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어머니의 초상화

왜곡의 껍데기를 벗고서

by 윌마


윤기 없이 푹 꺼진 볼에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입니다. 목과 이마의 주름은 험한 세파를 떠올리게 합니다. 꾹 다문 입은 그녀가 인고의 세월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말해줍니다. 세상은 당신에게 한 번도 친절하지 않았어요. 질병과 배고픔은 고통스러운 일상의 동행이었죠. 18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16명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전방을 직시하는 시선에는 세상의 풍파로부터 지켜야 할 무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고개를 돌리고 회피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인내로 일관된 어머니의 태도는 당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자식 앞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그녀의 부릅뜬 눈에서 운명 앞에서 결코 나약하지 않았던 인간의 강인함이 느껴지네요. 삶은 비루하더라도 비겁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녀. 과연 그녀의 삶에 여백이 있었을까요? 그림에 보이는 하얀 여백이 더 이상 빈 공간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독일 뉘른베르크 방문 때 15세기 북유럽의 천재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의 집에 들렀습니다. 뒤러의 집이지만 그의 작품은 없더군요. 뒤러는 뉘른베르크 태생으로 중세 말과 르네상스의 전환기에 북유럽의 르네상스를 이끌었습니다. 독일이 유로화를 도입하기 전에 화폐에 실릴 만큼 독일 미술의 아버지로 추앙받았던 인물입니다.


이탈리아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그는 천재화가로 불렸습니다. 회화와 판화 그리고 소묘에서 최고의 수준에 올랐고, 인문과 회화 이론은 물론 자연과 식물에 대한 연구에도 성과를 냈습니다. 특히 사실주의라는 북유럽 미술의 특성을 발판 삼아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결이 다른 혁신을 이뤄냈습니다. 한 번도 보지 않고 풍문만으로 그린 코뿔소는 실제 코뿔소보다 더 정교하고, 그가 그린 토끼의 작은 눈동자를 확대해서 보면 검은 눈동자에 비치는 창문을 확인할 정도로 섬세하고 기술적입니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뚜렷한 자의식으로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화가 어머니의 초상화>는 뒤러가 자신의 화려한 예술세계와는 다르게 흑색 목탄으로 그린 소묘입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바르바라 홀퍼(Barbara Durer, 1452~1514)입니다. 우리 나이로 환갑을 훨씬 넘긴 그녀의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합니다. 그림을 준비하는 뒤러의 마음이 급해집니다. 뒤러는 젊은 시절에도 어머니를 그렸습니다. 화가에게 어머니는 가장 찾기 쉬운 모델 중 한 명이죠. 소묘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색을 입혔습니다. 곱디고운 모습은 우리 기억 속의 어머니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대했고, 당신은 기대하는 공간을 채워 주셨습니다. 이젠 우리가 당신의 여생을 꾸며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 앞에서 여전히 기대합니다. 주름진 얼굴과 손등 그리고 굽은 허리를 보면서도 여전히 아낌없이 주던 당신만 기억합니다. 뒤러는 <화가 어머니의 초상화>를 오로지 검은 선과 흰 여백으로 그렸습니다. 무의식적 감정에 치우친 엄마에 대한 시선을 의식의 영역으로 옮기려는 듯 꾸미지 않았습니다. 무의식과 의식이 교차하는 순간 공간은 긴장감으로 채워집니다. 까마득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엄마의 기억들은 왜곡의 껍데기를 벗은 후에야 마치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옵니다.


뒤러는 그리는 내내 마음속으로 눈물을 삼켰습니다. 삼킨 눈물로 자신 안에 잘못 새긴 엄마의 색을 하나 둘 지워갔습니다. 상황에 따라 눈물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뒤러가 흘린 눈물에는 회환이 담겼습니다. 참회하고 속죄하는 눈물입니다. 하지만 참회하고 속죄하면 세상이 달라지나요? 우리는 다음에 또 눈물을 흘릴 것이고, 참회와 속죄를 반복할 겁니다. 오늘 우리가 흘려야 하는 눈물은 내 안에 잘못 새긴 엄마의 색을 온전히 지우는 눈물이어야 합니다. 일상에 숨은 내 안의 왜곡을 지워내는 일입니다. 화가의 엄마는 초상화를 그린 두 달 뒤에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오늘은 뉘른베르크에 살았던 천재 화가의 시선을 빌려 목탄으로 그려진 엄마를 만나려고 합니다. 딱 한 번이라도 진실되게 그려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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