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쿵쿵_01

[단편 소설]

by 김형범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비치는 복도식 아파트다.


교복 차림의 민준은 난간에 기대어 무심하게 풍경을 보고 있었고, 그 곁에서 서연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리링'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육중한 현관문이 열렸다.


서연은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민준을 힐끗 쳐다보더니,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어...?" 홀로 남겨진 민준이 당황해 멍하니 서 있는 사이 문이 매정하게 닫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민준이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자, 다시 빼꼼히 열린 문틈 사이로 서연이 까르르 웃으며 나타났다.


그제야 민준은 서연의 웃음을 보고서 안심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옅은 한숨이 흘러 나왔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서연은 익숙한 듯이 가방을 구석에 던져두고 선풍기 바람 앞에 자리를 잡았다.

낮선 집이 는 기묘한 긴장감에 민준은 차마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뼛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 마실래?"

"응."


서연이 건넨 시원한 물 한 잔을 민준은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감각에 용기가 생겼을까. 빈 컵을 든 민준은 돌연 서연이 앉아 있는 의자 쪽으로 성큼 다가갔다.

순식간에 훅 좁혀진 물리적 거리. 서연의 어깨가 움찔하며 굳었다.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눈을 감고 입술을 살포시 내밀었다. 찰나의 정적이 흐르고, 감은 눈꺼풀 너머로 민준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너 긴장했구나?"

"아, 뭐야 진짜!"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오른 서연이 민준의 배를 퍽 때렸다.

민준은 기다렸다는 듯 "윽!" 소리를 내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당황한 서연이 화들짝 놀라며 다가왔다.


"헉, 야! 괜찮아?"


진심으로 걱정되는 목소리였다.

이때 민준이 슬쩍 고개를 들며 씩 웃어 보였다.

엄살임을 깨달은 서연은 "죽을래!"라며 씩씩거렸지만, 두 사람 사이를 감돌던 어색한 기류는 어느새 풋풋한 장난기로 바뀌어 있었다.


같은 시각, 아파트 1층 현관에는 또 다른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경비실 앞에서 한가롭게 부채질을 하던 아저씨를 지나쳐, 한 여자가 바쁜 걸음으로 들어섰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과외 선생이었다.


그녀는 어깨에 흘러내린 가방끈을 거칠게 고쳐 매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오늘따라 유난히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약속된 수업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와 있었다.

그녀는 익숙한 층수를 누르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흐트러진 매무새를 정리했다.

잠시 후 벌어질 폭풍 같은 상황은 꿈에도 모른 채, 그녀를 실은 엘리베이터가 고요하게 위층으로 향했다.


방 안 침대 위, 민준과 서연은 나란히 붙어 누워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민준의 핸드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은밀한 영상의 소리보다, 서로의 어깨가 맞닿은 곳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온기가 더 자극적이었다.

민준은 타들어 가는 목을 축이려 마른침을 삼켰고, 서연의 눈동자는 잔뜩 긴장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묘한 공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금기된 영역을 엿보는 듯한 아슬아슬한 정적을 깨뜨린 것은 거실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진 서연의 핸드폰 벨소리였다.

두 사람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거실로 나갔다. 서연은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엄마."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속사포 같은 잔소리가 쏟아졌다.

밥은 챙겨 먹었는지, 학원 숙제는 다 했는지 묻는 일상적인 목소리였지만, 죄지은 아이들처럼 두 사람의 심장은 요동쳤다.


서연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쿨한 척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뱉기도 전, 적막을 날카롭게 찢는 소리가 들려왔다.


(딩동— 딩동—)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에 두 사람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현관문 밖에는 가방을 멘 과외 선생이 서 있었다.

그녀는 문을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연아! 안에 있니? 선생님 왔어, 문 열어!"


민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서연은 급히 민준의 입술 근처에 검지손가락을 갖다 대며 '쉿' 신호를 보냈다.


"가만히 있어. 그냥 없는 척하면 돼."


두 사람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현관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구두 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작가의 이전글스마트폰이 해체한 광장과 공정룰을 향한 신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