔 드 클리송,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드라마틱한 복수극의 주인공입니다.


그녀가 처음부터 칼을 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브르타뉴 지방의 유력한 귀족 가문 출신인 잔은 남편 올리비에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343년, 그 평화는 프랑스 왕 필리프 6세의 잔인한 음모로 산산조각이 나버립니다. 국왕은 축제를 핑계로 올리비에를 파리로 초대해놓고는, 그가 영국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씌워 재판도 없이 처형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왕은 본보기를 보인다며 남편의 잘린 머리를 창 끝에 꽂아 성문에 전시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의 처참한 시신 앞에서 잔은 슬퍼하며 우는 대신, 두 아들의 손을 잡고 피의 복수를 맹세했습니다.


그녀는 그 길로 자신의 영지와 보석, 가구까지 모조리 팔아치워 막대한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배 세 척을 사들여 전설적인 '검은 함대'를 조직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고 복수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배를 검게 칠하고 붉은 돛을 달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녀의 함대는 영국 해협을 지나는 프랑스 귀족의 배들만 골라 무자비하게 공격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포로로 잡은 프랑스 귀족들을 직접 도끼로 참수하며 울분을 토해냈고, 왕에게 자신의 복수 소식을 전하게 하기 위해 늘 한두 명의 생존자만 살려 보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녀는 13년 동안이나 바다를 지배하며 '브르타뉴의 암사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흔히 듣는 가슴 뛰는 전설입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이 밝혀낸 진실은 이보다 훨씬 더 냉철하고 전략적이었습니다. 사실 그녀의 배가 실제로 검은색이었거나 그녀가 직접 도끼를 휘둘렀다는 기록은 당대의 문서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후대의 소설가들이 그녀의 비극을 강조하기 위해 덧붙인 극적인 장치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픽션을 걷어낸 진짜 모습은 더욱 놀랍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감정에 휘둘린 복수귀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프랑스와 적대 관계였던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와 손을 잡고, 영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으며 프랑스 왕권을 위협했던 탁월한 군사 지휘관이자 전략가였습니다.


당시 법원 기록은 그녀를 '반역자'로 규정하고 있으며, 영국 측 기록에는 그녀가 영국의 동맹으로서 전쟁을 수행했음이 명확히 남아 있습니다. 즉, 그녀의 '해적질'은 개인적인 화풀이가 아니라, 남편을 죽인 국가 권력에 맞서 자신의 가문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벌인 처절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녀는 훗날 영국 귀족과 재혼하여 평온한 말년을 보냈고, 그녀의 아들은 프랑스 군의 총사령관 자리에 오르며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진짜 복수는 피 묻은 도끼가 아니라, 무너진 가문을 다시 훌륭하게 재건해 낸 그 강인한 생명력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검은 함대의 전설 뒤에는, 시대의 비극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한 여성의 위대한 투쟁이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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