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중력을 견디며 꿈을 꾸는 이의 초상
잠이 오지 않는 고단한 밤, 담요를 두르고 넷플릭스를 열어 심야식당을 재생했다. 오늘 내가 만난 에피소드는 카츠동. 마음 편히 보고 잠의 세계로 들어가려 했는데, "요령이 없군요"라는 마스터의 대사 한 줄이 나의 수면 삭제 버튼을 눌러버렸다.
경기에서 이긴 날엔 꼭 선물처럼 카츠동을 먹으러 오는 카와다 상은 복싱 선수다. 만년 4위에 머무르며 주최 측도 관람객도 들러리 선수 취급하지만 카와다 상은 꿈이 있다. 그는 꿈을 쫓는 인물이다.
여느 때처럼 카츠동을 주문한 카와다 상은 식당 한쪽에서 낯선 얼굴을 발견한다. 격투기 경기를 즐겨보는 딸과 함께 온 그녀. 카와다 상과 그녀는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나는 아마 이 장면부터 잠을 잃은 눈이 되었을 것이다. 꿈을 쫓는 이에게 정착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는 전개, 갈등의 원인이 될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단 시간에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다. 어린 나이에 아빠와 사별한 소녀도 카와다 상을 좋아한다. 매번 혼자 방문해 카츠동 하나를 주문하던 카와다 상은 이제 그녀와, 그녀의 딸 몫까지 카츠동 세 개를 주문한다.
생활비를 버는 일과 복싱 훈련을 병행하던 카와다 상은 어느 이른 새벽, 마스터에게 찾아와 선언하듯 말한다. 경기 준비에 전념하고 싶어서 일을 그만두겠다고. 이번 경기가 마지막 기회 같다고.
“이제 결단을 내리고 싶어요. 안 그러면 복싱을 놓을 수가 없거든요. 나이 때문에 못할 때까지 질질 끌겠죠.”
마스터는 카와다 상을 염려하듯 말한다.
“요령이 없군요.”
(마스터의 이 대사는 며칠간 나의 수면을 빼앗은 결정적 주범이 된다. 요령이 없군요. 요령이 없군요... 나도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 마스터에게 묻고 싶다. 어떤 요령이 있으면 될까요. 어떤 요령을 배워야 이 삶이 덜 삐걱거릴 수 있을까요.)
며칠 뒤, 그녀는 이미 비틀거리는 채로 들어와 독한 술을 주문한다. 마스터는 술 대신 우롱차를 건넨다. 경기에 집중하겠다고 일을 그만둔 카와다 상이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한탄하는 그녀에게 마스터는 말한다. 경기장에 가서 카와다 상의 도전을 지켜봐 달라고.
경기 날, 카와다 상은 초반부터 무거운 주먹을 많이 소비했다. 발은 점점 느려졌고 시야도 좁아졌다. 두 번의 결정적인 펀치를 허용한 카와다 상은 결국 쓰러졌다. 심판은 경기를 중단시켰다. 선수 대기실에 남은 카와다 상은 엉망이 된 얼굴로, 오래 울었다.
카와다 상이 하고 싶던 말은 결국 이런 말이 아니었을까.
'이런 나여도 사랑해 줬으면 좋겠어'
물론 경기에 승리한 뒤 박수와 환호가 섞인 공기 속에서 자신감 넘치게 말하고 싶었겠지만.
그게 영 되지 않더라도. 전하고 싶던 말은, '이런 나여도 당신 곁에 있고 싶어'였을 것이다.
가족이 생긴 카와다 상은 복싱을 포기했을까. 작가와 감독은 카와다 상의 미래를 보여주지 않고 엔딩 OST를 재생했다.
가족이 생긴다는 것, 가장이 된다는 것, 그것은 꿈을 쫓는 일과 양립할 수 있는 것일까. 이따금 둘은 적대적인 위치에서 서로를 꾸짖는다.
평범하게 살고 싶은 내가 꿈을 쫓는 내게 말한다.
‘너만 없었으면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었어’
꿈을 쫓는 내가 평범하게 살고 싶은 내게 말한다.
