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아카이브 -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스토리 고찰

예술가적 주인공의 서사와 예술 주체의 문제

by 팽이트위즈

한동안 전설과 단편으로만 전해지던 와일드헌트 예술학원이 26년 초 연달은 두 번의 이벤트 스토리와 함께 블루 아카이브의 서사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술을 즐기는 학생의 입(코누리 마키)이나 예술을 동반한 축제(트리니티 사육제) 속에서 한 번씩 언급되어 조명을 받곤 했던 것은 지나가던 길의 단순한 주의 전환이 아니었던 것이다. 2024년 10월 말 방과후 디저트부의 밴드 도전기를 담은 『-ive aLIVE!』에서 마침내 칠대 죄수 아키라(자애의 괴도)를 이어 유명(named) 와일드헌트 예술학원 학생 시이나 츠무기가 얼굴을 비추었던 것은 이때를 기다려 온 태동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좌) 『-ive aLIVE!』 04. 와일드헌트의 귀인 中 / 『Serenade Promenade』 16. 레뷰☆저스티스 中 (우)

와일드헌트 예술학원은 예술을 전문으로 교수하는 블루 아카이브의 학원으로서, 단연 예술계에서 와일드헌트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와 권위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와일드헌트 학원 출신 학생이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예술에 조예가 깊은 대가로서 인정받을 정도이다. 그런 만큼 블루 아카이브의 학생들이 훌륭한 예술적 기질을 보여줄 때마다 왜 이런 학생이 와일드헌트 예술학원에 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나오고는 한다.

『비밀의 미드나잇 파티』 02. 연말연시 中

이처럼 예술을 향한 마음과 깊이가 상당한 와일드헌트 예술학원이라면 그 등장도 그에 걸맞은 어떤 예술적 추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자연히 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예술에 미친 사람은 자신만의 예술관을 가지기 마련이며, 그 예술관은 필연적으로 예술 철학, 곧 미학에 가닿기 때문이다. 블루 아카이브 역시 그림, 음악, 애니메이션, 연출, 기획, 시나리오 등 수많은 예술군이 집배약된 게임 산업계의 첨단으로서 그러한 예술 철학에 대한 고민을 품었을 것이 분명한 만큼, 스스로 경험하고 있는 예술의 현장 속에서 저마다 도출한 견해의 종합이 과연 와일드헌트라는 예술 학원에 어떻게 반영되어 나타나게 될지는 한 명의 예술가라면 주된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예술의 정점에는 한때 시가 있었으며, 수없이 걸출한 예술이 모이는 게임계에서조차 두고두고 회자되는 시 한 편을 보기가 힘들다는 사실은 시적 미학을 구현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그러나 그 어려움만큼 시적인 정취는 독자에게 그 무엇보다도 예술적으로 강력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장치이다. 세계의 예술성을 각인시키기에는 시미(詩味)보다도 더 효과적인 방향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와일드헌트 예술학원의 첫인상은 빠져들기에 충분할 만큼 매우 감명적이었다.


영상 주소 : https://youtu.be/-KX1ZgW1o-U?si=SHgjBjdfFUIWuUl7


와일드헌트 예술 학원을 처음 소개하는 『[블루 아카이브] 어서오세요! 와일드헌트 예술학원에!』영상은 수수께끼 같은 말로 운을 떼고 있다.

무궁무진한 학원도시에 성운처럼 반짝이는,
수천수만 개의 학부─ 저마다의 색, 빛, 이치
혼돈을 두른 자유의 날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심연을 엿보는 지혜의 사도─
성스러운 품성을 겸비하여 빛나는 태양의 빛─
그리고 지금 조화의 고리에 새로운 빛이 강림한다
천구는 흔들리고, 바람은 술렁이며, 운명의 톱니바퀴는 다시금 회전하기 시작한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눈부신 광채, 영혼을 꿰뚫는 천둥!
받아들여라, 그 아스트룸을!!
그 이름은─

