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MIMI 비평 2 - 『マシュマリー』외 3곡

녹아 버린 순수를 외딴 시간섬에서 미래처럼 더듬는다는 것

by 팽이트위즈
qtuX4cHk-vE-HD.jpg 『マシュマリー』 Thumbnail. Illust: マルシェ
1. 서론 ─ MIMI 서정성: 존재론적 방황의 출발점으로

자아가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는 방향을 잡아 내지 못할 때, 자아는 나아감을 잃고 불안과 근심의 태풍 속에서 어떠한 완충도 없이 맨몸으로 현실을 소용돌이쳐야 한다. 이때 눈앞을 직시하고 밀려오는 공포에 맞선다는 것은 자아에게는 거대한 도전이다. 어떠한 보호와 안내도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다는 것, 앞으로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여 안개 같은 시간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은 부스러질 듯이 괴로운 일이다. 그것은 한 번 밝히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도로 복잡화되고 변화무쌍한 현대에서는 수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MIMI 곡들의 화자는 우리이고, 현재이다. 그 감각 속에서 MIMI는 섬세하고 예민한 언어적 유연함과 감수성으로 고독적 아픔을 그려내고 있다.


이전 비평에서 MIMI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くうになる』를 살펴보았으니, 이제 MIMI 서정성의 명성을 연 『マシュマリー』(마슈마리/Marshmary) 전후의 곡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시기의 곡들을 음미해 보는 작업을 통하여 MIMI의 서정성이 그리고 있는 언어적 이미지와 철학적 방향의 궤도를 알고, 나아가 그로부터 사람들이 MIMI를 주목하고 빠져들게 된 문화 현상적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マシュマリー』는 2018년 1월 4일에 투고되어, 2023년 2월 22일에 MIMI의 곡들 중 최초로 100만 조회수를 넘기며 VOCALOID 전설에 입성하였으며, 2025년 9월 24일 유튜브 기준 1279만 회, 유튜브 뮤직 기준 1548만 회 조회수를 자랑하는 명실상부한 MIMI의 대표 인기곡이자 문제적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그 'マシュマリー'라는 제목의 의미조차도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무릇 시대를 풍미하는 선구적 시인들은 기존의 언어적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느슨한 어휘장의 바다를 노니며 저만의 새로운 시어들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MIMI의 『マシュマリー』 역시 그러한 시인들이 남긴 발자취의 연장선상에서 이어진 것으로 보이며, 고로 『マシュマリー』의 텍스트들을 깊이 따라가 분석하여 보는 것으로 그 의미를 어렴풋이 추측해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여기서는 『マシュマリー』를 중심으로 그 전후의 『モーメント』(모멘트/Moment)[2017.02.10.], 『哀の隙間』(슬픔의 틈새)[2018.05.10.], 『フローレミ』(플로레미/Floremie)[2018.06.14.] 등의 악곡들을 함께 참고하여 뒤살펴볼 것이다.


악곡 주소: https://youtu.be/qtuX4cHk-vE?si=bMjA3u-W9cjRRG4C

『マシュマリー』by MIMI

가사 전문: 하츠네 미쿠 번역

1절:

解れてく夢の中

どんな水平線を迷ってた?

目の前がぼやけてく

今数秒前は何処にある?


서서히 풀려나는 꿈속

어떤 수평선을 헤매었었지?

눈앞이 흐려져가

지금의 몇 초 전은 어디에 있지?


