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1. 8WPH+FHG Delfzijl흐로닝언

by 수아

Hoi, 하는 버스기사의 인사를 지나쳐 수아는 곧장 버스 맨 뒤 창가자리로 향했다. 정지한 차창 프레임 안엔 타국의 도시 풍경이 서서히 왼쪽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디테일 같은 것들은 상관없다는 듯 버스는 수아의 작은 도시를 끝없이 화면 밖으로 쓸어 낸다. 수아는 가방에서 줄이어폰을 꺼내 핸드폰에 연결했다. 버스를 타기 전에 들었던 유튜브 뮤직 어플이 자동으로 실행됐다. 생상스의 Symphony No 3 in C minor, Op 78. 며칠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후 반복재생으로 듣고 있던 파리 오케스트라의 36분짜리 라이브 영상이었다.

‘바다까지 한시간 남짓 남았으니 두 번정도 들을 수 있겠네.’

수아는 버스 옆 좌석에 올려놓은 가방 안에 손을 넣었다. 부드러운 털실 파우치에 손이 닿으려던 찰나 마음을 바꿔 노트를 대신 집어든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검정 노트. 표지에 붙였던 검은색 고양이 모양 스티커는 다 해져 목이 떨어져나가기 직전이었다. 수아는 빈 페이지 직전의 다쓴 노트들을 앞뒤로 훑어본다. 앞선 페이지들엔 지난 일주일 동안의 꿈들이 빽빽히 적혀있었다.

언제나 네가 주인공인 수아의 꿈. 매일 같이 괴랄한 변주를 일삼는. 꿈 속에서 너는 어떤 땐 이미 죽어있었고, 어떤 땐 아직 살아있었고, 어떤 땐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신음 소리에 깨어난 침대 옆자리의 입이 물으면, 수아는 고개를 저으며 악몽, 하고 짧게 대답하곤 했다. 그러면 옆자리 손은 조금 성가시다는 듯이 수아의 등을 쓰다듬었고 수아는 긴장으로 곤두선 피부 위로 차가운 무언가가 닿는 것을 느꼈다. 머리 속으로는 방금 꾸던 꿈의 다른 결말을 바쁘게 시뮬레이션 돌리면서. 어서 다시 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자꾸만 죽는 너를 살리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다시. 수아는 대낮이 되어 일어나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때까지 꿈에서 깨어나고 잠드는 과정을 되풀이 했다. 그렇게 다 닳아 너덜너덜해진 채로 일어나면, 그녀는 남은 하루를 그날의 꿈들에 대해 생각하며 보냈다. 꿈 한 개가 겨우 기억나는 날도 있었고 두세 개의 다른 꿈들이 또렷이 떠오를 때도 있었다. 꿨던 꿈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날들도 더러 있었다.

어느새 1부 끝에 다다른 심포니. 수아의 자리 한칸 옆으로 희끗한 회백색 머리를 한 마르고 키 큰 더치 남성이 다가와 앉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버스 안을 살펴보았다. 그들 나라 사람들처럼 거대하고 기다란 버스 안에는 그녀를 포함해 기껏해야 네 다섯명의 승객이 있었다. 곁눈질로 바라본 옆자리 중년 남성은 핸드폰을 꺼내 화면 속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사람.’ 순간 남자에게 말을 걸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그녀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욕망은 의식에게 곧바로 제압당하고. ‘집중해.’ 돌아가려는 고개 대신 세게 움켜쥔 펜. 그 끝에 지난 밤 꿈이 억지로 끌려 온다.

꿈에서 너와 나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언젠가 급식실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던 너를 기억하고, 나는 마지못하는 척하며 그날 너와 함께 급실실로 향했다. ‘사실 나도 친구 없어,’ 솔직하게 말하지도 못하고, 혹여나 네가 도망가 버릴까 ‘거봐, 언니밖에 없지?’ 으스대지도 못하고. 우리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같이 밥을 먹는다. 서로의 비밀을 적당히 모른체 하며. 서로가 닮았다는 사실을, 그래서 말을 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적잖이 징그러워하며. 그러나 속으론 몰래 우리에겐 서로가 남아있다는사실을 다행스레 여기며.