물론 영상의 제목을 미리 알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그 이름은─'에 이어질 정답이 무엇일지는 듣지 않아도 명백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배경을 모르고 듣는다면, 이어지는 근사한 말들에 자못 기대를 품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게헨나를 게헨나라 부르지 않고, 밀레니엄을 밀레니엄이라 부르지 않으며, 트리니티를 트리니티로 부르지 않는 것. 그 작은 변화에서부터 우리는 시적인 바람을 느낄 수가 있다. 자명한 이름을 바로 말하지 않고 넌지시 그려내 보이는 것, 함축적인 전환이 담아내는 은현(隱顯)에서 예술적 정취는 감돌아 피어오르는 법이다. 시적 사고와 발견이 언제나 어렵고, 여전히 고산 위에 떠다니는 구름이자 우주적 발산이니만큼, 아름다운 말과 마주치는 일은 고아한 폭포에 얼굴을 씻어 내리듯이 번쩍이는 일이다. 그 점에서 와일드헌트 예술학원 소개 PV는 '예술학원'에 걸맞은 시적인 도약이었다. 예술을 전문한다는 이름이 과연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PV의 신비로움에서부터 인상 깊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1. 예술학원과의 첫 만남은 왜 츠무기가 아니라 에리인가

PV의 소개에서 와일드헌트 예술학원의 등장을 직감했을 시청자라면 자연히 앞서 『-ive aLIVE!』 이벤트에서 얼굴을 비추었던 츠무기의 출시를 기대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블루 아카이브는 전혀 초면인 츠무기의 룸메이트이자 같은 오컬트 연구화 동지를 먼저 내보였으며, 그 중심에는 오컬트 연구화의 부장인 2학년생 시라오 에리가 있다. 여기서 예술과 오컬트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전개를 도모하고자 하는 기획이 엿보인다. 그렇다면 왜 츠무기가 아니라 에리가 와일드헌트의 첫 무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예술이라는 영역에서 소설적 '주인공'이란 항상 방황하는 자일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술을 꿈꾸는 인간은 언제나 특별함을 동경한다.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 나만이 포착하고 표현해 낼 수 있는 것들이란 타이틀은 얼마나 가치롭고 매혹적인가. 이미 지나온 다른 위대한 예술가들의 족적을 그대로 따라 밟는다는 것은, 그 예술가의 위상을 넘어설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아류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흘러온 수많은 예술의 역사는 기성세대의 예술관에 맞서는 신세대 예술관의 대두와 투쟁의 연속에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문학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20년대 중반 사회주의 문학 단체 조선프롤레타리아동맹(KAPF)에서 사회참여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며 경향문학의 가치를 고민했다면, 1930년대에는 그 대타항으로서 구인회를 중심으로 모더니즘 문학을 모색하였다. 마찬가지로 1950년대 전후 김동리를 중심으로 우익 작가들이 문단을 장악하면서 순수 문학을 꽃피웠다면, 그 반작용으로 1960년대에는 4.19 혁명과 군사 정변을 거치며 사회 현실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순수-참여 논쟁으로 이어졌다. 신의 시대에서 르네상스를 거치며 과학적인 자연의 세계로 이행하였다가, 사진의 발명 이후 자연의 모사를 넘어서 사진이 담아낼 수 없는 인상의 세계를 추구하게 된 미술의 국면 역시 이러한 예술적 투쟁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예술을 한다는 것은 나의 세계와 철학을 구성해 가는 일이자 이전 세대의 파도를 초월한 어떤 특별함을 찾아 헤매는 모험기라고 할 수 있다. 예술가적 주인공을 조명하는 일이란 결국 이 여정의 서사를 어떻게 그려내냐의 문제에 당한다.

『-ive aLIVE!』에서의 츠무기의 첫 등장

그런데 이 점에서 츠무기는 그 예술적 지향이 너무나도 확실하다. 『-ive aLIVE!』 이벤트 에필로그에서 곱상하던 얼굴의 이면에 헤비메탈의 영혼이 숨어있던 츠무기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인 반전이었다. 그 순간 첫인상과 예술적 페르소나 사이의 거리감이 주는 낙차만큼이나 블루 아카이브는 츠무기의 예술적 정체성을 이미 독자에게 확고한 지평으로서 각인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츠무기는 자기표현과 사회 참여의 통로로서 스스로 어떤 예술을 하고 싶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미 알고 실천 중이다. 이미 어엿한 예술가로서 뚜렷한 궤적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츠무기에게는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방황과 고뇌가 개입될 여지가 적다. 예술가로서 어떤 예술을 해야 할 것인가는 예술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뜨겁고 어려운 숙제이면서 가장 원초적인 의문이다. 예술 학원에서 예술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한다면 바로 이 문제를 직면하여 다루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츠무기의 캐릭터성이 문제시된다. 예술적 헤매임을 본격적으로 담아내기에 츠무기는 자기의 예술적 구도와 방향을 기위 정립해 놓은 상태인 것이다.

『-ive aLIVE!』 11. 시이나 츠무기 中; 오른쪽 인물이 츠무기이다.

