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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cake Sep 15. 2023

수많은 글 속에서

브런치 첫 글

  내 기억력이 썩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시작한 순간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욕심이 많았고 자존심도 셌던 터라, 학원에서 수업이 끝난 후 남아서 공부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창피해했다. 그런 내가, 울면서 딱 2번 나머지 공부를 했던 순간이 있었다. 바로 ‘단어 테스트’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영어단어를 잘 외우지 못했다. 영어단어뿐만이 아니었다. 학교 시험 중 ‘법과 정치’와 같은 암기과목에 취약했고, 가장 완벽한 공부방식이 암기인 내신보다는 수능에서의 결과가 더 좋았다.


  지금도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음을 스스로 느낀다. 인상 깊게 보지 않은 영화나 책들의 내용은 2주면 잊게 되고, 재밌게 봤던 작품들도 전반적인 분위기나 내가 느꼈던 감정들 정도만 기억난다. 누군가가 ‘이 영화 알아? 이거 되게 재밌게 봤는데’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쉽게 안다고 대답할 수 없다. 그다음 이어질 대화에 제대로 장단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글쓰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을 적었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수첩에서 시작했고, 그다음은 스프링노트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내 스터디플래너 속 작은 공간에 매일마다 써놓은 일기와 생각들이 담겼고, 20살이 넘어서는 노트북에 내 글들을 담았다. 기록하기 위한 개괄식 글부터 미완성된 글들, 정갈하게 쓴 글까지. 그 순간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 분위기와 감정을 다시금 느끼기 위해 글을 쓰고 읽기를 반복한다.

  

  내 글의 독자는 대부분 나였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글을 올려보기도 하였지만, 그 글들 역시 독자를 ‘나’로 설정하고 쓴 글들이다. 내가 쓰고, 내가 읽고, 내가 기억하기 위해 남겼다.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는 궁금하다. 내가 쓴 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짜임으로 보일까? 내 글에 공감이 되거나 생각이 잠기게 되는 부분이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내 글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었으면, 생각의 전환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첫 글을 써본다.


  브런치에 작성된 여러 글들을 읽어보니, 글마다 각 작가분의 개성이 드러났다. 문장과 어휘에서 풍기는 작가분들의 매력, 작가분들의 본업이 묻어나는 필력에 감탄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 이곳에 담길 내 글들은 나를 대변하고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어떤 모습일까. 수많은 글 속에서 ‘글 하나’로 나를 드러내는 방법을 터득해보고 싶다. 글쓰기로 나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들도 본인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행위로 인해 타인에게 좋은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작게는 소박한 선물부터 크게는 그동안 해왔던 영상제작까지. 감정의 동요를 일으켜 행동의 변화까지 이끄는, 그런 행위들이 나의 삶의 모토가 되었다. 글을 올리면서 나와 독자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나’를 담아낸 글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씹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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