펼쳐진 노트 군데군데 동그랗게 잉크가 번져 나갔다. 수아는 눈에 먼지가 들어간 척을 하며 어설프게 눈물을 닦아냈다. 꿈의 잔상은 그녀의 시야를 가로막고. 그녀는 꿈을 피해 사람에게로 숨어버리고 싶다. 슬쩍 바라본 옆자리 남성은 여전히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절정에 가까워 지며 몰아치기 시작한 화성. 그녀는 절실해진다. ‘한번만.’ 나를 봐줘. 내가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게. 그녀는 더욱더 작위적으로 눈물을 쏟아낸다. 그러나 돌아볼 생각이 없는 고개. 남자는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누군가 물으면 수아는 지금 가방 안에 제 여동생이 있어요 말할 자신이 있었다. 네 유골이 든 파우치를 꺼내 보이며, 이게 제 여동생이에요 그앤 두 달 전에 자살했답니다 우린 함께 바다에 가고 있어요 하고. 그러면 그들은 속으로 이게 무슨 소리지 잠시 어리둥절해할 것이다. 그녀의 말을 되새기다 문득 여동생과 자살이라는 두 단어를 떠올리곤 잠시 모든 의문들을 제쳐둔 채 으레 그렇듯 그녀에게 조심스레 미안하다는 말을 건넬 것이다. 여동생과 자살. 두 단어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무게에 그들은 어쩌면 조금의 친절을 더 베풀었을지도 모른다. 수아에게 휴지나 손수건을 살짝 내밀 수도 있었고, 자신의 과거, 현재, 혹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었다. 흐느끼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감싸 안고는 괜찮아 괜찮아, 말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빠진 심포니 리듬에 맞춰 수아의 어깨가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표면을 찢을 듯 울리는 팀파니. 공격적으로 쩍쩍거리는 심벌즈. 수아는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마침내 상상의 관객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그앤 자살했어요. 자살했다고요. 제 말을 듣고 계신가요? 이게 오직 그녀의 전부예요. 고작 이것밖에 남지 않았다고요. 고작 이게 전부예요. 그앤 죽었어요. 죽어버렸다고요. 완전히....

옆자리 남성은 어느샌가 떠나고 자리에 없었다. 수아는 더이상 의미를 상실한 상상의 연극을 중단한다. 브라보. 심포니가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수아는 없는 휴지 대신 소매로 열심히 콧물을 닦아냈다. 묽은 체액이 소매에 저항없이 들러붙는다. 가방 안에서 눈치없이 가루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폰 속에선 교향곡이 다시 처음부터 재생되었고, 버스는 가는 길의 절반을 막 넘어가고 있었다.


잔디 언덕을 넘어 도착한 바다는 바다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이곳이 흐로닝언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 오늘 아침, 그녀는 캐비넷 위에 올려져 있던 파우치를 가방에 집어넣으며 당장 바다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바다여야만 해. 신경질적으로 구글맵을 확대하던 손가락은 근처 해안가들을 서성이다, 처음 들어보는 이곳 해변에서 마침내 멈춰섰었다. 네덜란드 날씨답게 하늘은 먹색 구름으로 가득했다. 그 밑으론 광대하게 펼쳐진 하나의 흙탕물. 바다는 마치 비온 뒤 생긴 온갖 오물이 뒤섞인 물웅덩이를 크기만 크게 확대해놓은 것처럼 보였다. ‘이게 맞아?’ 수아는 얼굴을 찌푸렸다. 회색으로 가득한 공간 속 유일하게 선명한 색을 띈 잔디 언덕 위에 서서 수아는 버스정류장에서부터 걸어왔던 길을 내려다보았다. 언덕 밑은 해변 앞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볼품없었다. 이리저리 휘어진 자동차 도로와 보행로가 파인 잔디밭, 그리고 마치 이케아 건물같이 생긴 해양박물관 하나. Muzee Aquarium. 아쿠아리움이라는 단어에 끌려 수아는 구글맵에 검색해 이미지를 눌렀다. 해양박물관은 딱 봐도 대충 관련있어 보이는 것들을 아무거나 다 가져다 놓은 전형적인 지방 소도시 전시장이었다. 그럼 그렇지, 수아는 몸을 돌려 바다라고 하는 그 무엇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겨울의 해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몇몇의 성실한 견주들이 머리채를 거세게 쥐고 흔드는 바람을 가르며 개를 산책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해변을 무한히 도는 루프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사이 수아는 벌써 같은 얼굴들을 여럿 마주쳤다. 수아는 그때마다 속으로 자신을 보아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어쩌면 그들은 모두 다 다른 사람이었을 지도 몰랐다.

