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이 끝나자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친척들은 차 혹은 비행기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을 살았다. 아빠는 출근을 하고 남동생은 학교를 갔다. 아침에는 해가 떴고 저녁에는 해가 졌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흘러갔다. 제주집은 내가 네덜란드로 떠나기 전의 모습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네가 없다는 사실만 빼고. 나는 내게 주어진 2주간의 휴가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며 하루를 보냈다. 누구도 원치 않았던 짧은 방학. 나는 네가 입던 옷을 입고 네가 지내던 방에서 지내며 아침이 되면 일어났고 밤이 되면 잠에 들었다. 종종 새벽의 푸르스름한 천장을 바라보며 미련 하나 없는 표정을 지어보았다. 잠시 얹혀 살다 떠날 사람처럼. 너처럼. 엄마는 아직도 모든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샤워를 하다 말고 갑자기 화장실 청소를 했다. 타일바닥에 개구리처럼 벌어졌던 네 다리를 잊기 위해. 너는 서울로 떠나기 전 공항에서 엄마를 세 번 불렀다고 했다. 엄마는 화장실 바닥에 열심히 락스칠을 한다. 한국 핸드폰 번호가 없는 나는 한국에 있는 동안 네 유심으로 바꿔 생활했다. '아빠!' 네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 아빠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아빠 미안해. 미리 말 못해서...' 우리는 어려서부터 전화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하고 서로를 향해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곤 했다. 깜짝 놀랐잖아, 전화 너머로 말을 이어가는 아빠의 목소리가 떨렸다. 남동생은 네가 선물한 후드티를 계속 학교에 입고 다녔다. 떠나기 얼마 전 네가 실수로 사이즈를 잘못 시켰다며 남동생에게 건낸 옷이었다. 너는 어설픈 거짓말을 잘 하던 아이였고. 네 앞에서 후드티를 입은 남동생을 보며 너는 그 큰 앞니를 드러낸 익숙한 웃음을 지었다 했다.
집 거실에는 늘 티비가 켜져 있었다. 식사 시간마다 예능 프로그램에 깔린 웃음소리 효과음이 끝없이 이어졌다. 따라 웃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날은 밥을 먹다 나의 실수로 밥그릇이 깨지고 말았다. 우리가 아주 어릴 적부터 온가족이 쓰던 밥그릇이었는데. 그릇이 하나 깨졌는데도 수가 모자라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했다. 자식 부자였는데 둘 밖에 안 남았네. 엄마 혹은 아빠가 밥을 먹다 말고 말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는 놓친 학교 수업들에 대한 행정처리를 위해 스터디 어드바이서와 온라인 미팅을 가졌다. 미팅 연결 화면에 뜬 내 얼굴을 보며 너에 대해 말할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5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스터디 어드바이서는 자신이 다섯 자매이며 자매를 잃는 것이 도무지 상상 되지 않는다고 유감을 표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가엔 자연스러운 주름이 그어져 있다. 나는 속으로 어떻게 다섯 자매가 전부 나이 들 때까지 살아있지 하고 생각한다. 어떻게요. 삶이 얼마나 가벼운데요. 조금만 호 불어도 사라져버리는데요. 나는 너에게 밖에 할 수 없는 질문을 몰래 삼킨다.
너는 마치 네가 영화 주인공이라도 된다는 듯 세상에 남은 너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사라졌다. 각종 포털 사이트의 아이디도, 핸드폰도, 노트북도, 네가 오랫동안 썼던 블로그마저도. 전부 빈 껍데기처럼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 갖다 버렸어. 학교 다닐 때 상장들 모아둔 것까지 싹 다 갖다 버렸어.' 너를 떠올릴 물건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방에 주저앉아 엄마는 말했다. 너는 네가 마지막까지 머물던 서울집에도 가족들에겐 편지 하나 남기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장기는 기증해주세요.'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해 연습했던 몇 개의 쪽지만이 가방 구석 어디에서 발견되었을 뿐이다. 어느 새벽, 네 방에 누워있던 나는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았고 네가 정말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는지 의심이 들었고 아니 꼭 편지가 아니더라도 네 흔적이 남은 물건이 정말 하나도 없을까 너는 원래부터 없던 사람처럼 그냥 그렇게 사라져 버렸나, 그러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책장에 수많은 책과 노트가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한밤 중에 책장의 모든 공책을 펼쳐본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하나하나 넘겨본다. 대부분은 수학 문제를 연습한 듯한 숫자와 연산기호들 뿐. 나는 공책 표지에 적힌 이름으로 남동생 글씨체와 네 글씨체를 구분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이건 네 노트 저건 동생 노트 나누는 것이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노트를 구분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나는 마지막으로 책상 책꽂이를 살펴보다 마침내 네가 열일곱 살에 쓰던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수학 연습장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디자인의 공책에는 몇 장의 의미 없는 낙서들과 함께 한 장짜리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와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것은 무척 기분 좋은 일이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은 제주에 살던 시절 우리가 같이 보내던 밤에 대한 너의 일기였다. 오랫동안 까마득히 잊혀져 있던 자매의 시간에 대한.