渦の中鼓動の音

すらもろくに聞こえない嗚呼分からないんだ

ため息を一つ吐いた

目は覚めたようで


소용돌이 속의 고동 소리

조차도 제대로 들리지 않아, 아아 모르겠다고

한숨을 한 번 내쉬었어

잠은 깬 것 같아서


行かないで僕から

掻き消して雑踏を

て浮かぶ心象も

空に融けてゆくだけ


떠나가지 말아줘, 나에게서

모조리 없애줘, 소란을

이라며 떠오르는 심상도

하늘에 녹아내려갈 뿐이야


風景が揺らいで崩れてく

崩れては漂ってさ

眠れない世界の中心で歌うだけ

感情も忘れて


풍경이 흔들리고 무너져

무너지고 떠돌면서

잠들지 못하는 세계의 중심에서 노래할 뿐이야

감정도 잊고서


終点だって泣くならば

笑っていたいんだこんな日々を

きっと此処には

意味なんてないから


종점이라며 울 거라면

웃으면서 지내고 싶어 이런 나날을

분명 여기에는

의미 따위 없을 테니


2절

暗闇でひとりぼっちで

此処はどうなってんだと問いかけた

目の前がぼやけてた

あの数秒前は海の中


어둠 속에서 혼자서

여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어

눈앞이 흐려졌어

그 몇 초 전은 바다 속에


鮮やかに見えた明日は

相も変わらず平凡で声も届かない

浮かぶ星はただ影を照らすだけ


선명하게 보였던 내일은

변함없이 평범해, 목소리도 닿지 않아

떠오르는 별은 그저 그림자를 비추고 있을 뿐이야


見えないな返事が

置き去った言葉も

少し遠くなる

それだけなのに


보이지 않아 답장이

두고 떠난 말들도

조금 멀어져가,

그것뿐이었는데


照明が止まって泣いていた

泣きながら風を切って

交ざり合う季節にただ染まるだけ

感傷を残して


조명이 멈추고 울고 있었어

울면서 바람을 가르고

뒤섞이는 계절에 그저 물들어갈 뿐이야

감상을 남기고서


水面だって見えないや

見えない明日が笑うだけ

傾いた向こうで

君に出会うまで


수면에서도 보이지 않아

보이지 않는 내일이 비웃고 있을 뿐이야

기울어진 저편에서

너를 만날 때까지


후렴

後悔の昨日を映させて

映させてと零すだけ

倒れこむ空の底

見えた明日は綺麗で…


후회의 어제를 비춰달라며

비춰달라고 투덜댈 뿐

쓰러져가는 하늘의 바닥

보였던 내일은 아름다워서…


逆らってゆくの!


반항하는 거야!


数秒前を抱きしめて

抱きしめて忘れないで

廻り出した星の空涙さえ

きっと笑えるさ夜が明ける前に


몇 초 전을 끌어안고서

끌어안고서 잊지 말아줘

돌기 시작한 별의 하늘 눈물조차

분명 웃게 될 거야 밤이 밝기 전에

2. 『マシュマリー』의 존재론적 고민의 근원

『マシュマリー』의 화자가 도입에서부터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감정은 탈력과 슬픔인데, 『くうになる』를 통한 렌즈로 언뜻 보기에는 존재론적 고민에서 유래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서로 감정적 반응과 세계 인식의 방식이 유사해 보여도 그 발아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에 따라 그 괴로움의 매듭은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질병의 원인이 다르면 치료 방법도 달라지듯이 엇갈리고 꼬인 마음을 푸는 방식도 매듭의 형태에 따라 접근을 다르게 해야 하는 것이다.