수아는 바다 앞 모래사장 가운데 무릎을 세우고 웅크려 앉았다. 모래는 적당히 부드럽고 약간은 축축했다. 쉬폰 레이스 치마 사이사이 모래 알갱이가 끼어들어갔다. 가까이서 바라본 바다는 더욱 황량했다. 먹구름을 열심히 반사하는 진흙색의 바다는 한번 물에 들어갔다가는 병에 걸릴 것만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래도 바다는 바다였고. 파도는 수아가 앉은 모래사장을 향해 서서히 밀려오고 쓸려가기를 반복했다.

수아는 네 어색한 웃음을 생각한다. 너는 그날따라 바다를 배경으로 가족들을 향해 억지로 웃음 짓는다. 수아가 네덜란드로 떠나기 직전 여름, 그녀의 가족은 다같이 바다에 놀러갔다. 평소 가족 나들이에 잘 따라나오지 않는 너도 그날만큼은 함께였다. 바다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날따라 너는 유달리 즐거운 척을 했었는데. ‘언니, 바다 또 들어가자.’ 다시 어색하게 상기된 웃음. 쟤 오늘 왜 저래. 수아는 그런 네가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네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알지 못한 채. 그날 수아의 가족은 몇년 만에 처음으로 다같이 사진을 찍었다. 아마도 그녀와 네가 어른이 된 이후론 처음으로. 그리고 그건 그녀 가족의 유일한 가족사진으로 남았다.

수아는 가방에서 네가 든 분홍 파우치를 꺼냈다. 그녀는 파우치를 손에 쥐고 올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수아에겐 가족들에게 여행 사진을 보낼 의무가 있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혼자서 몰래 부여한 비밀스런 의무가.

‘같이 놀러왔어.’

카카오톡에 보낸 사진 속의 바다는 수아 눈에도 초라했다.

‘예쁜 곳 놀러가지 그게 뭐야.’

가족 단톡방에서 유일하게 답장을 해주는 엄마가 답했다.

수아는 폰을 끄고 파우치를 가방 위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파우치 위로 모래 알갱이 몇 개가 날아와 털실에 엉겨붙었다. 수아는 고개를 들어 멀리 바다를 바라본다. 일그러진 헛웃음을 치며. 이게 바다가 맞아? 너에게 연신 묻는다. 돌아올 대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변 왼쪽에는 바다 위에 철골구조를 세워 지은 작은 호텔 하나가 있었다. 수아는 언덕에서 내려오는 길에 보았던 그 호텔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한 손엔 구슬보다도 작은 네 몸 한 조각을 쥐고. 모래사장에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기 전에, 수아는 파우치 속 지퍼백 안에서 네 뼛조각 하나를 꺼냈다. 노란색 통통한 글씨체로 Hello There!라 적힌 마트 지퍼백. 수아가 네 뼈를 만진 것은 한지에 싸여있던 너를 이 지퍼백으로 옮겨 넣은 이후 처음이었다.

‘너는 마트 지퍼백에 담기기 위해 멀리 네덜란드까지 날아왔다.’

너를 쥐고 걸어가는 내내 수아는 지퍼백의 노란색 글씨를 생각했다. 손에는 금방이라도 튀어 빠져나갈 듯한 모래 알갱이같은 촉감. 네가 든 수아의 주먹이 긴장으로 단단해졌다.

