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옹졸함이 밖으로 나왔던 기억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치기 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영화인 재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독립영화 감독이나 조연출로 상업감독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고, 교육을 이수하면 소정의 교육비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여러 커리큘럼 중에는 성인지 교육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화계 내부 인사들로 구성된 '든든' 같은 전문 센터가 교육을 전담하는 지금과 달리, 당시는 제도가 막 자리 잡아가던 초창기였다. 그래서 강단에 선 강사는 영화 현장과는 전혀 연이 없는 외부인이었다.
강사의 낯선 시각이나 다소 어색한 예시들까지는 충분히 수긍하며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강의 주제가 '영화 감독의 성비 불균형' 문제로 넘어갔을 때, 마음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는 성별을 떠나 그저 '영화 감독'이라는 꿈 하나를 위해 치열하게 버티는 지망생들이었기 때문이다. 생존과 데뷔가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같은 거시적인 통계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현실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출발선에서 발버둥 치는 도전자들에게 그것을 염두에 두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런 구조적인 문제는 현장의 자본을 쥔 제작자나 영화진흥위원회의 고위 간부들이 고민하고 책임져야 할 몫이 아닌가. 왜 하루살이 같은 지망생들에게 이런 무거운 잣대를 들이미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결국 억눌렀던 감정은 비뚤어진 방향으로 터져 나왔다. 열이 잔뜩 오른 나는 강사가 설명하는 내용 속 모순점들을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논리를 무기 삼아 끊임없이 반박하고 물고 늘어진 끝에, 외부에서 온 강사는 곤혹스러워하다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그때의 기억을 가만히 되짚어보면, 헛웃음이 날 만큼 얼굴이 화끈거린다. 시스템의 불합리함에 대한 분노와 데뷔를 향한 막막함을, 그저 내 눈앞에 서 있던 강사에게 화풀이하듯 쏟아낸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토록 찌질하고 옹졸한 치기가 또 있었을까. 절박함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타인에게 무례를 범했던 그 날의 미숙함이, 가끔씩 씁쓸한 자화상처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