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MI를 다루고자 하는 이유
음성합성 엔진의 출현은 음악계에 일대의 전환을 가져온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음성합성 엔진 출현 이전까지 직접 지은 노래를 발표하기 위해서는 실재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노래에 소질이 있어 작곡가가 몸소 목소리를 넣을 수 있다면 최선이었겠지만, 모든 작곡가가 가수처럼 빼어나게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부족한 가창 실력은 노래의 아름다움과 의도를 완전히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그 한계를 메우기 위해서는 적절한 가수를 찾아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인맥, 시간, 돈 문제가 현실적으로 따르므로 무명의 작곡가가 자기 노래를 발표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음성합성 엔진의 등장으로 그러한 현실적 문제가 일거에 해소되기에 이른다. 가수를 직접 초빙할 필요 없이, 프로그램에서 미리 제공된 음성 파일을 적절하게 합성하여 조율하기만 하면 가사에 음을 입힐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인 노래 창작에서 필수 조건이었던 개인의 가창력이란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누구나 제약 없이 혼자서 노래를 만들어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음성합성 엔진을 통해 인디 작곡가에게 '누가 불러줄 것인가?'라는 가장 큰 고민거리가 사라지고 가사의 표현에 전적으로 창작자의 의도를 반영할 수 있게 되면서 밀물처럼 인터넷에 곡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2007년 출시된 하츠네 미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일본의 동영상 사이트 『니코니코 동화』에서 1차적으로 유행하며 노래 창작의 붐을 이끌었고,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유튜브에서 2차적으로 유행하며 전 세계적인 창작과 소비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유행의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가요와 다르게 작가주의적 경향이 굉장히 강하다는 점이다. '음성합성 엔진의 유행'이란 대체로 '어떤 음성합성 엔진으로 곡을 만드는 것 자체가 유행'이라는 뜻이지 장르적 유행이 아니다. 대중가요나 음악계의 역사가 대중성과 상업성과 연관되어 장르적 유행이 일반적인 추세인 것과는 다르다. 대중가요의 발생에서 작곡가와 작사가, 가수 등 하나의 곡을 두고 역할이 서로 분리되어 협업이 이루어지곤 하는 것과는 달리 음성합성 엔진계에서는 창작자 개인이 거의 전적으로 제작하여 표현하기 때문에 자기의 예술적 철학과 개성을 악곡 전체에 투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작가주의적 채색의 보고, 그것이 음성합성 엔진이 음악계에 불어넣은 우주적 생명력이다.
음성합성 엔진계가 자아내는 광활한 선율의 바다 속에서 MIMI를 포착하여 다루어 보고 싶은 것은, 다름 아니라 필자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상적인 시적 아름다움을 MIMI의 곡들에서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숱한 시인들의 시와 여러 노래들의 가사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순수한 충격적인 언어적 매혹이 놀랍게도 거기에 있었다. 정확히는 지금껏 찾지 못했던 필자 본인과 유사한 시적 방향성을 MIMI에게서 느낀 것이다. 왜 하필 일본어인가. 모국어인 한국어의 언어적 틀을 깨어 나가면서도 구조적 유사성을 매개로 아름다움을 감지해 낼 수 있는 두 언어 상호 간의 지리관계 때문이 아닐까.
한편 서정 장르에서 '노랫말'이 현대에 가지는 위상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모더니즘 사조의 등장 이후 시 저변에 깔린 난해성 때문에 시간과 정성을 들여 탐독하지 않으면 제대로 음미할 수 없는 현대시와 달리 노랫말은 음악성을 매개로 현대인들의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청취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모든 서정 장르를 통틀어 가장 막대하다고 할 만하다.
본디 노랫말은 이해하기에도 쉽고 부르기에도 쉬워야 한다는 관념적 추세가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언어적 실험과 아리송한 조어는 보다 전문적인 시(詩)의 영역에 맡겨두고, 노랫말은 대중의 영합에 맞추기 위하여 감정적인 일상언어를 활용해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시와 달리 노래의 소비자층은 문학적 해석력이 있는 식자층만이 아니라 세대와 성별, 계층, 지식을 막론한 일반 대중 전체에 걸쳐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가 주된 문학적 분석과 연구의 대상으로 숱하게 오르면서도 국문학계에서 노랫말은 주목받지 못하였다. 그것은 노랫말이 선율과 결합되어 표현된다는 측면에서 음악적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국문학계에서 노랫말을 섣불리 다루기 조심스러웠던 점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노랫말의 분석은 음악학계에서 주로 이루어지던 형편이었다.
그러나 음성합성 엔진계를 중심으로 노래가 작가주의의 옷을 입고 저마다 인식적 세계의 차원을 심오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 분석을 위해 점점 문학적인 방법론 ─ 시적 통찰력이나 작가론적 접근 등이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Kikuo, ATOLS, MARETU 등의 작곡가 등에서 비상하고 난해한 곡들이 발표되고 있으며, 일부 곡들은 문학적 분석을 거치지 않으면 해독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 심연을 파고들자면 논문 수준으로 옮아가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필자는 시의 원천으로서의 노랫말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 새로이 독해해보고자 한다. 그중 MIMI를 우선적으로 고른 것은 앞서 밝혔듯이 필자가 MIMI의 곡에 사로잡혀 버린 탓도 있지만, 시적인 감각과 창의력이 돋보이면서 모두가 공유할 만한 '존재론적인 고민'이란 주제를 일상적인 소재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MIMI가 어떻게 지극히 평범한 어휘로 감정적인 공명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참고사진:
MIMI 공식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MIMI...offi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