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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ka GG May 01. 2020

'코로나'가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제주에서 숙박업 하는 스타트업의 생존기(1)

**지금 이곳엔 이 멤버가 없습니다 


| 코로나19, 맥주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코로나19? 이거 솔직히 코로나18 아니야?" 


제주에 있는 호스텔에서 세일즈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로컬 콘텐츠를 기반으로 숨겨진 로컬의 가치를 재발견 하고자 두 명의 공동창업자가 시작한 이 사업.

이 작은 회사의 첫 번째 직원이자 스타팅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다.


작년 3월 제주로 이주해 이제 1년 조금 넘은 시간이 지났다. 회사의 나이도 내가 제주에서 보낸 시간과 같다.

운영 시작 후 올해 초까지 약 1년여간의 우리의 실적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숙박업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인 OCC(점유율/가동률)가 평균 80% 이상을 유지했고, 제주의 첫 번째 지점을 시작으로 두 번째 지점 오픈을 준비 중에 있었다. 그리고 전주에 있는 기존 호스텔의 위탁운영도 하나 맡게 되며 이후에 여러 곳에서 위탁운영에 대한 러브콜이 이어졌다. 코로나 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운영에 직격타를 맞았다.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되니 사람으로 채워져야 할 공간은 텅 비고, 도시 전체가 한산해졌다. 결국 준비 중이던 두 번째 지점의 오픈은 무산되고, 맡고 있던 위탁운영도 어렵게 되었다. 한마디로 까딱하면 우린 망하게 생겼다.


제주 구도심에 위치한 호스텔



| 우리가 코로나를 극복하는 방법 

보통 스타트업은 최소의 인력으로 운영을 이어가기 마련인데, 여기에 현장인력이 감축되고 그 자리까지 메워야 하는 상황이다. 힘들다. 그렇다고 이렇게 무너져갈 수는 없었다.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기로 결의를 다지고 비상운영체제에 돌입했다.


제주에서 '방' 대신 돌하르'방'을 팝니다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상황을 개선해 나가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본래 팔아야 할 객실 대신 제주의 상징 돌하르방을 팔기로 했다.


능력자가 많은 우리 팀은 짧은 시간 내에 직접 디자인한 굿즈(goods)를 만들었다. 그리고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시간과 예산이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진행한 것이라 목표성과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지금도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앞으로 롱런하기 위해 유지해야 할 상품군임에 틀림없다.




산지직송 멜(멸치)을 튀깁니다

호스텔 1층에는 7평짜리 작은 공간이 있다. 이전까지는 바(bar)로 운영하며 체크인하는 게스트에게 웰컴드링크도 제공하고, 직접 개발한 칵테일과 로컬 생맥주를 팔았다. 그리고 리셉션도 겸하고 있어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으로써의 역할을 해왔다.


F&B 공간으로 활용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사이즈의 1층 공간


이 작은 공간에 많은 것이 혼재되어 있다 보니,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매출을 내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특단의 결정을 하게 된다.  


"멜튀김 전문점으로 가시죠!"

처음엔 의아했다. 멜튀김? 이름조차 생소한 이 메뉴. 그것도 이거 하나만 파는 전문점을 하겠다고?

그런데 우리에겐 캐나다와 덴마크 유수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유능한 셰프가 있다. 올해 초 새롭게 합류한 또 한 명의 능력자. 튀김옷부터 플레이팅까지 여유롭지 않은 시간 속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쏟아부은 테스트를 통해 결국 만들어 냈다.


정말 물릴 때까지 먹어보며 테스트했다


A: "대~박!! 멜 튀김이 이런 맛이었어?"  

(제주에서 일하고 있지만 팀원 중 제주 토박이는 한 명도 없다)

B: "우리 이러다 영화 극한직업처럼 의도치 않게 초대박 나는 거 아니야?"

A: "그럼 어떡하지?"

모두가 한 목소리로: "어떡하긴~ 바로 프랜차이즈 시작해야지!"


설레발도 이런 설레발이 없다. 테스트할 때마다 모두 모여 시식을 한 덕에 뱃살과 함께 인자함을 더해주는 두 개의 턱을 갖게 되었지만, 멜튀김 판매에 대한 충분한 가능성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멜맥집을 운영한다. 멜튀김과 맥주의 조화다.



코로나로 인해 운영의 여러 상황들이 바뀌었지만, 로컬에 기반한다는 회사 방향성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사실 멜튀김 역시도 제주 로컬들이 즐겨먹는 음식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마침 제주항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산지직송의 싱싱한 멜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요즘이다.


이렇게 리뉴얼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멜맥집은 나름 선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7평의 기적이 시작되는 걸까.



어제부터 황금연휴가 시작되며 제주에는 반짝 호황이 찾아왔다. 오랜 침체기 속에서 잠시나마 활기를 찾은 도시가 보기 좋기도 하지만, 아직 코로나가 박멸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휴 끝에도 모든 것이 무탈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힘든 시기를 하루하루 견딜 수 있는 건, 어려움을 함께하기로 한 팀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세하고 작은 스타트업에 제 발로 찾아온 사람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개성이 뚜렷하고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가끔 '이 사람들 왜 여기서 일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일할 때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놀 때는 저세상 텐션을 보여주는 반전매력의 소유자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봐도 희극'인 팀원들의 이야기는 차차 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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