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아카이브 - 『팬데믹 해저드』 스토리 고찰

복원되지 못한 관계성과 게헨나식 서사 소비의 문제

by 팽이트위즈

2025년 8월 5일 블루 아카이브 글로벌 서비스에서 공개한 이벤트 스토리『팬데믹 해저드 - 기적의 팬케이크』(이하 『팬데믹 해저드』)는, 급양부원 우시마키 주리의 신비적 피조물인 거대 팬쨩이 게헨나에서 생물 재해를 일으키며 벌어지는 소동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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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와 함께 위의 대표 이미지를 보자. 여기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기대하게 될까?

급양부원 우시마키 주리는 블루 아카이브에서 불가해한 신비적 능력을 지닌 대표적인 학생 중 하나이다. 요리를 좋아해 급양부에 들었고, 급양부원으로서 선배인 후우카를 도와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주리지만, 독요리를 만드는 수준을 넘어서 새로운 생명체가 창조되고 마는 저주받은 신비 때문에 언제나 번번이 시행착오를 겪는 학생. 타고난 신비와 현실의 지위가 서로 모순되지만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매력적인 학생. 그것이 우시마키 주리이다.

하지만 주리는 지금까지 중심으로 부각된 적이 한 번도 없던 학생이었다. 그것은 주리와 다른 학생과의 관계성이 급양부장인 아이키요 후우카 단 한 명과만 단선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토리에서 후우카는 같은 부원인 주리보다는 미식연구부와 엮이는 경우가 많다. 납치범(미식연구부)과 인질(후우카)이라는 독특하면서도 인상적인 관계성은 서사적으로 무한한 사건의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야기화의 주목도 측면에서 주리가 가지는 타 학생과의 관계성은 키보토스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빈약한 수준이다. 따라서 자연히 이야기에서 주리가 가지는 관계성과 주목도는 주리의 피조물인 팬쨩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단연 주리가 이야기의 주역으로 나온다면, 팬쨩이 그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팬쨩과 함께하는 주리는 서사적으로 이목을 끌 만한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만들던 음식이 갑자기 괴생명체가 되어 소동을 일으키고 우여곡절 끝에 해결한다'라는 명료하고 흥미로운 전개 구조가 한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 전개가 지금까지는 3주년 이벤트였던 『빛으로 나아가는 그녀들의 소야곡』에서처럼 서사적 장치로서 주변적으로만 등장하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십분 쏠쏠했다. 그런데 그 전개 구조가 이야기가 메인(main) 축으로 나오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혹 음식을 괴생명체로 만드는 주리의 신비에 어떤 비밀/역사가 밝혀지거나, 주리와 팬쨩 사이의 관계성이 새롭게 정의되는 흐름 ─ 예컨대, 팬쨩을 실패작으로만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기 ─ 을 볼 수가 있다면? 그로써 주리가 급양부 내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확장되는 관계성을 보여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 해저드』에서는 주리와 팬쨩을 제대로 초점화하지 못했다. 프롤로그와 1편에서는 ─ 지나가던 게헨나 학생이 카페 창고에 뜬금없이 하얀 폭약을 놔둬서 카페 요리사를 강제로 이야기에서 끌어내리는 작위성을 빼면 ─ 주리 자신이 요리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트리고, 음식이 괴생명체가 되는 스스로의 신비에 대한 주리의 고뇌와 그 자기의 신비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뜻깊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가능성으로 인해 만들어진 팬쨩이 미처 처분되지 못하고 카페에 소동을 일으키면서 본편으로 넘어가는 순간, 주리와 팬쨩은 이야기의 중심에서 이탈하게 된다.


