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 2막

영화 리뷰

by 김형범

프롤로그: 서른, 유망주라는 방패가 사라진 자리

누구나 한 번쯤은 발밑이 꺼지는 듯한 아득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 영화의 산실이라 불리는 한예종 영상원과 부산국제영화제가 동시에 서른 살이 된 올해, 우리 앞에 도착한 한 편의 거대한 옴니버스 프로젝트는 바로 그 아득한 심연의 한복판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서른 명의 감독이 참여한 이 여정 중에서도 두 번째 장인 ‘심연’은 관객을 더 깊고 불친절한 수렁으로 안내하며, 우리가 흔히 알던 이야기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장소에서 창작자들이 마주한 가장 솔직하고도 두려운 민낯을 보여줍니다.


이곳은 1막에서 보여주었던 뜨거운 비명과 배설의 열기가 차갑게 식어버린 자리에서 발견한 잔해들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수록된 열 편의 작품 중 상당수는 관객이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과감히 배반하고 이미지와 내레이션의 파편으로 침잠하기를 선택합니다. 서른이라는 숫자는 이들에게 찬란한 성숙의 훈장이기보다 유망주라는 방패를 잃어버린 성년의 가혹한 압박이자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막막한 경계로 다가옵니다.


1. 정재은 <여름 임장, 무성영화>: 멸종의 공포를 넘어선 진화의 생동감

4:3의 고전적인 프레임과 소멸한 소리,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무더운 여름 비닐하우스 속의 지독하게 생생한 질감입니다. 식물을 돌보는 그녀의 시선 끝에는 기후 위기라는 재앙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절지동물들의 생명력이 걸려 있습니다. 감독은 영화계에 닥친 위협을 단순한 멸망이 아닌 새로운 생태계의 탄생으로 바라보는 대담한 나레이션을 던집니다. 마지막 순간, 자신의 몸에 새겨진 전원 버튼을 누르는 그녀의 행위는 낡은 영화의 시대를 '오프(Off)'하고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을 '온(On)'하겠다는 도발적인 선언이자 심연의 바닥을 박차고 올라오는 역동적인 도약입니다.

2. 강미자 <30이라는 거...>: 축제의 가면을 벗긴 서른의 침묵

한예종과 부산 영화제의 30주년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오지만, 정작 카메라는 축하의 말 대신 무표정한 얼굴과 갑자기 쓰러지는 사람들의 피로를 담아냅니다. 30이라는 상징적인 숫자가 주는 실존적 압박 앞에 사람들은 말문을 잃거나 육체적 한계를 드러내며 주저앉습니다. 술집에 마주 앉아 일인이역의 수고를 덜어내며 막걸리를 들이키는 여자의 모습은 "서른은 어때"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직한 대답입니다. 억지로 쥐어짜 낸 소회보다 차가운 술 한 잔에 담긴 침묵이 30년이라는 세월이 남긴 공허와 응축된 에너지를 더 깊게 대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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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동헌 <소리없이 빙긋이>: 무너진 현장에서 건져 올린 유대의 미소

밤늦게 조깅을 하던 중 마주한 감독과 배우, 그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은 영화가 엎어졌다는 실패의 기록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와 다른 줄 알았으나 결국 모두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본'처럼 외우며 산다는 배우의 고백은 심연의 바닥에서 발견한 가장 따뜻한 임계점입니다. 감독은 어떤 위로의 말도 찾지 못한 채 그저 소리 없이 빙긋이 웃어 보이지만, 그 찰나의 미소는 언어를 초월한 깊은 공감과 연대를 형성합니다. 각자의 길로 흩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실패한 현장 너머에서도 여전히 계속되는 영화의 질긴 생명력을 목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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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심연의 풍경들: 서사를 넘어선 이미지와 성찰

탈서사와 감각의 순수성: 정윤석의 <PARDIN>은 섹스토이라는 세속적 가공물이 문화적 오해를 통해 숭고한 신화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오점균의 <시간의 몸>은 유화의 거친 물성과 교미의 이미지를 빌려 영화를 생물학적 보존 본능으로 정의하고, 명소희/새훈의 <너무 늦게 당신에게>는 불탄 흔적과 도심의 풍경을 관조하며 상실의 기록을 관조합니다.

서른이라는 실존적 중력: 박다빈의 <서른을 구하라>는 30이라는 숫자가 사라진 세계에서 자신의 나이를 구출해 당차게 내딛는 한 걸음을 판타지로 그려내고, 김형구의 <TRICET, 서른>은 아빠의 과거와 딸의 현재를 겹쳐 보며 30년이라는 세월의 부침을 묵묵히 받아들입니다.

관계의 잔상과 창작의 메타포: 차성덕의 <방문>은 거실의 창문을 스크린으로 치환해 모르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창작자의 근원적인 거리를 포착하고, 김경래의 <조베이데>는 살의와 낭만이 미술관의 관람으로 이어지는 순환을 통해 예술과 폭력의 기묘한 공생 관계를 파고듭니다.


에필로그: 심연의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역동적 임계점

결국 2막의 작품들은 인과(Causality)라는 논리적 뼈대를 스스로 걷어내거나, ‘창작과 영화’라는 깊은 서브텍스트를 통해 관객에게 쉽사리 문을 열어주지 않는 불친절함을 자처합니다. 그러나 이 심연은 단순히 소멸하는 바닥이 아닙니다. 계속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바닥을 치고 다시 솟구칠 것인가를 결정짓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응축된 임계점입니다. 이야기라는 필터를 제거했을 때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영화 본연의 맨얼굴, 그 고민의 깊이가 심연의 바닥을 깊게 파고 내려간 만큼 반작용으로 터져 나올 3막 ‘폭발(IMPACT ZONE)’의 에너지는 더욱 파괴적이고 강렬할 것이라는 확신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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