이는 츠무기라는 캐릭터가 근본적으로 촉매적 조력자이자 와일드헌트의 첫인상으로서 구상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ive aLIVE!』에서 츠무기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이리'에게 밴드라는 착상을 심어 주고, 음악 활동에 미숙한 아이리네를 위하여 곡도 제공해 준다. 밴드 연습 과정에서 아이리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자격지심을 앓으며 괴로워하지만 끝내 선생님/친구들과 속마음을 나누며 극복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츠무기는 아이리를 중심으로 한 성장과 청춘의 스토리로 바라보고 있다. 이때 이처럼 중심인물인 아이리의 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면 주변 인물의 내적 갈등은 상당히 축소화될 수밖에 없다. 이야기란 선택과 집중의 과정이며, 초점의 분산은 자칫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흐릿하게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ive aLIVE!』 이벤트 스토리에서 츠무기를 포함하여 아이리와 같은 방과후 디저트부원인 요시미, 나츠, 카즈사의 내적 갈등이 주요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츠무기는 중심인물 아이리에게 계기를 부여할 정도의 감동을 주고, 예술에 문외한인 선생님을 대신하여 밴드 활동을 지원할 수 있을 만큼 자기 분야에서 실력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안정된 캐릭터여야 했던 것이다.


블루 아카이브는 여기서 『-ive aLIVE!』의 구조를 빌려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에 응용한다는 꾀를 낸다. 이미 훌륭히 완성된 조력자 캐릭터 츠무기가 있으니, 다시 츠무기를 조력자로 쓰고 예술가적 주인공으로서 중심 역할을 맡을 새로운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에리가 왜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 이벤트 스토리의 중심인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에리는 아이리와 닮은 꼴이다. 아이리가 밴드 활동에서 친구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면, 에리 또한 자신의 전공 분야인 회화에서 낙제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 07. 각자의 꿈 中

아이리의 부끄러움이 불신과 회피를 낳았다면, 에리의 낮아진 어깨는 오컬트로 이끌리는 길이 되었다. 아이리가 관계적 구심점으로서 빛나고 있는 스스로를 자각하고 방과후 디저트부의 부장에 오름으로써 자기혐오를 극복했다면, 에리는 오컬트부를 창립한 부장으로서 주도적으로 전설의 마법을 재현하는 데 앞장을 섰고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인정받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이처럼 아이리와 에리는 모두 자존감의 측면에서 내적인 취약성을 안고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 초조함을 바탕으로 작중 이벤트 스토리에서 누구보다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다. 방황하지만 시도하는 자, 츠무기가 아이리와 만나자마자 직감적으로 주인공이라고 부른 이유는 에리라는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2. 재현 예술로 인정받는다는 서사의 문제


오컬트 연구회가 앞장서 와일드헌트 예술학원을 소개하는 이벤트 스토리인 만큼 예술과 오컬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작중에서 수다하게 언급된다. 사냥과 풍요를 기원하며 동굴에 벽화를 그렸던 태초 구석기시대의 인류에서부터 예술과 오컬트는 긴밀한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오컬트에서 예술이 출발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원시 종교와 결부되어 나타난 제사는 고대 예술의 꽃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를 고려할 때 블루 아카이브가 오컬트 연구회로 와일드헌트 예술학원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오컬트라는 소재를 넘어서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 이벤트 스토리에서 블루 아카이브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와 그 표현 방식을 고민해 보자.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 이벤트 스토리에서 에리를 선두로 오컬트 연구회와 선생님은 구현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와일드헌트 예술학원 전설의 거대 마법진을 직접 그려 내고자 한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사감대에 몰리다가 간신히 마법진을 완성하여 빛을 밝히는 데에 성공하지만, 전설의 마법진은 어떠한 놀라운 일도 가져오지 않았다. 대신 그 마법진은 평의회장 우루와시 마나미로부터 아름다운 예술로 칭찬받는다. 그리하여 인정받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에리의 꿈,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마다 얻은 깨달음과 영감을 바탕으로 다른 오컬트 연구회 부원들의 소원도 이루어지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기획자 에리를 비롯한 오컬트 연구회는 예술적 의도를 가지고 마법진을 그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꿈을 이뤄줄 만한 놀라운 일을 기대하여 에리와 오컬트 연구회는 거대 마법진을 그렸던 것이다. 단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평의회장 우루와시 마나미가 훌륭한 예술로서 인정을 해 주었을 때 비로소 에리는 자기가 계획한 마법진을 예술로서 인지하고 평의회장과 다수의 인정을 '놀라운 일'로 여겼다.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 13. 소원이 이루어지는 마법 2 中

