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친언니를 / 친동생을 사랑하시나요?'
'(너와 내가 동시에) 아뇨.'
너의 일기에는 그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 우리에게 서로를 사랑하는지 물으면 우리는 동시에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너의 일기는 네가 우리가 함께 보내던 밤을 얼마나 좋아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늦은 밤에 시작해 동틀 녘까지 이어지곤 했던, 우리의 새벽 번개 모임을. 너의 조심스러운 노크, 눈부시게 샛노랗던 내 방의 전등, 곁에 누워 코를 골고 자던 강아지, 엄마 몰래 끓여 먹던 컵라면과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던 자매의 대화. '자매 사이의 관계는 독특하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문장에 앞서 너는 이렇게 무심히 덧붙였다. 그 말이 결국 '나는 너를 사랑해'와 다르지 않음을 알아서. 나는 너를 위해 울었다. 일기가 쓰여진 공책은 마치 나를 보고 읽으라는 듯 책꽂이 가장 잘 보이는 부분에 꽂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8년도 더 된, 우리가 고등학생일 때 쓰여진 이 짧은 일기는 네가 죽기 전 가족에게 남긴 유일한 노트였다.
너는 자살했다고 했다. 거짓말,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어. 핸드폰 너머 남동생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남동생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지 횡설수설했다. 네가 서울집에서 죽었고, 남동생은 엄마 아빠와 함께 공항으로 가고 있고, 경찰이 너를 발견했고.... 정보는 조각조각 흩어져 하나도 연결되지 않았다. '제발 제대로 좀 말해봐. 나는 여기서 아무것도 모르잖아.' 나는 그때 네덜란드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나는 너의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그래서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깜빡이는 카톡 전화 화면을 붙잡고 남동생의 한 마디마다 다섯마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거듭 네가 완전히 죽은 거냐고 물었다.
'완전히 죽은 거야? 병원도 아니고, 완전히?'
'응.'
나중에 듣기로 너는 죽은 지 하루가 더 지나서야 발견되었다고 했다. 너와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된 부모님이 경찰에게 집을 확인해달라고 했고 문을 따고 들어간 경찰들을 너는 죽은 몸으로 맞이했다. 경찰이 네 죽음을 부모님에게 전하고, 부모님이 남동생에게 전하고, 남동생이 다시 내게 전하는 동안 너는 점점 더 하얗게 질려갔을 것이다. 내가 너의 죽음에 데이기 한참도 전에 네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날은 마침 학교 시험이 전부 끝난 다음 날이었다.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할 생각에 들떠 있던 하루는 모두 없던 일처럼 바스러졌다.
나는 너의 장례날에 꼭 맞춰 한국에 도착했다. 스키폴 공항. 인천공항. 김포공항. 제주공항. 그 모든 공항들을 전전하는 긴 여정이 단 이틀만에 이루어졌다. 너와 나의 거리가 이렇게 멀고 또 이렇게 가깝구나 하고 생각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게이트를 빠져나오고 나서야 나는 내가 한국에서 쓸 수 있는 카드를 하나도 들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어디로도 이동할 수 없어 공항에 갇혔고, 제주로 가기 위해 김포공항에 먼저 도착해 있던 나의 사촌 언니는 다시 인천공항까지 나를 데리러 와야 했다. 사촌 언니는 한국에서 재회한 첫번째 가족이었다. 나의 친절한 사촌 언니. 검정 옷을 예쁘게 차려 입은. 나는 공항으로 들어선 언니를 보자마자 의무감에 울상을 지었다. 어쩐지 비행기에서 내내 흐르던 눈물이 거짓말처럼 나오지 않았다. 아마 언니는 내가 억지로 우는 척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눈물 연기를 못하는 아마추어 배우 같다 생각했을 것이다.