『マシュマリー』에서 MIMI는 전반적으로 문제적인 상황으로부터 빚어지는 화자의 무력감과 서글픔, 외로움의 감각적 공명 자체를 표현하는 데에 집중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그 감정적 배경을 넌지시 알리고 있다. 보편 추상적인 감정의 장면성에 호소하면서 그 구체적인 상황은 감추고 있다가 나중에 가서야 은근히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MIMI의 구성적 감각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MIMI는 『マシュマリー』에서 상대를 상정하고 있는 시어, 시구들을 심어 두고 있다. 行かないで僕から(나에게서 떠나지 말아줘), 見えないな返事が 置き去った言葉も(보이지 않아 답장이 / 두고 떠난 말들도) 등에서 우리는 『マシュマリー』 화자가 보이는 무기력이 자아와 세계의 내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외적 관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2절 마지막에서 傾いた向こうで 君に出会うまで(기울어진 저편에서 / 너를 만날 때까지)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マシュマリー』는 『くうになる』와는 그 존재론적 고민의 성질이 다름을 알 수 있다. 『くうになる』에서 '너'는 화자와 같은 존재론적 방황을 겪는 동병상련의 존재였다. 여기서 화자 '나'는 보이지 않는 미래 속에서 혼자서는 구할 수 없던 답, '살아가는 이유'를 모색하기 위해 '너'와 함께 밤을 둘렀다. 그러나 『マシュマリー』에서 '너'는 화자가 만나기를 고대하는 대상이자 화자로부터 떠나간 대상이며, 그런 '너'와의 이별 때문에 화자는 심각한 우울을 겪고 있는 것이다. '너'와의 이별이 초래하는 우울성은 『マシュマリー』의 전후 곡들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モーメント』에서는 また夢で君に逢える様な気がするんだ(다시 꿈에서 너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라고, 『哀の隙間』에서는 無限の過去の色が 君を昨日に閉じ込めてしまうから(셀 수 없는 과거의 색이 / 너를 어제에 가둬버리고 말테니까)라고 속삭이고 있으며, 『フローレミ』에서는 波立つ音 気づかぬ君 夢の終点でほらまた(물결치는 소리 / 깨닫지 못한 너 // 꿈의 종점에서 봐 또 다시)라는 시구를 통하여 '너'와의 별리 상황을 감정적 진원의 한복판으로 두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처럼 『マシュマリー』 전후의 곡들에서 보여주는 MIMI의 존재론적 고민의 근원은 '너'의 부재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파악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그것은 도시적 고립과 복잡성이 야기하는 혼란 속에서 파생되는 현대인의 '존재론적 방황'과 달리 '이별'은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널리 쓰이는 시적 화소이기 때문이다. 이는 MIMI의 부드럽고 섬세한 시어들과 감성적 원천이 '존재론적 고민'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이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哀の隙間』에서 眠れぬ夜さえ今は抱きしめて居たくて (잠 못드는 밤조차도 지금은 껴안고 있고 싶어서)는 이전과 달리 '너'를 껴안고 잘 수가 없어서 '잠 못드는 밤'조차도 지금은 '너'를 대신해 껴안고 싶다는 전이적 상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보편적 중심 속에서 세계를 정서적으로 감각해 내는 것, 그것이 MIMI의 시적 바다이며, 시인들이 추구하는 이상성이라고 할 수 있다.


3. 『マシュマリー』 제목의 의미 추론

지금껏 『マシュマリー』의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무려 발표된 지 7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곡의 선율과 가사에만 집중했지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マシュマリー'라는 제목이 무슨 의미인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단어라는 점에서 아마 대부분 작가만이 알 수 있는 어떤 고유한 관계성이나 감각적 관점이 반영된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며 더 이상 천착하지 않고 넘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マシュマリー’라는 제목을 빼놓고 가사의 텍스트만을 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점에서 감히 말하건대 7년 간 『マシュマリー』는 1200만 회가 넘는 감상 횟수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제대로 읽힌 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VOCALOID계(음성 합성 엔진계)가 서브컬처의 문화적 중심으로 부상한 지가 오래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히 충격적인 현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 『マシュマリー』의 예는 1000만 조회수가 넘는 센세이셔널한 곡들조차도 피상적인 감상 수준에서 그치고 제대로 분석되지 않고 있는 실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해당 분야에서 연구자나 비평가들, 분석가들의 조속한 관심이 필요하다.

