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도 과정일 뿐

대상만 바꿔가면서 투사를 이어간다면 아픔의 패턴은 반복됩니다.

by 윌마
kngwarreye_4_cmyk.width-1200.jpg Big Yam Dreaming, 1995, 출처 : National Gallery of Austrialia

검은 바탕에 흰색 선이 가득합니다. 식량이 귀하던 시절 식구들을 넉넉히 먹이는 것이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양(羊)이 크다(大)는 글자가 만나서 아름다울 미(美)가 되었습니다. Big Yam Dreaming이란 제목에는 야생 감자가 많이 자라 원주민들이 식량 걱정 없이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땅 속에서 감자줄기가 얽히고설킨다는 것은 풍성한 결실을 맺기 위한 자연의 섭리입니다. 감자와 마찬가지로 얽히고설키며 사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호주 원주민 에밀리 카메 크느그와레예(Emily Kame Kngwarreye, 1916~1996)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함께 하면서 자연의 패턴을 몸에 체화했습니다. 그녀는 사전 밑그림은 물론 의도된 구도나 그리는 방향도 정하지 않은 채 캔버스 위에 앉았습니다. 바닥에 놓인 캔버스를 오가며 몸에 체화된 패턴을 자유롭게 화폭에 옮겼습니다.


그녀는 80세가 되는 해에 처음으로 캔버스를 만났습니다. 죽기 전까지 8년 동안 그림을 그렸죠. 호주 정부는 염료로 옷감을 물들이는 전통을 계승 발전하기 위해 여성 원주민들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습니다. 그 활동의 일환으로 그림을 시작한 그녀는 이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갑니다. 상업화된 주류 사회에 물들지 않는 그녀의 그림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무질서한 선을 야생 감자 줄기가 성장하는 자연의 섭리로 이해한다면 그림에 보이는 흑과 백은 표면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대지와 식물, 땅과 사람이 서로 보완하고 어울리는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평생 호주 원주민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며 살았던 그녀는 자연의 섭리를 하나의 패턴으로 인식했고 그 패턴을 자신의 삶에 수용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그림은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자신을 품어준 자연과 자신이 함께 추구하는 꿈을 꾸는 과정입니다.


정형화된 역할에 길들여지면 자신의 정체성을 이들 역할에 투사하기 쉽습니다. 역할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진 것인데 그 역할을 본연의 가치로 잘못 이해하는 것이죠.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그렇게 사는 것이 편안합니다.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에 숨어 찬바람 부는 바깥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미지근한 온기에 매달리고 결국 냉방이 되어 삶이 바닥을 칠 때까지 자신을 가두기에 급급하죠. 현실의 고통을 견뎌낼 일상의 토대를 위해 주어진 역할을 맡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여러 가지 역할이 있을 겁니다. 그 역할이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부는 내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칠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역할을 어떻게 소화할지 선택할 수 있어야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개척할 수 있습니다. 일상의 불안은 주위의 기대를 온전히 자신이 원하는 진실로 수용하지 못한 불균형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사유는 결국 자신의 진실을 찾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그토록 설레던 누군가와의 만남도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투사하는 일방통행입니다. 우리가 이어가야 할 사유는 대상에 기대어 표면에 천착하는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삶의 질곡으로 떨어뜨렸던 마음과 행동의 패턴을 확인하고 다음부터는 잘못된 패턴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을 인식하고 방향을 전환함으로써 삶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까지 끌어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측과 인식의 전환 그리고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과정도 하나의 패턴입니다. <생각의 탄생>의 저자 루트번스타인은 패턴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패턴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크느그와레예는 흑백의 대립이 아닌 어울림의 패턴을 몸의 언어로 체득했기에 무질서한 선을 자유롭게 화폭에 옮길 수 있었습니다. 삶의 근원인 자연을 수용하는 삶에는 주체와 객체, 목적과 수단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분석의 패턴은 자리할 수 없었습니다. 패턴에 대한 믿음 역시 또 다른 틀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 되지 않도록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림과 함께 하는 이 순간도 과정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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