한 살 터울의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늘 세트였다.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지긋지긋하게도 싸웠고 징그러울 정도로 서로를 잘 알았다. 제주에 살던 스무살 이전, 병적인 애정결핍을 가진 나는 밤마다 잠겨 있는 네 방문을 두드리며 애타게 너를 불렀다. '수아야, 제발 나랑 같이 있어줘. 나 혼자 있기 싫어.' 그러나 너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였고 나의 집착은 언제나 우리 싸움의 발단이 되었다.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았다. 어떻게 말해야 내 마음이 풀리고 나를 홀로 방으로 돌려 보내 마침내 너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새벽의 긴 싸움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너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나를 내보내기 위한 너의 적절한 사과와 회유가 있을 때면 나는 네가 전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딱히 꼬집을 만한 것이 없어 찝찝한 기분으로 네 방을 나서곤 했다. 너는 내가 나간 후에도 마지막까지 적절한 텀을 두고 방문을 잠갔다. 내가 너의 거짓된 진심에 어떠한 토를 달지 못하도록. 끝도 없는 싸움, 뜯겨 나간 머리카락, 나의 일그러진 집착, 너의 한심하다는 표정, 가짜 회유, 가짜 사과, 언제나 굳게 잠긴 문. 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던 우리의 어린 시절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제주의 기억을 머리 속에서 지우기 시작했다. 어린 나는 내가 느끼던 감정들을 미쳐 다 소화하지 못한 채로 자라났고 어른인 나는 어른의 권한으로 뒤틀린 과거를 삭제해 버리길 택했다. 그 시절에 대한 막연한 기분만이 휴지통에 버려져 모자이크 된 파일처럼 어렴풋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너의 일기는 내가 기억에서 지워버린 우리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너는 밤새 이어지곤 했던 우리의 긴 수다에 마법이라는 은유를 써 붙였다. 늦은 밤 심심한 기분이 들 때면 너는 종종 내 방을 찾았고 우리는 엄마 몰래 끓인 컵라면을 나눠 먹으며 어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던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밤의 마법. 너는 그 시간을 그렇게 불렀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성립 불가능한 심리게임처럼. 나는 네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네가 알고 있다는 그 사실까지도. 그리고 그건 너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녀의 저주에 걸린 것처럼, 머리 속 한자락의 생각은 밖으로 나오는 순간 초라한 더듬거림으로 변해버린다.
그러나 상대방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 서로가 이미 완벽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오고 새소리가 들리면 우리의 새벽 수다는 마지못해 끝이 났다. 너는 우리의 시간이 아침과 함께 한밤의 마법처럼 사라진다고 적으며 글을 마쳤다. 그러나 어린 너는 틀렸다. 사라지지 않았다. 너의 글은 이렇게 남아 잊혀졌던 우리의 기억을 내 앞으로 데려온다. 마법처럼. 끝내 우리를 다시 찾아온 밤의 마법.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선명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우리들 앞에서 나는 그제야 소리 내어 울었다. 새벽이 떠내려가라 네 이름을 불렀다. 내가 미안해. 언니가 미안해. 네가 들을 수 없는 사과를 반복했다.
네 일기장은 책장 한 가운데에 표지를 훤히 드러내고 꽂혀 있었다. 모든 것을 완벽히 지우고 떠난 네가 그 공책을 못 봤을 리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네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선물. 그날 나는 네가 내게 남겨준 방식으로 너를 기억할 것을 다짐했다. 우리가 전부 잊혀진 뒤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글의 방식으로. 기억력이 나쁜 내가 너를 더 잊어버리기 전에. 나는 이 글을 반드시 써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