그렇다면 이런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예술가 자신의 의도가 담기지 않은 행위가 타인에게 예술로서 인식될 때 그 행위의 결과는 예술가에게 얼마나의 가치를 가지는가? 현대 예술에서는 작품을 정의하고 감상하는 데에 있어 예술가의 의도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일상 사물이 예술로 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마르셀 뒤샹의 『샘』에서부터 시작해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시에서는 탈구조주의와 해체시의 영향으로 '작가가 시로서 정의하면 그것이 곧 시'라는 유동적인 정의관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대로 의도가 담기지 않은 예술성은 누군가가 포착하지 않는 이상 예술로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민간이나 인터넷상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나 수수께끼, 유머글과 같은 구술문예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더욱 짙다고 할 수 있다. 번역기의 곡해가 만들어낸 밈(meme)인 '화 내지 말아 들으십시오'는 그 놀라운 언어적 유희성에도 불구하고 예술로 여기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한 예시가 된다.

결국 예술이란 특별함의 문제이다. 독창성과 주체성이 결여된 모방적인 것, 일상 세계와 분리되지 않은 것은 예술로서 간주되지 않는다. 예술가가 의도를 담고 작품을 구성하였을 때 비로소 그 작품은 일상 세계의 평범함에서 벗어나 예술적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마르셀 뒤샹의 『샘』에서 일상 사물인 소변기가 특별한 예술 작품으로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예술 작품은 새로움을 담보해야 그 가치를 발한다. 우리가 마르셀 뒤샹의 『샘』을 뒤이어 소변기 하나를 사서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공개하여도 대중들은 거기에 어떠한 예술적 감흥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마르셀 뒤샹의 『샘』이 유구하게 오르내리는 것은 그것이 일상물을 예술로 끌어들인 최초의 시도에 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뒤샹의 흉내를 내어 본다 한들 그것은 단지 뒤샹을 모방한 아류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 돌아가서 오컬트 연구회의 사례를 보자. 위의 의문을 고려하였을 때, 단지 전설의 마법진을 재현하였을 뿐인 오컬트 연구회의 행위는 예술로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실질적으로 그 예술의 본질적 주체는 마법진을 기획한 옛사람에게 있지 않나? 건축에서 그 예술적 원천은 대부분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의 몫으로 돌리지 쌓아 올린 인부에게 있다고 보지 않으며, 헤어진 고전의 복원을 이 시대의 예술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마법진의 예술성에 대하여 우리는 마땅히 오컬트 연구회가 아닌 최초의 발상자를 조명해야 하지 않나?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쳐 보면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의 매듭에서 어떤 이상한 위화감을 깨닫게 된다. 즉 에리는 '나'의 예술이 아닌 것으로써 인정받고 기뻐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컬트를 소재로 '낙제생 에리가 친구들과 함께 자신감을 회복하는 이야기'를 연출하고자 했던 블루 아카이브의 주제는 하나의 위기를 맞게 된다.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에서 오컬트 연구회가 재현한 전설의 마법진. 자세히 보면 외곽의 정오각형 해자와 정오각형 마법진의 꼭짓점이 서로 맞물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에리가 평의회장의 칭찬에 스스로의 분수를 말하는 용기를 보여 주었으면 어땠을까.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이 좇았던 전설에게 공을 돌렸으면 어땠을까.

저희가 그린 마법진을 새로운 전위 예술의 등장이라 고평해 주신 부분은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해당 마법진은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전설을 해석하여 재현해 낸 것에 지나지 않을 따름입니다. 지금 마법진이 발하고 있는 빛무리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에 보낼 찬사는 저희 오컬트 연구회가 아닌 오래전 해당 마법진을 기획하였던 와일드헌트의 선현들에게 바쳐짐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다 한 번 주목에 감사드리며, 이번을 계기로 예술 속의 오컬트, 오컬트 속의 예술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높아지기를 겸허히 소망합니다.

