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레터 투 옐로우 새드니스 (2)

by 수아

너는 차갑고 예쁜 공주님. 입관식에서 본 너는 내가 본 네 모습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너는 분홍 꽃신을 신은 두 발이 비단천으로 묶인 채 긴 소매를 배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다. 흰색 비단 수의에선 반짝반짝 윤이 났다. 나는 내 끔찍한 상상과 전혀 다른 네 모습에 머리속으로 준비했던 모든 말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사촌 언니 말이 맞았다. 너는 잠자는 것 같이 보였다. 풀로 붙인 것 같이 감겨 있는 눈을 제외하곤 네 얼굴은 죽음의 흔적 하나 없이 깨끗했다.

입관식을 하는 방은 유리벽을 가운데 두고 네가 누워있던 공간과 그 안을 구경할 수 있도록 의자들이 놓인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나눠 놓은 건가,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너를 가만 바라보았다. 장례지도사가 알 수 없는 한자들을 크게 읊은 후 마침내 유리문이 열리자 친척들은 떼 지어 네 곁으로 몰려들었다. 너를 전부 잡아먹을듯 네 몸의 끝자락을 거침없이 붙잡는다. 망설이는 사이 이리저리 치이다 나는 마침내 손을 뻗어 네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네 머리카락은 내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곳엔 서늘한 이마가. 너를 따라 벌어진 내 입에는 찬 공기만이 맴돌았다. 네 몸은 가볍게 들려 관으로 옮겨진다. 가족들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하세요. 장례지도사가 말했다. 나는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미안해.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아. 미안해. 나를 마주하고 선 아빠는 자꾸만 다 큰 딸을 아가라고 부른다. 아가, 미안해, 아가. 그 모습을 눈 앞에서 보면서도 나는 하나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미안해. 눈물이 나지 않아. 미안해. 미안해.

'아빠, 수아 너무 예뻤어. 공주님 같았어.'

'원래 어렸을 때부터 예뻤잖아.'

입관식이 끝나고 아빠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식장 문 밖으로 나를 이끄는 아빠의 늙고 지친 손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장례가 다 마무리 된 후, 네 옷이 부러웠다는 눈물 섞인 농담에 엄마는 너는 어떻게 된 게 동생 수의까지 탐내냐면서도 고급 수의를 맞추길 정말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예쁜 옷 입고 가서 거기서 인기 많겠다, 그치? 내 말에 엄마는 웃는다. 너의 장례와 관련해서 엄마 아빠는 무엇이든 최고급으로만 골랐다. 살아서 돈 쓰길 무서워했던 너는 죽어서 생전에 못쓴 돈을 다 쓰고 갔다. 너에게 장례에 얼마가 드는 지 말해주었다면 너는 지금 살아있었을까. 아무 소용없는 그런 생각을 했다.


새벽부터 시작된 장례 의식. 의미도 모른 채 계속되는 절. 끊이지 않는 향 냄새. 검은 옷을 입은 낯선 사람들이 네 사진이 놓인 방을 들락날락한다. 절을 하고 향을 꽂는다. 상주인 나와 남동생과 맞절을 한다. 마치 네 방이 더럽다는 듯 곧 재빨리 신발을 신고 사라진다. 다시 찾아오는 정적. 간간이 다음 검은 옷. 정적. 검은 옷. 반복에 반복.

너의 장례는 이틀 동안 짧게 치뤄졌다. 네 사주와 여러가지를 종합한 제주 장례 전통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장례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엄격한 규율들을 따르며 진행되었다. 나는 남동생, 사촌동생과 함께 네 사진이 놓인 방 오른편의 상주 자리를 지켜야 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나는 사촌동생에게조차 밀려 모든 의식에서 늘 세번째 자리에 섰다. '그렇지만 제가 수아 언닌데요.' 장례지도사는 내 말을 못 들은 척 한다. 나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살아있는 날 보며 네가 얼마나 비웃을까 생각했다.

엄마는 방 밖의 식당에서 분주히 손님을 맞았다. 제주에 사는 외가 친척들은 장례 내내 식당에서 자리를 지켰다. 테이블들을 옮겨 다니며 엄마는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테이블이 바뀔 때마다 엄마의 눈엔 별개의 눈물이 고였다. 와글거리는 밖을 뒤로 하고 아빠는 방 한 쪽 구석에 틀어 박혀 제단 위의 네 사진만을 올려다 보았다. 손으로 브이를 그리고 미소 짓는 너는 영문도 모른 채 꽃에 둘러싸여 있다. 아빠는 사진 속 베이지색 니트가 네게 참 잘 어울리지 않냐고 물었다. 네가 입고 있던 베이지색 니트는 사실 내 옷이었다. 너는 오랜만에 사촌 언니들과 놀러 나간다는 사실에 들떠선 내게 옷과 악세사리들을 빌렸다. 그날 우리는 언니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다같이 사진을 찍고 놀며 웃었다. 나는 네 사진이 비스듬히 보이는 방석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 너를 바라보다 괜히 내 상복을 한 번 내려다 본다. 상주가 입는 검은색 계량 한복. 지겨워. 장례식장 안에서 사진 속 너만이 유일하게 검은 옷을 입지 않았다.


