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이라는 오답 노트를 덮고 다름이라는 지도를 펼칠 때

365일 중에 하루, 2월 23일

by 김형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주고받는 대화 속에는 아주 미세하지만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단어의 혼동이 숨어 있습니다. 친구와 식사 메뉴를 고르거나 동료와 업무 방향을 논할 때, 우리는 무심코 "너는 생각이 틀려"라고 말하곤 합니다. 사실 이 문장은 논리적으로 어색합니다. 정답이 정해진 수학 문제라면 틀릴 수 있겠지만,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취향은 오답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소한 단어의 뒤섞임은 생각보다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틀리다'라는 말은 상대를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며, 대화의 문을 닫고 승패를 가르는 심판의 자리로 우리를 이끕니다. 갈등은 대개 이렇게 상대의 고유함을 나의 잣대로 재단하며 '다름'을 '틀림'으로 잘못 읽는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언어적 오해가 쌓여 거대한 벽을 쌓는 것을 경계하고, 서로의 다름을 연결의 통로로 바꾸고자 약속한 특별한 날이 있습니다. 바로 매년 2월 23일, '세계 평화와 이해의 날'입니다. 1905년 미국의 변호사 폴 해리스를 포함한 네 명의 인물이 시카고의 작은 사무실에서 우정과 직업 윤리를 나누려 모인 날이 이 기념일의 뿌리입니다. 오늘날 국제로타리의 창립 정신을 이어받은 이 날은 전 세계적인 평화의 상징입니다. 이 날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평화란 단순히 총성이 멎은 상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개인들이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사이를 '이해'라는 실로 꿰매어 나가는 능동적인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365일 중 단 하루라도 전 세계가 멈춰 서서 타인의 입장을 헤아려 보자는 이 약속은, 결국 '나와 같지 않음'이 '나와 적대함'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일상을 평화롭게 가꾸기 위해 필요한 '공감의 기술'은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상대방이 서 있는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은 마치 낯선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상식이 누군가에게는 낯선 풍경일 수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상대를 향한 공격적인 방어기제는 힘을 잃습니다. 공감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동조하는 것을 넘어, 상대의 삶이 빚어낸 독특한 문법을 존중하는 지적인 노력입니다.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욕구와 배경을 잠시나마 궁금해하는 호기심은 '틀림'이라는 단정적인 판결을 '다름'이라는 유연한 관찰로 바꿉니다. 이러한 변화는 대화의 목적을 상대를 굴복시키는 일에서 서로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로 바꿉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평화가 모여 세계 평화를 이룹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를 정교하게 다듬는 일은 타인의 존재 가치를 긍정하는 가장 기초적인 평화 운동입니다. '틀리다'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을 때 우리 사이에는 높은 성벽이 쌓이지만, '다름'을 입 밖으로 낼 때 그 성벽은 비로소 서로를 오갈 수 있는 다리가 됩니다. 2월 23일이 전하는 숭고한 뜻은 거창한 구호에 머물지 않고, 오늘 내가 마주한 사람의 의견을 오답 취급하지 않는 태도에서 완성됩니다.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밀어내지 않고, 그 차이를 풍요로운 다양성으로 껴안는 공감의 기술이야말로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평화의 시작입니다.

작가의 이전글엉뚱한 호흡: 항문을 통한 숨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