예술가로서의 자긍심은 자기 예술을 인정받는 데에서만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예술이 아닌 선사(先師)의 지혜를 빌려 왔다는 것을 밝힘으로써도 채울 수 있다. 옛적 공자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정신을 강조했다. 기술할 뿐 지어내지 않는다. 현대와 달리 과거 동양의 예술은 이러한 잠언에서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에리가 오컬트 속 전설의 마법진을 현대에 재현하고자 한 시도는 이러한 술이부작의 정신과 통한다. 이 부분을 강조했더라면 예술가로서 에리의 성장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이는 한편 오컬트 연구회의 사상적 방향성을 확고히 다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중에서는 평의회장의 칭찬을 비판적으로 짚지 못하고 그대로 수용하게 되면서, 빌려온 예술로 칭찬을 받고 자신을 얻게 되었다는 분석적으로 기묘하기 그지없는 성장 서사로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말았다. 이러한 괴리는 에리의 서사뿐만 아니라 평의회장을 포함하여 와일드헌트 예술학원 전체의 완결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아프고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의 인식적 정의와 가치는 현상의 아름다움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해당 예술의 독창적 주체가 누구냐를 살피는 것 역시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3. 정리 ─ 모래연을 넘어 와일드헌트의 다음 궤도는


와일드헌트 예술학원의 첫 이벤트 스토리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는 시적인 PV에서부터 그 예술적 인상 근사하게 남기고 있었으며, 예술의 시작을 함께한 오컬트를 소재로 와일드헌트 예술학원의 소개를 흥미롭게 이끌어나간 점은 깔끔한 선택이었다고 할 만하다. 블루 아카이브는 일전 『ive-aLIVE!』에서 크게 호평받았던 예술 관련 서사 구조를 본떠 조력자로서의 인상이 강한 츠무기 대신 아이리처럼 자격지심에 속앓이를 하는 주인공 에리를 전면으로 내세웠다. 에리가 낙제생이라는 딱지에 위축된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하여 심리적 돌파구로서 오컬트에 발을 들였었고, 마침내 전설을 실현한다는 낭만을 품고 오컬트를 도전적으로 밀어붙이는 시도에까지 다다르는 모습은 마음을 뜨겁게 하는 멋들어진 전개였다.

그러나 결말에서 전설의 마법진을 재현하고자 한 시도를 오컬트 연구회의 전위 예술로서 정의하는 과정에 여타의 재고도 없이 섣불리 처리한 대목은 에리의 고양 서사와 와일드헌트의 전체 예술관에 보이지 않는 균열을 만들게 되었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과거의 기획을 빌려 재현한 행위를 우리(오컬트 연구회)의 예술로 온전히 인정받는다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인가? 자기 의도와 독창성이 부족한 작품에 스스로 그 작품의 유일한 주체로서 자부심을 가지는 것을 예술가로서 마땅한 마음이라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의 이야기를 심하게 돌이켜보면 이렇게까지도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가 보이고 싶었던 주제 의식과 표현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예술 주체의 문제'는 AI 예술이 우후죽순 솟아나고 있는 작금의 현실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AI가 참여한 작품에서 어디까지를 프롬프트 명령자의 권리로 인정할 것인가? 결국 프롬프트 명령자의 주된 행위란 AI가 만들어 낸 예술 작품 중 하나를 선별해서 고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 행위를 실제 인간 예술가의 고뇌와 노력이 담긴 예술 작품과 동격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AI 작품의 예술적 주체는 AI에게 있는가, 그 명령자에게 있는가? 이러한 프롬프트 명령자를 진정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가? AI의 도출과 인간의 수작업이 혼재한 예술 작품, 예컨대 이야기는 사람이 쓰고 그림은 AI에게 맡긴 만화의 경우는 어떻게 수용하여 정리할 것인가? 재현 예술의 관점에서 생성형 AI를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무릇 농담(濃淡)을 긋는다는 것은 바탕을 붓 쥐는 일이요, 언담(言談)은 침묵과 어우러지는 일이다. 기자의 힘이 보도를 선택하는 데에서 나오듯, 작가의 힘은 이야기를 취사하는 데에서 나온다. 새벽을 달려 얻은 찬사의 갈채는 얼마나 아름다우며, 한데 모여 피어오르는 소망의 불빛은 얼마나 반짝이는가. 그러나 그 모든 축연이 헛된 모래 위에 쌓아 올려진 것이라면 또한 참 얼마나 덧없는 일인가? 눈에 보이는 미숙과 피부에 닿는 지루함만이 이야기를 안타깝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눈부시게 짜인 이야기의 아래에 남은 섬찟한 당착이야말로 차마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씁쓸함을 남기는 법이다.


와일드헌트의 소개는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블루 아카이브의 다음 이벤트 스토리 『누구를 위한 예술인가』에서 우리는 와일드학원의 교풍과 예술 철학의 문제를 더욱 깊이 느끼고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는 오컬트 연구회!』가 결말부에서 핵심 주제를 처리하는 방식에 아쉬움을 드러낸 만큼 『누구를 위한 예술인가』가 그 결말을 어떻게 마무리짓는지도 눈여겨볼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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