언니와 나는 공항철도를 타고 함께 김포공항으로 이동했다. 지하철 안은 거대한 캐리어를 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 앞에서 등에 달린 백팩 하나 뿐인 내 짐은 초라하다. 캐리어들 틈을 비집고 앉은 지하철 좌석 끝자리에서 우리는 한 시간을 내리 달렸다. 서울집에서 죽은 너를 가장 먼저 본 가족은 서울에 살고 있던 큰아빠네였다. 너는 일주일 전 가족들에게 여행을 간다고 말하곤 제주를 떠났고, 내가 대학을 다닐 적에 살던 서울집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 집은 코로나가 터졌던 2년여 동안 우리가 함께 살았던 곳이기도 했다. 사촌 언니가 연락을 받고 네게 도착했을 때 너는 이미 경찰에 의해 거실로 옮겨져 있었다고 했다. 언니는 네가 가지런한 모습이었다고 했다.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네가 안 아프게 죽었다고 했다. 우리가 찾아봤는데 하나도 안 아프대. 그냥 기절하듯이, 잠들듯이 그렇게 간대. 너는 네가 매일 같이 입던 잠옷을 입고 발에는 수면 양말을 신고 있었다. 그 말에 나는 웃었다. 너는 늘 몸이 찬 것을 못 견뎌 했다. 언제나 다 늘어진 나시를 바지 안에 욱여넣고 자기 전엔 수면 양말을 신었다. 나는 네가 무슨 할머니냐고 너를 놀려먹곤 했고 그러면 너는 너의 그 큰 앞니를 드러내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잠자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어. 잠자는 것처럼. 언니는 주문을 외듯이 말했다. 나는 언니에게 네가 베개를 베고 있었는지 물었다. 네가 처음 발견되었던 화장실 안에 베개는 없었다. 나는 네가 수면 양말을 신고 있었다는 말에 웃었고 베개를 베지 않았다는 말에 울었다.
제주에 도착하고 나와 친척들은 곧장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너와 함께 이른 비행기를 탔던 엄마 아빠와 남동생은 장례식장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병원 뒤쪽 구석에 자리한 식장 문을 열자 얼굴이 잔뜩 불은 엄마가 달려 나왔다. 그 뒤로 내 이름을 부르며 휘청거리는 아빠가, 아직 너의 죽음을 의식하지 못한 말간 얼굴의 남동생이 따라 나온다. 우리는 장례식장 한 가운데서 서로를 둥글게 포개어 안았다. 엄마 아빠 입에선 짐승 울음 소리가 났다. 간간이 터져 나온 네 이름은 발음이 다 뭉개져 네 이름처럼 들리지 않았다. 남은 친척들은 먼 발치서 우리를 가만 지켜보았다. 나는 그들에게서 눈을 돌려 애써 벽을 바라본다. 귀를 닫는다. 주변의 소음이 점점 작아지다가. 마침내 아무 소리도 남지 않는다.
나는 다 쪼그라든 엄마 아빠의 등을 계속 쓰다듬는데. 이상하게 눈물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심장을 도륙 당한 것 같아.'
장례식장 옆 해장국 집에서 밥을 먹다 말고 아빠는 또박또박 말한다. '소설에만 나오는 표현인 줄 알았는데.' 가족들은 들어가지 않는 고기 조각을 억지로 입 안에 밀어 넣는다. '심장을....' 아빠는 같은 문장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나는 결국 해장국 안에 들어간 고기를 한 입도 먹지 못하고 전부 버렸다. 네가 내 딸이 아니고 동생이어서 일까. 나는 아직도 도륙이라는 단어가 어색하다.
어른들은 식장에 남고 아이들은 집으로 보내진다. 집 근처에 위치한 장례식장에서 우리집으로 가는 길은 너와 내가 초중고등 시절 내내 지겹도록 다닌 거리들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나와 남동생은 걸어서 우리집으로 친척들을 안내했다. 여전히 고등학교를 다니는 우리의 어린 막내 동생은 여덟, 아홉 살 씩 차이가 나는 우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남동생에게 우리는 언제나 나이값 못하는 애물단지들이었다. 언젠가 네게 했던 고백처럼 나는 사춘기에 접어들며 말 수가 줄어든 남동생을 어려워 했다. 대학을 위해 우리가 제주를 떠났을 때 남동생은 고작 열둘 남짓한 나이였고 이후 우리가 대화를 할 기회는 일년에 한두 번이 될까 했다. 나보다는 네가 걔랑 더 친할 걸? 내가 툭 뱉었던 그 말은 무심함과 부러움 사이 어딘가. 네가 마지막까지 기억하던 나와 남동생은 서로를 어색해 하는 그런 사이였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 나와 남동생은 손을 잡고 걷는다. 별은 보이지 않지만 맑은 밤. 우리의 대화는 너를 가운데 두고 밀린 시간을 따라 잡으려 애를 쓴다. 우리는 너와 내가 초등학생 때까지 살던 아파트를, 배드민턴을 치던 공터를, 그네 하나를 나눠 타던 놀이터를, 서로의 눈치를 보며 떨어져 걷던 초등학교 등교길을, 강아지를 함께 산책 시키던 공원을 지난다. 너는 동네 이곳저곳에 당연하듯 묻어 있고. 나와 남동생은 그런 너를 생각하며 걷는다. 나는 첫째, 너는 둘째, 막내는 셋째. 그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우리 셋은 다 함께 손을 잡고 있다고 속으로 끝없이 되뇌면서.
