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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미 Oct 05. 2022

사랑한다고 외쳐본 적 있었나?

ep125 Harry connick Jr.-It had to be you

- 생각 많이 해봤는데…! 당신을 많이 사랑해.

- 뭐라고?

- 사랑해.

- …내가 어떻게 말하길 바래?

- ‘나도 당신을 사랑해’면 어때?

- 가야겠다면?

- 내 말이 장난처럼 들려?

- 미안해. 아무리 연말이라 외롭다지만, 이런 식으로 나타나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말도 안 돼.


- 쓰리, 투, 원, 해피 뉴 이어!


- 이건 아니야!

- 그럼 어떻게 해야 해?

- … 몰라. 하지만 이건 아냐.

- 그럼 이건 어때?

   밖이 21도인데도 춥다는 당신을 사랑해.

  샌드위치 주문에도 한 시간 걸리는 당신을 사랑해.

   미간을 찌푸리고 날 미친놈 보듯 하고,

   너의 향수 냄새가 내 옷에서 안 없어지더라도,

   잠들기 전까지 얘기할 수 있는 당신을! 사랑해.





2주 단위로 참여했던 연기 모임이 끝났다.

정식 연기 수업은 아니었지만, 배우인 선생님의 가이드를 따라 영화 스크립트를 보며 함께 모인 사람들과 대사를 맞추고 연기를 해보는 모임이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기 아쉬운 몇 명이 함께 근처 술집으로 모였다.

겨우 2번 봤지만 연기를 하면서 호흡을 맞춰봐서인지 벌써 꽤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아까 보니 꽤 연기를 잘하시더라고요. 놀랐어요.

연기를 그전에도 배워보셨어요?”

앞자리에 마주 앉은 배우님이 물었다.


“아뇨, 그냥 대본집 같은 걸 사서 집에서 읽어보는 정도였어요. 항상 연기를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은 했었거든요.”


“왜 연기가 배우고 싶었던 거예요? 배우나, 뭐 그런 쪽에 꿈이 있으셨어요?”

함께 연기를 한 남자분이 질문했다.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제 감정을 좀 더 풍부하게 뱉어내는 연습을 하고 싶어서요. “

내가 대답했다.




요즘 연기 수업 다녀,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십중팔구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가 대부분 돌아오는 대답이었다.


연기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했었다. 뒤늦게 배우로 데뷔를 해보겠다거나, 직장인 동호회 연극 무대에라도 오르겠다거나 하는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연기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내 목소리에, 감정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느껴서였다.


“그걸 느낀 어느 날, 혼자서 금방 했던 말을 한 번 더, 한 번 더 다시 뱉어보는데, 여전히 그대로인 거예요.

(원래 내 말투가 좀 무덤덤한 편이기도 하지만) 눈을 감고 들으면 화가 난건지, 슬픈 건지, 그냥 짜증이 난 건지,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모를 것 같더라고요. “



사회생활을 할 때는 감정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 어느 정도는, 아니 꽤 많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에는 좀 더 섬세하게 느끼고 격하게 표현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순간들도 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한테 사랑한다고 막 소리쳐서 말해본 적이 있어요?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나서 울부짖거나, 너무 그리워서 가슴이 미어져서 죽겠다거나, 너무 감격에 겨워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닌다거나, 한 적 있어요? “


물론 이런 상황들이 그렇게 인생에서 자주 겪게 되는 상황은 아니겠지만, 그런 상황이 왔다고 가정해보자. 당장 그 감정을 표현해보라고 말했을 때 과연 그 감정을 고민없이 망설이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가?




사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의 범위는 그렇게 넓지 않다. 감정의 온도가 0도와 100도 사이라면 내가 보통 일상에서 겪는 감정은 45~65도 언저리 어디쯤이지 싶다. 솔직히 말하면, ’매우 즐거움‘과 ’ 짜증남‘ 두 가지로 보통 요즘 어지간한 날들의 내 감정은 모두 설명이 된다.


물론 때론 서운하거나, 아쉽거나, 울적하거나, 웃기거나, 재밌기도 하다. 황당하거나, 설레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아련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감정들의 온도는 딱 적당히 미지근한 온도다.

그래서 이렇게나 다양한 이름의 감정들을 표현하는데에도 소모되는 에너지의 차이가 없다. 그냥 일상적인 감정 정도로만 느껴지는 것이다. 미지근한 물에 온몸을 담그고 오래 있다 보면, 5-10도 정도는 변해도 잘 느껴지지 않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감정을 느끼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연습을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감정을 끝까지 뿜어내는 걸 연기하고 연습하다 보면, 일상에서는 더 자연스럽고 밀도 있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진짜 내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순간에는 나도, 상대방도 내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요.“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하나의 무기가 될 때도 있다. 특히 일을 할 때는 오히려 감정을 숨기는 것이 더 좋은 성과를 가져올 때도 많았다.

하지만 때로는 좀 더 감정을 뜨겁게 표현하고 오롯이 뿜어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그런 관계들도 있다.



그래, 생각해보니...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소리 내어 외쳐본 적이 있었나?






https://youtu.be/if9nW6cLhDM


오늘의 노래는 연기 수업에서 연기했던 대본 중 하나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OST인 <It had to be you>이에요.


요즘 참 별 걸 다한다, 는 말에 이어 ’처음보는 사람들이랑 만나자마자 어색하게 어떻게 연기를 해?‘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면 생각보다 연기라는 걸 잊고 어느새 그 상황 속에 푹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몰라요.


혹시나 하는 맘으로 시작했던 첫 번째 모임이 재밌어서 다시 두 번째 모임을 시작했어요.

이 모임이 끝날 때쯤엔 누군가에게 넘치는 감정을 담아 아주 크게 외쳐보고도 싶네요.

해리가 샐리를 앞에 두고 외치는 마지막 장면처럼, 상대가 이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만큼요.


당신을 사랑해!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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