주리와 팬쨩 사이의 관계성을 조명할 기회는 대신 팬쨩에게 당한 이오리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갑자기 등장한 사복 차림의 세나에게 옮겨간다. '팬쨩이 일으키는 바이오 해저드'라는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으로서 위치하는 세나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은 것. 바로 이것이 『팬데믹 해저드』의 최대 실패이다. 게헨나 최대의 바이오해저드라는 사건을 앞에 두고 자신을 철저히 관객으로서 정의하는 세나는 사건에 아무런 당사자성이 없다. 세나 스스로 팬쨩의 바이오 해저드가 겉보기보다는 심각하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 책임자로서의 긴박감도 전혀 느끼지 않는다. 당사자성도 긴박감도 없기 때문에 세나는 작중에서 사건을 두고 어떠한 고민이나 갈등도 빚지 않으며, 변화와 성장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재밌는 영화 한 편 봤네', 그 정도가 세나가 팬쨩 사태에 가지는 평의 전부일 것이다. 따라서 『팬데믹 해저드』를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도 세나와 같은 정도에 머물게 된다. 세나의 가볍고 진중하지 않은 인식은 작중 사건으로부터 독자들이 느껴야 할 위기감과 긴장감을 박탈해 버리고 만다. 위기와 긴장이 없는데 무엇을 기대하고 독자들이 사건을 따라가야 하는가? 그것은 나아가 주리로 하여금 일련의 사태 속에서 자기를 재정의하는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할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위기가 없는데 고뇌가 있을 수 없고, 고뇌가 없이 성숙하기는 힘든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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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의 가벼운 분위기는 작중 전개가 전형적인 공포물 클리셰를 최대한 따라가려고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어색함을 준다. 공포물의 클리셰들은 그 클리셰들이 보는 독자에게 상당한 긴장감을 준다는 점에서 널리 쓰이는 것이다. 그런데 가벼운 분위기에서 그러한 공포물의 클리셰를 차용해 보았자 독자에게 어떠한 긴장감도 조성해 주지 못한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는 것처럼, '공포스럽지 않은 분위기'에 '공포물을 따라간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 『팬데믹 해저드』에서는 작중 인물들이 직접적으로 클리셰를 언급하기까지 한다. 이 지점에서 바이오해저드라는 예측 불능하고 중대한 사태는 예측 가능한 범주의 경소한 일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팬쨩 소동'은 언급된 클리셰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영화적 구속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한치의 빗나감도 없이 적중한다는 점에서 작위적인 어색함이 심각할 정도로 넘쳐흐르게 된다. 영화가 클리셰를 쓰는 게 아니라 영화가 클리셰에 휘둘리는 듯한 느낌은 『팬데믹 해저드』를 읽는 독자들의 몰입감을 크게 해치고 있다. 현실에서는 말한 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팬데믹 해저드』의 키보토스와 게헨나는 현실감을 주지 못하고 위화감을 준다. 자유로운 교풍의 게헨나는 오히려 『팬데믹 해저드』에서 '게헨나니까'라는 인위적인 작가 의식에 잡아먹혀 그 자유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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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결국『팬데믹 해저드』에서 작가는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팬데믹 해저드』에서 마땅히 중심이 되었어야 할 주리는 『팬데믹 해저드』 이전과 이후로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것은 자기 요리에 대한 가능성이다. 그런데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프롤로그와 1편뿐이었다. 나머지 7편은 주리의 성장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은 단순 추적 파트이다. 게헨나에서 확률적으로 발생하곤 하는 '팬쨩 소동'을 지루하게 늘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이드 스토리로서의 '팬쨩 소동'과 이벤트 스토리의 주무대로서의 '팬쨩 소동'의 역할은 달라야 한다. 이야기의 긴장을 푸는 완충 장치로서의 '팬쨩 소동'이 주무대에서까지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팬쨩 소동'이 이벤트 스토리의 주무대로서 무게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전개가 그저 '팬쨩 소동'의 해결에만 몰두해서는 안 되었다. '팬쨩 소동'을 통해 주리와 팬쨩 사이의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관계성을 조명하고 그 끈을 어떻게 재정의하여 발전적으로 수용할지에 대하여 변증법적 성장 과정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렇게 한다면 비록 바이오해저드 사건을 추적하는 흐름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해도 주리의 캐릭터성과 입지가 확장적으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본편에서는 그러한 고민의 씨앗을 일말도 비추지 않은 채 공포물 클리셰 패러디에만 집중하고 있다. 전혀 두렵거나 초조한 분위기가 아닌데 공포물 클리셰는 왜 따라가는가? 아마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러나 『팬데믹 해저드』의 '클리셰 따라 하기'는 하나도 우스꽝스럽지 않다. 유머의 본질은 예측을 벗어나는 데에 있다. 모두가 아는 클리셰를 끌고 와 정해진 수순을 따라가는데 웃길 리가 없다.

스크린샷 2025-08-19 132459.png 『팬데믹 해저드 』「WHAT A LOVELY DAY 1」 내의 한 장면. 이 게헨나 학생은 팬쨩을 앞에 두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이런 장면이 필요하긴 했던 걸까?

정리하면 『팬데믹 해저드』는 그동안 제대로 풀지 않은 주리와 팬쨩 사이의 관계성을 조명하기보다는 게헨나식 일상을 보여주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에 따라 『와글와글하며 오손도손하게』와 같이 이전 실패한 게헨나 스토리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그리하여 주리의 연약한 서사적 관계성을 제대로 복원하지 못한 채 마무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캐릭터를 헛되고 경박하게 소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면하기가 힘들다. 이제는 게헨나 스토리니까 게헨나식 일상을 보여주어야겠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게헨나니까'를 이미 말하고 게헨나식 일상을 보여주는 순간, 게헨나의 의외성은 가치를 잃게 된다. 그 '의외성'은 이미 '게헨나니까'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이며 그렇기에 익살스럽지 않다. 무슨 짓을 해도 '게헨나니까'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 의도를 왜 고민하고 왜 웃어야 하는가? 자유를 지나치게 추구하는 흐름(게헨나 학생들)이 있으면, 반드시 그 자유를 질서에 맞게 통제하고자 하는 흐름(선도부)이 있으니, 마땅히 게헨나는 이 변증법적인 정반의 전체합으로 묘사되어야 한다. '게헨나니까'에서 경망함은 더 이상 의외스럽지 않다. '게헨나니까'에서 벗어난 정숙함이야말로 오히려 의외스럽다. 의외는 맥락 속에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부디 다음 게헨나 스토리에서는 진전된 모습이 있기를 바란다.

- 2025.08.16~19. 作


사진 출처

- 《블루 아카이브》, 넥슨게임즈, 『팬데믹 해저드 - 기적의 팬케이크』(정주행(@Binge__watching),『블루 아카이브 팬데믹 해저드 스토리』, YouTube, 2025.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