각설하고, 본격적으로 『マシュマリー』의 제목을 분석해 보자. 『マシュマリー』의 영제는 'Marshmary'로, 이는 'marsh'와 'mary'라는 두 형태소가 결합된 단어로 볼 수 있다. 'marsh'의 뜻은 '늪, 습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으나 'mary'는 해석하기가 난감하다. 'mary'는 일반적으로 여자의 인명으로 널리 쓰인다는 점에서 'mary'를 어떤 여자로 생각하고 'Marshmary'를 '여자의 늪'으로 해석하여 볼 수도 있다. 그러나 『マシュマリー』의 대표 이미지에 나타나는 인물상과 MIMI의 다른 곡들을 참고할 때, 『マシュマリー』의 화자는 여성이리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여성 화자의 입장에서 '여자의 늪'이라는 제목은 인상적으로 맞아떨어지지 않으며, 굳이 'mary'라는 인명으로 여자를 위시한 이유를 설명하기도 곤란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영어적 시선에서 전환하여 일본의 음성 합성 엔진계에서 'マリー'라는 단어가 어떻게 쓰였는지 용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여기서 가장 강력한 단서가 되는 곡이 바로 MASA WORKS DESIGN이 2015년에 발표한 『ゴッドオブマリー』(GOD OF MARIE)라는 곡이다. 여기서 'マリー'는 마리화나, 즉 대마초의 약어이자 은어로 쓰였다. 영문 철자가 다르기는 하지만 'marie'와 'mary' 모두 마리화나의 약어, 은어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2018년 발표된 『マシュマリー』보다도 시기적으로 앞서고 조회수도 200만 전후로 낮지 않은 수치다. MIMI가 그의 곡을 접하고 영향받았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マシュマリー』는 '마리화나의 늪'으로 해석되는데, 마약의 향정신성과 중독성을 생각한다면 그 앞뒤가 상당히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이 해석은 『マシュマリー』의 여성 화자가 작중에서 보이는 증상 역시 마리화나 사용자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MSD 매뉴얼에서는 마리화나 사용 후 24시간 이내에 협응력, 반응 시간, 깊이 지각, 집중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약학정보원의 약물백과에서는 마리화나 투여의 정신적인 부작용으로 증폭된 감각으로 인한 환각과 공포심, 초조, 불안, 집중력 상실, 사고 및 기억 단절, 자아 상실감, 인지능력의 저하, 정신병 증상의 악화 등을 거론하고 있다. 『マシュマリー』의 1절 1연 3-4행에서 目の前がぼやけてく 今数秒前は何処にある?(눈앞이 흐려져가 / 지금의 몇 초 전은 어디에 있지?)라고 말하는 여성 화자의 모습은 환각 효과에서 깨어나면서 사고 및 기억 단절을 앓는 마리화나의 부작용과 일치하며, 다음 연 1-2행에서 渦の中鼓動の音 すらもろくに聞こえない嗚呼分からないんだ (소용돌이 속의 고동 소리 / 조차도 제대로 들리지 않아, 아아 모르겠다고)라는 묘사는 마리화나 부작용 중 하나인 인지 능력의 저하 상태와 유사해 보인다.

물론 여기서 단지 꿈에서 깨어나 비몽사몽한 상태를 마리화나의 투여 증상으로 지나치게 대응시켜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マシュマリー'라는 제목의 의미를 규명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꽤 일리 있는 접근이라고 생각되며, 그 사용 동기 ─ 화자가 이별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마약의 환각적 세계를 탐닉하기 시작한 것 ─ 도 충분하다. 오히려 MIMI가 다소 예민한 소재가 될 수 있는 마리화나 문제를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 환각성과 부작용을 꿈의 문제로 돌려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MIMI의 비밀스러운 음모는 굉장한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도 몇 년 동안 『マシュマリー』 안에 그러한 민감성이 숨겨져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4. 『マシュマリー』 의 늪과 현실 사이의 경계선