자신의 이름을 정면에 대문짝만하게 박아넣은 호텔은 아마도 동네에서 그나마 묵을 만한 고급 숙소쯤으로 여겨지는 듯 했다. 구글맵에 뜨는 꽃무늬 포인트 벽지 사진을 보며, 수아는 이건 만국 숙소 공통인걸까 하고 생각했다. 수아는 구글맵에 네 이름이 적힌 폴더를 만들고, 호텔 위치를 눌러 1이라 저장했다. 저멀리 언덕과 호텔을 연결한 다리 위에서부터 한 외국인 가족이 해변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형제로 보이는 두 아이들은 수아가 있는 호텔 밑의 돌제방 위를 왔다갔다 하며 장난을 쳤다.

‘이런 날 가족 휴가라니 운이 없네.’

누가 그렇게 생각하던 말던 웃고 뛰놀던 아이들은 저 멀리 부모에 부름에 폴짝이며 제방을 뛰어 올라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수아는 더이상 아이가 아니었고. 그녀는 뒤돌아 발끝을 세워가며 조심스레 제방 아래로 기어 내려갔다.

한 발만 더 걸으면 닿을 실제의 바다. 너는 이제 이곳에 머문다. 수아가 너를 바다에 뿌리기로 한 것은 그날의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럴 생각으로 이곳에 온 걸까. 혼란으로 확장된 동공이 수평선 너머를 응시한다. 어쩌면 오늘 아침 너와 함께 바다에 오기로 한 순간부터 결정했는지 모른다. 혹은 새해 전야의 불길 앞에 선 순간부터, 아니면 오래된 너의 편지를 읽게된 순간부터, 혹은 한국에서 네 유골이 싸인 한지를 받아든 순간, 어쩌면 네 죽음을 알린 전화를 받았던 그 순간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겠어.’ 아무것도.

수아는 힘을 너무 세게 쥐고 있는 바람에 굳어버린 손가락을 펼쳐 반대쪽 손으로 대신 너를 집어든다. 아마 너는 극도로 질색했을 작은 입맞춤을 위에 남기고. 바다로 던진다. 조각은 너무 작아 어디로 빠졌는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바닷바람이 매순간 수아의 뺨을 새롭게 휘갈겼다. 언제 다 길었는지 모를 머리카락이 온 사방에 얼기설기 흩날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침 해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네 이름을 계속해서 소리치며 울어도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근처 갈만한 카페를 검색하기 위해 수아는 구글맵을 열었다. 너를 뿌린 물가 한 곳 당 카페 한 곳. 바다 앞에서 즉흥적으로 정한 앞으로의 룰이었다. 네덜란드의 겨울은 4시면 해가 졌다. 어둑해진 바다는 하늘과 더욱 구별이 되지 않았다. 지도를 따라 걸어가는 길에는 종종 차들이 몇대 지나갔을 뿐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구글맵의 파란 점이 조금씩 이동하는 것을 보고 걸으면서도, 수아는 어쩐지 거대한 하나의 공백 속에 멈춰 서있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황량한 자동차 도로들을 지나 어느 골목에 들어서자, 의심스러울 정도로 한적한 동네 하나가 나타났다. ‘유령 도시.’ 수아는 b급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진부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한 눈에도 불이 꺼진 곳이 더 많은 건물들은 주인을 반영하듯 하나같이 낡고 지쳐보였다. 이미 오래전 목적을 잃은 창문들 위로 걸어오는 길에 멀리서 보았던 해변 근처 카페가 오버랩 됐다. 해변의 카페 안에는 저녁식사를 위해 모인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그 속에 수아와 비슷한 나잇대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제일 젊은 사람이라 해도 어림잡아 사오십대. 오랜 중력으로 서서히 처져가는 입꼬리가 그들의 얼굴을 어딘가 슬퍼보이게 만들었다. 깊어지는 미래 밖에 남지 않은 슬픔. 그들은 분명 모두 즐거워보였는데도.