식장에서 한 번 절하고 끝일 줄 알았던 발인식은 오후 내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다. 마치 아무도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하는지 몰라 멈추지 못하고 억지로 이어가는 것 같았다. 장례가 정말 지치고 힘들다던데, 하던 친구의 위로가 그제야 실감이 났다. 너는 이런 거 싫어할텐데. 이렇게 사람 많고 귀찮은 거 질색할텐데. 나는 내 손에 들린 영정사진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조금만 참아 조금만 참아 속삭였다. 엄마 아빠 나와 남동생은 검은색 리무진을 타고 화장터로 이동했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혹여나 갑자기 액자가 떨어지거나 부서지진 않을까 의식하며 내내 액자 끄트머리를 움켜쥐었다. 화장터로 향하는 숲길은 한산했다. 가을이 끝나가는 11월이었고 밖은 서늘했고 리무진에 앉아 화장터로 이동하는 내 겨울 외투와 상복 사이 오른팔에는 남몰래 찬 완장이 달려 있었다. 남자 상주들만 차세요, 식장을 떠나기 전 건내 받았던 완장들 중에서 나는 한 장을 집어 들어 몰래 내 팔에 찼다. 그러니까 이건 너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힌 복수. 어 그거 왜 차셨어요, 하고 묻는 장례지도사의 말에 나는 그냥 멋있어서요, 하고 대답했다. 장례지도사는 더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사진을 든 사람이 마지막에 내려야 부정을 안탄다고 나는 가족들이 다 내리고 나서도 잠시 혼자 차에 남아있었다. 야 내가 그래도 이거라도 찼어, 잘했지? 조금만 더 참아. 이제 힘든 거 정말 끝이야. 손에 들린 사진 속 너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불길을 통과하며 네 몸은 마침내 하얀 가루가 된다. 네가 그토록 바라던 대로. 너는 이제 세상에서 네가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만을 차지하게 되었다. 화장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내 생각보다 더 길었다. 관이 화장장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훌쩍이던 사람들은 커튼이 닫히자마자 다시 소란스레 떠들기 시작했다. 네가 화장 되는 동안 엄마 아빠는 화장장 옆 지하 식당으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사람들은 개미떼처럼 기다랗게 줄을 지어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줄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 갑자기 몇몇의 친척들이 사람들을 비집고 계단을 거슬러 밖으로 튀어나왔다. '우리가 어떻게 밥이 넘어가겠어.' 엄마 아빠는 계단 입구에 서서 그래도 뭐라도 드셔야죠 하며 그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엄마 아빠의 지친 손짓. 사람들을 위해 애써 쥐어 짜내는 웃음. 그 모습에 나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싶어 진다.

'왜 이렇게 다들 말을 안 듣는 거야. 대체 왜.'

나는 머리 끝까지 차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주먹을 움켜 쥐고 밖으로 걸어 나간다. 검은 옷을 입은 또 다른 사람들이 건물 입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그들이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멀어지는 건물 안에선 여전히 엄마 아빠가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갔다. 그 사람들은 결국 밥을 먹었을까? 엄마 아빠의 말을 들었을까? 더이상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검은 옷의 사람들이 말 없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내게 말을 거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때려버리고 싶다. 내 앞에서 우는 이들의 눈을 모두 찔러버리고 싶다.

엄마는 그런 내가 이상하다고 했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해? 우릴 걱정해주는 거잖아.'

'나도 알아.'

그러나 그 순간에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네 유골은 흰색 도자기 병에 담겨서 딱 그 도자기 병이 들어갈 정도 크기인 조그만 캐비넷 안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나는 캐비넷 안에 담긴 너보다 내 손에 들려 있던 파우치의 속 너를 더 너라고 믿었다. 너를 유골함에 담기 전 우리는 장례지도사에게 유골의 일부를 따로 받길 부탁했다. 동생이랑 같이 여행하고 싶어서요. 장례지도사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한지에 조금의 유골을 싸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앞으로 수개월간 어쩌면 몇 년간 함께 유럽을 여행하게 될 것이었다. 네덜란드에서 사는 언니를 두고도 너는 유럽에 한 번을 놀러 오지 못했으니까. 아마도 너는 성가시다고 싫어하겠지만. 아니 어쩌면 좋아할지도 모르지. 적어도 비행기 값은 안 들테니까. 그리고 싫다 해도 어쩔 수 없어. 그럼 애초에 죽질 말던지. 파우치 속 주먹만큼의 너를 쓰다듬으며 나는 혼자 생각했다. 가루가 된 뒤에도 너는 살아있는 것처럼 한참동안 내 손 안에서 온기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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