3장에서 밝힌 대로 『マシュマリー』의 제목을 '마리화나의 늪', 순화해서 '중독의 늪'이라고 바라볼 때, 그 '늪속에 빠진 상황'은 화자의 각성 이전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マシュマリー』의 첫 가사인 解れてく夢の中(서서히 풀려가는 꿈속)에서 화자는 마리화나의 투여로 얻은 환각적 효과가 풀리고 비로소 目は覚めたようで(눈은 뜬 것 같아서)라는 말처럼 차가운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따라서 화자의 인지가 돌아오기 이전의 상황, 노래의 전주 부분은 마약적인 환각성이 화자를 지배하고 있던 때라고 할 수 있다. 첫 10초 전후의 느린 진행에서 일순 분위기가 변하며 속도감 있는 빠른 선율로 전이되는 흐름은, 환각성의 늪에서 의식이 깨어남을 알리는 신호적 분기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가사의 첫 구절이 환각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기점임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이어지는 目の前がぼやけてく(눈앞이 흐려져 가)라는 구절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각성이라는 것은 본디 눈앞이 또렷해지는 과정이다. 그러나 여기서 화자는 역으로 각성 속에서 눈앞이 흐려지는 경험을 한다. 이는 화자의 눈앞이 물리적으로 흐려졌다는 것이 아님을 가리킨다. 화자가 환각 속에서 水平線(수평선)으로 상징되는 '너'와 함께하는 허구적 현실과 미래를 경험했고, 그 환상이 각성과 함께 풀리면서 '너'와 함께할 수 없는 지금에서 벗어나 더 이상 이상적인 가상에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이 화자의 눈앞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환각이 지속되던 今数秒前(지금 몇 초 전)을 더듬어 찾는 것이다.

'너'가 없는 이곳은 意味なんてない(의미 따윈 없는) 공간이며 風景が揺らいで崩れてく(풍경이 흔들리고 무너져 가)는 연약한 세계이다. 이런 세계 속에서 지내는 것은 感情も忘れて(감정도 잊고서) 泣く(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일이다. 그래서 화자는 意味なんてない(의미 따윈 없는) 此処には(이곳에서) 벗어나 笑っていたいんだこんな日々を(이런 나날을 웃으며 지내고 싶)다는 도모를 기획한다. 그것은 마리화나 같은 마약의 환각성이 보여주는 가상에 마취되고 싶다는 침전의 극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화자의 침울한 분위기는 2절에서도 해소되지 않고 나타난다. 浮かぶ星はただ影を照らすだけ(떠오르은 별은 그저 그림자를 비추고 있을 뿐이야)에서 화자는 떠오르는 별을 보고 '너'가 오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품지만, 그 별이 결국 나를 비추지 않고 배경인 그림자만을 비춘다. 여기서 떠오르던 별은 화자가 기다리던 '너'가 아님이 밝혀진다. 이러한 기대와 현실의 편차 속에서 화자가 '너'의 흔적을 회상하는 것은 자연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マシュマリー』에서 MIMI는 환상으로의 도피만으로 노래를 끝맺지 않는다. 『くうになる』에서와 같이 MIMI는 우울과 슬픔 속에서도 언제나 희망의 빛을 잃지 않는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MIMI가 노래를 통한 위로를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マシュマリー』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後悔の昨日を映させて(후회의 어제를 비춰달라며) 零すだけ(투덜댈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후회의 어제를 비춰달라는 말이 가지는 함의는 의미심장하다. 후회의 어제에 희망의 빛을 달라는 목소리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또는 자신이 그동안 도피하고자 했던 후회의 어제에 빛을 비추고 마주할 기회를 달라는 불평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것은 '너'와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세계를 향한 불평이자 환상에 매몰되어 있는 스스로를 향한 내면의 자아가 던지는 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파문에 空の底(하늘의 바닥) 倒れこむ(쓰러져) 간다. 마리화나적 환각성이 주는 가상의 하늘이 무너지고 그 틈새에서 화자는 미래를 향한 서광을 포착한다. 見えた明日は綺麗で…(보였던 내일은 아름다워서…) 그리하여 마침내 화자는 환각의 수렁에서 벗어나는 반항을 감행한다. 逆らってゆくの!(반항하는 거야!)라는 외침으로 더 이상 마약적 환상의 세계가 비극적 현실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스스로에게, 나아가 노래를 듣는 청자에게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환상적 세계가 무너지고 외면하던 후회의 어제에 빛을 비출 때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아름다운 내일의 빛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환상계에서 현실계로의 지향은 시간성의 감각에서 또렷이 드러난다. 1절에서 数秒前(몇 초 전)이 어디에 있는지 갈피를 못 잡던 화자는 여기서 抱きしめて忘れないで(끌어안고서 잊지 말아줘)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떠오른 星の空(별의 하늘)廻り出した(돌기 시작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의식하고 있다. 그러한 직시는 涙(눈물)을 흘리게 되는 괴로운 일이지만, 결국 그것만이, 환상적 세계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를 부딪혀 광채를 틔워 나가는 것만이 笑える(웃게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5. 정리 ─ 살아가는 이유의 근원적 부재성 속에서 피어나는 MIMI의 심화(心畵)
GgbVs_ia8AA6DA9.png 『マシュマリー』Image. Illust: マルシェ