가로등 한두 개가 전부인 여러 골목을 지나쳐 수아는 구글맵이 도착지라고 가리키는 한 바에 도달했다. 아직은 이른 시간 때문인지 바에는 그녀말고 다른 손님이 없었다. 온갖 코스튬을 입고 파티를 하는 구글맵의 사진들과는 정반대의 온도에 수아는 당황하면서도 그 썰렁한 풍경에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오히려 잘 됐지 뭐.’ 그녀는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주문하고 바 안쪽 구석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나무통 모양을 하고 있는 테이블은 바 테이블처럼 살짝 높이가 있었다. 바닷가 근처 마을답게 선실을 모티브로 삼은 듯한 카페는 배와 관련된 장식품들이 지나치다 싶게 바 안을 메우고 있었다. 바 이름이 새겨진 모형 배와 구명 튜브, 벽과 색을 맞춘 목제 타륜, 출처를 알 수 없는 여러 뱃지들, 온갖 더치 글귀와 랜덤한 사진이 프린트된 액자들. 거기에 형형색색의 화려한 슬롯머신과 아직도 창틀에 걸린 어설픈 크리스마스 장식까지 더해지며, 바는 마치 꿈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테이블 바 위에 설치된 거대한 스피커에서 올드 스쿨 팝이 큰 소리로 흘러나왔다. 여전히 바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물들에 잠식된 공간. 그 기묘함이 수아는 마음에 들었다.

수아는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냈다. 다시 너를 기록한다. 너와 그녀와 오늘의 바다에 대해. 그날그날의 사건을 까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너의 죽음을 기점으로 네 이름 없이는 더이상 쓸 수 없게 되었다. 노트의 대부분은 네 꿈에 대한 내용이었으며,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핸드폰을 보다가 책을 읽다가 네 이름이 떠오르면 수아는 잠시 하던 행위를 멈추고 노트를 펼쳤다. 하루의 대부분을 잠을 자며 보냈기 때문에 글을 쓰는 일이 생각만큼 잦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아주 자주, 수아는 다 쓴 페이지들을 읽고 또 읽으며 과거를 복기했다. 매일 아침 같은 꿈으로 억지로 돌아가 반복해서 꾸는 것처럼. 그것이 아니라면 곧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듯이.

너는 이제 무적이다. 네 몸 조각들이 세계 곳곳에 뿌려지게 될테니까. 너는 지구 어디서든 살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지구만큼 커질 것이다. 우중충한 네 첫 바다 앞에서 엄마는 날씨 좋을 때 아름다운 곳에 보내주지 않은 것을 속상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방금까지 바다 앞에 앉아 얘기했듯. 잰체 않고 아름다움을 연기하지 않는 이 바다는 우리의 처음으로 제격이다. 네가 티내지는 않았아도 속으론 그림같이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네 삶에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너를 모조리 지워버리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그 자리에 반짝이고 예쁜 것들로만 채워넣을 수는 없다. 그것은 네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니다. 너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도 이내 좋아했을 것이다. 그래도 유럽은 처음이네, 하고. 바다에 둥둥 뜬채 회색 하늘을 바라보며. 언제나 이상에게 배반당하던 너와 나를 떠올릴 것이다. 더는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침내 긴 한숨을 내뱉을 것이다.

수아는 펜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발이 땅에 닿자 그 사이 마신 와인 두 잔이 취기를 불러 살짝 어지러웠다. 바에는 어느샌가 단골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 모여있었다. 속옷을 훤히 드러내고 바 테이블에 앉은 나이든 중년들. 수아는 바 테이블로 다가가 바 주인에게 화장실이 어딘지 물었다. 여기서 지금 뭘 하는 거냐는 듯한 경계어린 눈빛들이 줄지어 수아를 향한다. 중성적인 외모의 오너는 손가락을 들어 바 테이블 옆 구석을 가리켰다. 그들은 수아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쑥덕거린다. 곧이어 낄낄대는 웃음들. 그녀는 그들을 향해 생글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멍청이들.’

