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우주에서 공정을 외치다
2009년, 한국 사회에 상륙한 작은 직사각형의 기기는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4번째 거대한 지각변동의 신호탄이었습니다. 내 손안에 쥐어진 스마트폰은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라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재편하는 마법의 상자였습니다. 이전 세대들이 물리적인 현실 세계에서 투쟁하고 생존하며 정체성을 형성했다면, 아이폰과 함께 등장한 이 새로운 인류는 삶의 무게중심을 아예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버렸습니다. 접속하는 곳이 아니라 생활하는 곳으로서의 인터넷, 그 완벽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시대가 막을 올린 것입니다.
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며 마주한 경제적 현실은 이전 세대들과는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86세대가 누렸던 끝없는 고도성장의 에스컬레이터도, IMF 세대가 겪었던 갑작스러운 추락의 낭떠러지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에게 저성장이란 태어날 때부터 굳게 닫혀 있던 문이자 결코 변하지 않는 상수였습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지고 부모보다 가난해지는 첫 번째 세대라는 우울한 꼬리표 속에서, 이들은 팽창을 멈춘 제로섬(Zero-sum) 사회의 척박한 공기를 호흡하며 자라났습니다.
시선이 각자의 작은 화면으로 향하면서,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묶어주던 공동의 경험은 빠르게 증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온 국민이 같은 시간대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국민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었고, 시대의 화두를 던지는 매스미디어라는 거대한 구심점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초연결이라는 눈부신 기술은 역설적이게도 모두가 함께 서 있던 그 거대한 광장을 흔적도 없이 해체해 버렸습니다.
거대한 광장이 사라진 자리에는 알고리즘이 창조한 5천만 개의 우주가 들어섰습니다. 스마트폰은 철저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동의하는 것,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끊임없이 선별하여 눈앞에 대령합니다. 같은 한국이라는 물리적 영토 안에 살아가고 있지만, 정신적인 시공간은 각자의 취향과 알고리즘에 의해 조각조각 나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5천만 명의 인구가 5천만 개의 각기 다른 진실과 세계관을 바라보는 극단적인 파편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파편화된 개인들은 거대 담론이나 묵직한 이념 대신, 아주 미시적인 취향과 관심사를 매개로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마이크로 부족(Micro-tribes)이라 불리는 이 새로운 사회적 형태는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는 그 어느 때보다 끈끈하고 촘촘하게 연결되지만, 내 관심사 밖의 타인과는 아예 세계관 자체가 단절되어 버리는 기이한 현상을 낳았습니다. 알고리즘이 만든 투명한 벽, 즉 필터 버블에 갇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이해할 기회조차 잃어버리는 극심한 양극화의 부작용이 싹트게 된 것입니다.
닫혀버린 경제적 파이와 투명하게 통제되는 알고리즘 환경의 결합은 이 세대에게 완전히 새로운 시대정신을 부여했습니다. 파이가 더 이상 커질 수 없다면, 적어도 그 파이를 나누는 룰만큼은 기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투명해야 한다는 맹렬한 집착입니다. 이들은 누군가 억지로 결과를 똑같이 맞춰주는 결과의 평등을 위선이라 부르며 불신합니다. 대신, 출발선과 경기 규칙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과정의 공정성에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불의에 맞서는 투쟁의 방식조차 바꿔놓았습니다. 윗세대가 길거리에 모여 스크럼을 짜고 이념의 깃발을 흔들었다면, 이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해시태그를 달고 좌표를 찍으며 불매운동을 벌입니다.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누가 룰을 어기고 무임승차를 했는가라는 불공정의 이슈 앞에서, 이들은 디지털 심판자가 되어 순식간에 뭉치고 또 순식간에 흩어지는 무섭고도 실용적인 연대 방식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투명한 공정성을 향한 갈망이 때로는 차가운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합니다. 기득권의 부조리를 깨부수는 강력한 무기임은 틀림없지만, 구조적 모순이나 개인의 서사를 지워버린 채 오직 시험 점수와 절차적 결과만을 맹신하는 능력주의의 칼날로 돌변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맥락이 거세된 기계적인 공정함은 자칫 경쟁에서 뒤처진 약자를 향한 최소한의 배려와 사회적 포용력마저 거두어버리는 비정한 결과를 낳을 위험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1987년의 이념, 1994년의 취향, 1997년의 생존, 그리고 2009년의 공정까지 우리는 총 4개의 거대한 지층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거실에는 이토록 서로 다른 4개의 OS(운영체제)가 쉴 새 없이 부딪히며 갈등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다름은 단순히 나이가 달라서, 혹은 누군가가 틀려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맹렬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파도가 각자의 삶에 남긴 흉터이자, 시대의 압박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 온 눈물겨운 결과물입니다. 서로의 내면에 새겨진 이 치열한 궤적을 꼬리표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파편화된 우주를 넘어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진정한 대화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