MIMI 초기 서정성을 대표하는 『マシュマリー』를 중심으로 전후 4곡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くうになる』의 핵심 주제였던 존재론적 고민의 근원이 '너'와의 이별 상황 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MIMI는 그러한 이별이라는 문제적 상황 속에서 번져나는 슬픔과 공허, 타락의 꽃들을 감정적인 복합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살아가는 이유'가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존재에 지탱하여 만들어지는 것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단지 생의 여정에서 우리가 순간마다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까닭은 사회적 울타리가 발산하는 진동감으로 스스로의 방향성을 어림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울타리의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존재론적 불안정성을 정면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다. 특히 그 울타리에 이어진 관계적 실타래가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그 장력의 반작용으로 불안정성의 바깥을 향해 튕겨져 나가는 힘은 더욱 세지기 마련이다. 유대 속에 잠재하던 위치 에너지가 파열을 일으키며 운동 에너지로 전환하는 순간이 『くうになる』에서는 실거(失據)로 나타나고 『マシュマリー』를 전후한 곡들에서는 실연(失緣)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 둘 모두가 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동일하다. 그것은 존재론적 정위의 실패이다.

그러한 존재론적 정위의 실패는 자아의 실지에 거대한 위기를 몰고 온다. 그 위기감과 촉박감이 자아에게 극도의 긴장을 유발해 '쉴 틈 없는 경계'를 강요한다. 의식적 첨예의 고통 속에서 『マシュマリー』의 화자가 선택한 수단은 몽상 속으로의 도피였다. 화자는 오직 그 환각의 테두리에서만 자아의 안식을 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탈적 쾌락은 마치 마리화나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MIMI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환각과 현실 사이의 불가피한 괴리적 거리감의 인식이었다.

