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의 범죄자를 검거한 기네스 기록 보유자의 이야기

붓으로 악을 심판하는 화가, 로이스 깁슨

by 김형범

예술은 흔히 아름다움을 찬미하거나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 그림은 흉악범을 잡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캔버스 대신 갱지를, 물감 대신 목탄을 들고 세상의 어둠을 그려내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 초상화는 갤러리에 걸리는 대신 전단지에 인쇄되어 거리를 나뒹굴지만, 그 그림 한 장이 가진 힘은 수십 명의 수사관보다 강력합니다. 바로 기네스 세계 기록이 인정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몽타주 아티스트, 로이스 깁슨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휴스턴 경찰국 소속의 로이스 깁슨은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아닙니다. 그녀는 1,200명이 넘는 범죄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일반적인 수사관들이 평생 한 번 마주치기도 힘든 수많은 사건을 그녀는 오직 연필과 지우개만으로 해결해 왔습니다. 그녀가 그린 얼굴은 살인, 강간, 유괴 등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법의 심판대 위에 세웠으며, 이 놀라운 기록은 기네스북에 '가장 많은 범인을 식별한 아티스트'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이토록 집요하게 범죄자의 얼굴을 쫓게 된 배경에는 씻을 수 없는 개인적인 비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971년, 스물한 살의 꿈 많던 무용수이자 모델 지망생이었던 깁슨은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괴한에게 끔찍한 성폭행과 폭행을 당했습니다. 목이 졸리고 피투성이가 된 채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당시의 수사 기술로는 범인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범인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의 무력감과 공포는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붓을 잡고 범죄와의 전쟁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로이스 깁슨의 작업 방식은 단순히 목격자의 진술을 기계적으로 옮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기 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얼어붙은 기억을 해동시킵니다. 공포에 질려 왜곡되거나 잊어버린 범인의 인상을 심리 상담가처럼 조심스럽게 끄집어내는 것이야말로 그녀가 가진 진짜 능력입니다. 그녀는 최첨단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닌 투박한 파스텔과 목탄을 고집하는데, 이는 인간의 미묘한 표정과 분위기를 담아내기에는 여전히 사람의 손이 가장 정확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이러한 신념은 수많은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2007년, 갤버스턴 해변에서 발견된 신원 미상의 여아 시신 사건, 일명 '베이비 그레이스'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을 바탕으로 그녀가 복원해 낸 아이의 얼굴은 너무나 생생했고, 이 그림이 공개되자마자 아이의 할머니가 손녀를 알아보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습니다. 이처럼 그녀의 그림은 죽은 자에게는 이름을, 산 자에게는 정의를 되찾아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로이스 깁슨의 삶은 한 개인의 비극이 어떻게 사회를 위한 헌신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함으로써, 수천 명의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를 위로하고 가해자들에게는 반드시 잡힌다는 두려움을 심어주었습니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로이스 깁슨은 자신의 낡은 스케치북과 그 속에 담긴 1,000여 명의 얼굴들로 답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꿰뚫어 보는 그녀의 눈과 손은 오늘도 정의가 필요한 곳에서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