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트럭의 비명과 어느 탈출자가 남긴 인류 최악의 기록
발바닥을 파고드는 진흙의 냉기보다 더한 것은 등 뒤에서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채찍의 감촉이었습니다. 폴란드 헤우름노의 짙은 숲속, 사내들은 짐승처럼 헐떡이며 지름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구덩이 쉰 개를 파 내려갔습니다. 삽날이 얼어붙은 땅을 긁는 소리만이 가득한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파는 이 거대한 아가리가 결국 누구를 집어삼킬지 알지 못했습니다. 등에 닿는 채찍 자국이 몇 줄기로 늘어나든 상관없었지만, 발바닥의 상처가 덧나 걸음을 멈추는 날에는 곧장 저 구덩이 속으로 던져질 것이라는 공포만이 사내들의 마른 근육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어느 날 정적을 깨고 먼지를 일으키며 들어온 군용 트럭들은 기이할 정도로 친절한 풍경을 연출했습니다. 나치 경비병들은 공포에 질린 유대인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짐을 옮겨주었고, 노동 정착지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장교의 매끄러운 목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졌습니다. 깨끗한 옷과 정기적인 임금을 약속받은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독을 위해 샤워실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것은 타일이 깔린 욕실이 아니라, 검게 그을린 철갑을 두른 거대한 트럭의 뒷문이었습니다. 문이 닫히고 빗장이 걸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린 직후, 차체 바닥에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일산화탄소가 쏟아져 들어갔습니다. 철판을 두드리는 절박한 손톱소리와 숨을 몰아쉬는 비명은 공회전하는 엔진 소음에 묻혀 희미하게 사그라졌습니다.
창고에서 유대인들의 옷가지와 현금을 분류하던 미하일과 솔로몬은 그 죽음의 트럭이 숲으로 향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잠시 후 숲속 구덩이 앞에 멈춰 선 트럭의 문이 열리자, 그곳에는 샤워를 기대했던 사람들이 엉킨 채 쏟아져 나왔습니다. 시신을 수습하던 미하일의 손이 어느 순간 경련하듯 멈춰 섰습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시신 더미의 가장자리, 그곳에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온기를 나누었을 가족의 눈동자를 마주한 남자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흙바닥을 긁어댔습니다. 자신도 이 구덩이에 묻어달라는 애원은 비정한 숲의 나무들 사이로 흩어질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죽음보다 질긴 생존의 의지는 피비린내 나는 시신 더미 속에서 싹텄습니다. 동료 울프가 남긴 날카로운 유리 조각 하나를 쥐고, 미하일과 솔로몬은 달리는 트럭의 천막을 찢어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뒤쫓아오는 총성 아래 강물을 헤엄치고 나치 장교의 오토바이를 훔쳐 타며 사선을 넘나든 그들의 손에는, 반드시 세상에 알려야 할 지옥의 지도가 들려 있었습니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전달한 증언은 '그로야노프스키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폴란드 저항군을 거쳐 영국 런던에 도달했습니다.
1942년 6월 26일, 마침내 BBC 라디오의 전파를 타고 흘러나온 그들의 목소리는 나치가 필사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절멸 수용소의 실체를 전 세계에 알린 최초의 공식적인 폭로가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안타깝게도 종전 직전 베우제츠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으나, 끝내 살아남은 미하일은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의 증언대에 섰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가스 트럭의 매연과 가족의 마지막 얼굴을 세상 앞에 다시금 꺼내 놓으며 나치의 죄악을 영원한 역사의 기록으로 아로새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