MIMI는 이러한 인식성에서 불거지는 수많은 감정적 회오리를 환경성 속에서 주관적으로 인지화된 채색적 이미지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현대의 예술은 일종의 자기표현적 예술의 시대로 여겨지고는 한다. 정형화된 미(美)적 범주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해석적 언어로 나아가는 경향은 예술지상주의의 지향점과도 다른 일종의 표현지상주의로 지칭해 볼 수 있을 듯한데, 이는 현대의 거의 모든 예술을 통틀어서도 가장 상업성과 동떨어진 시(詩)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조적 흐름은 때때로 해석 불능성의 파도에 스스로를 내던져 버리는 침몰적 행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표현을 위한 표현, 전위를 위한 전위에서 벗어나 시의 언어성, 함축성에 대한 고민을 날카롭게 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MIMI의 악곡은 현대의 자기중심적 난해에 경사되어 가는 '시적 방향'에, 특유의 언어적 민감성으로 빚어낸 서정적 감수성과 함축적 여백으로 큰 경종을 준다. 존재론적 고민과 심적 고통이라는 중심 주제를 언어적으로 확장해 가면서 매번 색다른 세계적 인식과 표현미를 선사하는 MIMI의 눈부신 시적 성취는 그 초기에서부터도 이미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었다. 『マシュマリー』에서 화자의 환상 중독을 상태적 표현으로 암시하는 것에서부터, 水平線(수평선)-渦(소용돌이)-あの数秒前は海の中(그 몇 초 전은 바다 속에)-水面(수면) 그리고 섬네일에서 바다를 연상시키는 저채도의 차분한 하늘색 배경과 세일러복을 입고 잠겨 들어가는 듯한 미쿠의 모습까지 작품 전체적으로 유기적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モーメント』에서 해안가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장면을 海辺を灯る景色の奥が / 不意に潤んで 溶け出したんだ(해안가를 비추는 풍경의 안이 / 돌연 눅눅하게 녹아내렸어)라고 표현하면서 일상적 언어를 비틀어 함축적으로 시화하는 감각, 願う色は 言葉を照らすのに / 夜の月は 道を隠す様で(바라는 색은 말을 밝히는데 / 밤의 달은 거리를 숨기는 듯해서)에서 소원을 이루고 싶은 말은 가득하지만 그 방법을 찾지 못하는 화자의 모습을 색채적 마음과 현실의 밤거리를 대비시켜 자아내기; 『フローレミ』의 宇宙を描いてゆく / 何処かの始点を目指すほど / 離れて行ってしまう重力の先(우주를 상상해나가 / 어딘가의 시작을 향할 정도까지 / 멀어져서는 중력의 끝이 갈라져버려)에서 이별을 우주적 관점에서 '중력의 갈라짐'으로 비유하는 방식; 『哀の隙間』의 手探りで探してる 遠くを流れて征く明日へ / 言葉を重ねる 心が確かに在るだけ(더듬거리며 찾고 있는 저 멀리 흘러간 내일에 / 말을 되풀이하는 마음이 확실히 있는 것뿐)에서 言葉を重ねる 心(말을 되풀이하는 마음)이라는 직감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시어를 끌어오는 어휘력 등; 수많은 면면에서 MIMI의 탁월한 언어적 감수성을 짐작할 수가 있다.

일상의 풍경 속에서 겪는 마음의 문제를 새로운 언어적 시각으로 선사하면서도 직관적인 서정성, 시적 배경과의 어우러짐 등을 놓치지 않는 MIMI의 정취로부터 사람들은 전에 없던 시적 아름다움을 은근히 느끼게 된다. 화자가 헤매는 보편적인 방황 속에서 우리는 그 처지에 스스로를 이입하며 공감하게 되고, 마지막 MIMI가 지피는 위로의 모닥불에 현실의 얼음을 녹이는 따스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MIMI의 노래를 사랑한다.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과 함께 피어나는 언어적 파동과 존재론적 부유감. 우리의 존재는 슬프고 아프고 헤매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MIMI의 심화(心畵)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6. 후기 ─ MIMI와 함께하는 위로의 다음 방향

이상 MIMI의 서정성의 출발을 대표하는『マシュマリー』의 제목의 의미를 '마리화나의 늪'으로 분석하고 그것이 텍스트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곡에 대한 새로운 해석적 시각과 함께 MIMI의 서정성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사람들을 매혹시켰는지를 알아보았다. 당초 『マシュマリー』뿐만 아니라 그 전후의 세 곡, 『モーメント』, 『フローレミ』, 『哀の隙間』 등도 함께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MIMI 초기의 서정성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여유가 남지 않아 전체를 담아내지 못한 점은 아쉽다. 여기서는 간략히 다루었지만 세 곡 모두 시적으로 음미해 볼 만한 지점들이 많으므로, 추후에 기회가 되면 하나씩 찬찬히 짚어보기로 하자.

MIMI가 노래로 전달하고자 한 위로와 희망의 색은 이후 『だきしめるまで』(2022.02.05.), 『今はいいんだよ。』(2022.12.21.), 『ハグ』(2023.11.07.)와 같은 노래들에서 보다 직접적인 위로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 흐름을 쫓아가면서 우리는 MIMI가 생각하는 존재론적 철학의 결정들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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