‘네가 매번 의심하고 방해하지 않았으면, 전념할 수 있었어’
카와다 상이 진정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1위가 아니어도, 매번 승리하지 못해도, 좋아하는 복싱을 지속할 수 있는 것. 복싱을 하면서도 가족을 걱정시키지 않는, 생활비를 벌 수 있는 것. 아마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것 같고, 여기서 성과가 없으면 그만둬야 할 것 같다는 마음에, 아무래도 너무 이입해 버린 것 같다. 복싱과 소설쓰기는 사용하는 근육도 뇌도 많이 다르겠지만, 아픈 곳을 찔린 것 같다.
아침마다 일어나 해가 올라오는 거리를 달리고, 리듬을 지켜가며 몸을 단련하고,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주먹을 예측하고 수를 읽는 일이 즐겁다면,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위가 아니더라도. 그런 마음을 비웃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카와다 상이 사는 세상에.
한창 장편 소설을 쓰던 2024년 겨울의 어느 밤, 이 글을 썼다. 그때의 나에게서 카와다 상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을 읽었다. 더불어, 마쳐야 할 소설이 있고 등단이라는 목표가 있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까 봐 두려워하는 공포를 읽었다.
소중한 존재가 생기면 주고 싶은 게 많아지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지니까. 혼자서 안정감을 확보할 수 있는 비용의 규모와, 둘이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비용의 규모는 다르니까. 삶의 불안을 상쇄할 수 있는 안전망을 획득하고 싶고 또 상대에게 그것을 주고 싶을 테니까. 그 굴레에 머무르다 보면 적당히 벌고 글 쓰는 시간을 남겨두려는 삶에 부족함을 느끼고, 자기설득이 점점 어려워질 테니까.
꿈을 쫓는 나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편이 낫다, 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일까.
몇 달 뒤 소설을 마치고 오래 준비한 독립을 해냈다. 그 후 내내 대부분의 관계를 밀어내며 벽을 치고 살았다. 벽 안쪽이 춥고 소란하여 따뜻하지도 명료하지도 않으니 누구도 들이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도 잘 서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문장과 적정거리라는 단어에 몰두했다.
허나 실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회피하기 위해서.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세뇌하듯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쓰고 싶으니까. 나는 이런 일상을 유지해야 해. 욕심 내지 마. 따스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은 이런 삶을 누군가와 나누려고 하지 마. 죽기 전에 쓰고 싶은 소설이 있어.
소설은 공고한 핑계가 되어주었다. 나는 그 뒤에 숨어 부지런히 벽을 높였다.
연말연시에는 오들오들 떨며 시린 추위를 견뎠다. 일 년 내내 공모도 투고도 아무런 답신을 받지 못했다. 지금 내가 선 곳이 내 꿈의 종착지인지 경유지인지 모르겠어서 겁이 난다. 무너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귓속에 맴도는데 발신지가 꿈인지 마음인지 모르겠어서 그 또한 겁이 난다.
쓰려던 다음 소설은 시작도 못한 채 줄곧 삼엄하고 질긴 추위에 대해 쓰다 우연히 지난겨울에 써둔 카츠동 감상문을 발견해 읽었다. 그때의 나와 오늘의 내가 너무 달라서 조금 놀랐다.
내용을 업데이트하고 싶다.
지금의 나는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원 가족에게 받을 수 없던 사랑을 내가 선택한 가족에게서 받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가족을 꾸린 카와다 상이 부럽다. 꿈을 쫓는 여정을 종료하더라도. 혹은 계속 부딪치고 깨져가며 꿈을 쫓더라도. 카츠동 하나가 아니라 카츠동 세 개를 주문하는 카와다 상이 부럽다.
이 글을 업데이트하고 있는 나는 몇 달 뒤 어디로 흘러가 있을까. 요령을 터득할 수 있을까. 어느 곳에서 어떤 계절과 닿아 있든 스스로에게 미안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주석 : 이 글에서 내내 '좇다'로 표기해야 할 표현을 '쫒다'로 쓰고 있습니다. 맞춤법을 지키자면 꿈은 실체와 공간이 없기에 '좇다'가 맞습니다만 저는 제멋대로 '쫓다'라고 썼습니다. 혼선이 있을까 싶어 적어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