나와 사촌언니는 네 방이라고 불렸던 곳에서 제주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가족 중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장난감과 어린이 책들로 뒤덮여 있던 네 방은, 원래는 어린 남동생의 방이었다가 우리가 집을 떠나면서 잠시 아빠 방이 되었고 일년 전 네가 제주로 내려오면서 마지막엔 네 방으로 불렸다. 남아있는 물건이 아무것도 없네. 중얼거리는 내 소리를 듣지 못한 사촌언니는 세수를 하러 나간다. 네 방 안에는 싸구려 스킨 케어, 다 헤진 낡은 추리닝, 오래된 노트북, 네가 끔찍해 하던 임용고시 문제집 같은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곤 네 것이라고 부를 만한 물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꽉 차 있지만 텅 빈 방.
'구질구질 해.'
몇 년 전 우울이 너를 찾아오고 나서부터 너는 언제나 최소한의 물건만을 네 곁에 두었다. '엄마 아빠 돈 좀 제발 그만 써, 언니.' 나를 진심으로 경멸하던 네 표정. 어릴 적부터 부모로부터 일찍 독립하고 싶어했던 너는 얹혀 살아야만 하는 현실 속에서 너 자신을 민폐로 규정했다. 너는 있는 물건을 덜어내면서도 새 물건을 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병원에 가보자는 가족들의 말에 안돼 그건 너무 비싸 하곤 귀를 닫았다. 너의 히스테릭 앞에 우리가 한 발 물러서면 너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네 방으로 돌아가 숨어 버리곤 했다. 몇 년에 걸쳐 너는 점점 더 작아지고 점점 더 투명해졌다. 너는 민폐 끼치지 않기 위해 숨을 조금씩 나눠 쉬던 사람. 할 수만 있었다면 너는 네 몸을 반으로 반의 반으로 아주 작게 접어서 다녔을 것이었다.
네덜란드로 떠나기 전 제주에서 머물던 여름, 너는 쭈뼛거리며 다가와 내가 몇 년 전 영국에서 네 선물로 사왔던 가방을 도로 내밀었다. 내가 선물해 놓고도 종종 탐내던 작은 검정 사첼백이었다. 이거 나 잘 안 쓰니까 언니 써. 나는 마냥 철없는 얼굴로 네 방 거울 앞에서 가방을 맨 내 모습을 둘러보았다. 그때 너는 어떤 표정이었지. 그 순간이 지금 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방을 내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사촌 언니는 이해가 안된다는 투로 말했다. 나와 언니는 네가 누웠던 바닥 장판 위에 이불을 깔고 들어가 누워 대화를 나눴다.
'난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언니는 아마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몇 년 전 우리가 서울집에서 같이 살 때, 우리는 가끔씩 사촌 언니들을 만나 함께 놀곤 했다. 사촌 언니들 앞에선 너는 늘 밝고 평범한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여느 이십대처럼 예쁘게 화장을 하고 함께 셀카를 찍고 웃을 땐 살짝 입을 가렸다. 그 모습들이 전부 꾸며낸 것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믿지 않던 네 진짜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렇게 다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너는 네가 몇달 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다 소진했다는 듯. 낡은 잠옷 차림으로 돌아와 네 좁은 방 안에서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걘 죽고 싶었던 게 아니야. 살고 싶지 않았던 거지.'
너는 끝까지 누구에게도 네 속을 털어놓지 않았지만, 너와 닮은 나는 알고 있다. 너는 죽을 의지가 있던 것이 아니라 살 의지가 없었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난도질을 당하는. 그건 어릴 적부터 너와 내가 몰래 공유하던 짜릿한 소망. 아주 가끔 네가 기분이 내키는 새벽이면 우리는 거실에 배달 음식을 시켜 놓고 남몰래 온갖 불온한 상상들을 나누곤 했다. 서로를 한심해 하면서도 제주에 있는 엄마 아빠가 우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에 안심하며. 함께 조용히 웃음을 삼키곤 했다.
사촌언니에게 너를 전부 다 아는 척 떠들었지만 불을 끈 후 눈을 감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너를 너무 얕봤다. 너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용감한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