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가 아닌 캐릭터와 서사가 이길 때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증명한 진짜 다원성

by 김형범

대중문화계에서 '정치적 올바름(PC)'은 일종의 양날의 검이 되어버렸다. 당위성은 인정받지만, 그것이 작품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로감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거둔 성취는 매우 흥미롭다. 이 영화는 최근 할리우드의 PC 표방 영화들이 노출했던 한계들을 영리하게 돌파하며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동시에 끌어냈다. 그 성공의 이면에는 억지스러운 주입 대신 '자연스러움'을 택한 세 가지 확고한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첫째, 이야기와 캐릭터의 완벽한 조화다. 최근 디즈니의 <인어공주>나 <백설공주> 실사화 프로젝트가 맞닥뜨린 거센 비판의 핵심은 '원작의 훼손' 그 자체보다 '강제성'에 있었다. 수십 년간 대중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클래식 서사의 뼈대 위에 현대적 가치관을 무리하게 덧씌우려다 보니, 캐릭터는 겉돌고 구조는 뒤틀려버렸다. 반면 케데헌은 처음부터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한 오리지널 IP다. K팝 아이돌과 퇴마라는 독창적인 무대 위에서, 인물들은 어떤 메시지를 대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움직인다. 메시지가 서사를 짓누르지 않기에 작품은 온전한 오락으로서의 생명력을 얻는다.


둘째, 설정 자체가 부여하는 인종적 개연성이다. 서구권 메이저 영화들은 다양성 할당제를 의식한 나머지, 하나의 공동체 안에 온갖 인종을 작위적으로 섞어 배치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이는 오히려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케데헌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K팝 씬'이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삼아 이 딜레마를 원천 차단했다. 등장인물의 대다수가 한국인, 혹은 아시아인인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억지로 인종의 비율을 맞추려 노력하지 않고도, 결과적으로는 글로벌 애니메이션 시장에 '매력적인 아시아계 주연 서사'를 선보이는 값진 성취를 이루어낸 것이다.


셋째,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바로 '여성의 욕망'을 다루는 방식이다. 기존의 PC 영화들이 빠지기 쉬운 가장 큰 함정은 여성 캐릭터를 '무결점의 도덕적 영웅'으로 박제해 버리는 것이다. 결점이 없고 완벽하기만 한 캐릭터는 필연적으로 평면적이고 지루해진다. 그러나 케데헌의 주인공들은 다르다. 그들은 완벽하지 않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하는 세속적인 야망, 라이벌을 향한 노골적인 질투, 그리고 내면의 깊은 결핍까지 인간의 입체적인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영화는 이들을 가르치거나 훈계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이 부딪히고 연대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은 명확하다. 관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 옳은가'를 가르치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증명하는 잘 만들어진 서사다. 다양성과 올바름이라는 가치는 억지로 주입할 때가 아니라, 단단한 세계관 속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쉴 때 비로소 관객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단순하고도 강력한 진리를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증명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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