그들을 따라 웃는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수아가 알던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흡사 인형 혹은 그녀와는 상관없는 어떤 형상. 수아는 거울을 보며 조금 전의 미소를 다시 지어본다. 그녀가 자신있는 반달 웃음. 네 장례식장 화장실에서도 수아는 몰래 그 얼굴을 지어보였었다.

‘이건 다 꿈이니까.’

바 안에서 우악스러운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수아는 모두가 더치를 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고,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아도 되도록. 수아는 완전히 취기가 오른다. 활짝 웃는다. 거울 속 수아는 죽은 너처럼 젊고 아름답다.

수아는 바 테이블로 다가가 빌을 요청했다. 두터운 살을 껴입은 나이든 사내들은 수아를 향해 연신 아시안이란 단어를 들먹였다. “이리와 내 무릎에 앉아봐.” 나이든 더치 남자는 자신의 농담에 목이 졸린듯 컥컥 대며 웃었다. 문법이 다 무너진 더치식 영어가 옆에서 휘파람을 불며 부추긴다. 무해하고 순진한 얼굴로, 수아는 손사래를 치며 사양한다. 그녀는 그들의 그런 무지가 즐거웠다. 단순한 마음이 부러웠다. 그사이 결제가 마무리 되었고, 수아는 손을 흔들며 유유히 바를 빠져나간다. 언제 뒤에서 와락 덮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를 안고. 어여쁜 웃음을 유지한 채. 그 상황 속에서 그제야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끼는 자신이. 수아는 역겹다.


집에 돌아가는 길을 지도에 찍고 수아는 시내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길가에서 단 한명의 젊은 사람이라도 찾으려 주의를 기울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집들은 자주 불이 꺼져 있었고, 불을 켜놓고 커튼을 열어 놓은 집들은 유행이 다 지나 조악한 실내장식으로 가득했다.

시내의 작은 광장을 지나가고 있을 때, 수아는 멀리 멀뚱히 서있는 두 명의 남자 그림자를 보았다. 그들과 가까워질 수록 그림자는 서서히 제 색을 찾아 갔고 그와 함께 그 중 한 사람이 길 한가운데서 오줌을 싸고 있다는 사실 역시 점점 선명해져 갔다. 두 사람은 방금 막 광장의 바에서 걸어나온 듯 보였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수아에게는 조금의 시간이 더 걸렸다. 수아는 순간 멈칫 놀라보이며 에둘러 길을 돌아간다. 오줌을 싸는 사람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남성은 수아를 손으로 가리키며 몸을 젖히고 술 취한 목소리로 크게 웃었다. 오줌을 싸는 남자도 비틀비틀 오줌발을 뿌리며 함께 끅끅댔다. 수아는 애써 그들을 외면하면서도 그렇다고 굳이 걷는 속도를 올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살짝 더 느린 템포로 뒤꿈치를 떼며 걸었다. 그들의 걸걸한 웃음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따라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발 뒤꿈치에 모르는 사람 오줌이 튀고 있을까.’

수아는 아주 미세하게 속도를 점점 늦춰간다. 그들이 그녀를 따라잡아 원하는 그 무엇이든 그녀에게 실험할 수 있도록. 그들이 원하는 그 무엇이든. 그녀는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이라면 아주 웃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걔 어떻게 죽었대?

—몰라. 길에서 오줌싸던 사람한테 당했다는데.

‘어때. 그렇지 않겠어?’

너는 잘 알테니까.

큭큭거리며 수아는 속으로 네게 묻는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수아는 예정대로 버스 정류장에 미리 정차해 있던 버스에 올랐다.

‘또 올게. 잘 있어.’

Hoi. 익숙한 버스 기사의 인사가 스쳐간다. 수아는 다시 버스 맨 뒷자리를 향해 걸었다. 어깨 밑으론 가방 속 노트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 손등을 간질이는 털실을 피해. 간절히.

그녀는 이곳에 남겨진 첫번째 너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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