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현재를 인정하고 처음 품었던 마음 그대로 그다음 장을 이어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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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ntity, 성연화(b.1986) 작가
누렇게 바랜 창호지. 네모나게 덧댄 자국들.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아득히 시골집 대청마루에 선 느낌이 든다. 둥근 쇠 문고리가 있었다면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것이다. 문고리를 찾는 손을 어쩌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는 잊었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작품이 아니라 세월의 흔적이다. 길게 난 까만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그은 선이 아니다. 무심히 놓인 획이다.
어릴 적 시골집, 방문을 거친 빛은 부드럽게 들어왔다. 무수한 짐승처럼 달려들던 밝음은 창호지를 거치고 격자살에 부서지면서 수그러들었다. 방안은 아늑했고, 창호지는 안팎으로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는 중이었다. 흰색은 온데간데없이 군데군데 누렇게 바랬고, 이곳저곳 찢긴 곳은 네모나게 덧대져 있었다. 창호지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풀죽을 쑤어 문에 풀을 먹이고, 문에 창호지를 대고 마른 수건으로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렸다. 새하얀 창호지는 강렬했다. 하얀 눈에 덮인 세상처럼 나를 하얗게 물들이는 것만 같았다.
흰 비단처럼 맑은 창호지는 오래가지 않았다. 새하얀 면은 눈부셨지만, 잠깐이었다. 정작 나의 하루를 지켜준 것은 온몸으로 외풍을 막아준 때 묻은 창호지였다. 해진 신발, 반들반들 윤이 나는 가방 손잡이, 볼펜 대를 끼운 몽당연필, 실밥이 터진 민소매 상의. 오랜 시간 나와 함께 세월을 견딘 흔적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한 번도 내게 손짓하지 않았다. 삶을 견뎠던 건, 어쩌면 그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동안 외풍에 겪었다. 햇수로 사 년이 되어간다. 생生의 절반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채웠으니, 남은 절반은 내 이야기로 채우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마주한 현실은, 누구도 내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매달 들어오던 수입이 끊기고, 생활비를 계획하는 일은 긴장과 걱정을 동반했다. 하루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했다. 쳇바퀴 돌 듯한 직장 생활이었지만, 최소한 해야 할 ‘무엇’은 분명했다. 나는 대부분 ‘어떻게’를 고민하며 살았다.
황량한 들판에 홀로 서듯, 나는 다시 ‘무엇’과 씨름해야 했다. 내게 손짓하는 곳은 어디든 찾아갔다. 예전 같으면 귀찮고 멋쩍은 곳도 가리지 않고 어울렸다. 함께 가다 보면 길이 보일 거라며 애태우는 나를 다독였다. 그 과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트에 기록했다. 애써 쓴 내용이지만, 내 길이 아니란 결론에 도달하면 그 기록은 의미를 잃었다. 굳이 남겨둘 이유가 없어 뜯어서 버렸다.
노트 첫 장은 꼭 내 얼굴 같았다. 눈 덮인 들판을 처음 걷듯 조심스러웠다. 첫 장이 더럽혀지거나 조금이라도 성에 차지 않으면 이내 뜯어내고 새로 시작하기 일쑤였다. 스프링으로 된 노트라 흔적은 쉽게 지워졌다. 뜯어 버리는 일에 지치면, 노트를 뒤집어 끝을 처음으로 삼아 쓰기도 했다. 결벽증? 내 방을 조금만 둘러봐도 알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더럽혀진 노트의 첫 장을 뜯어낼수록, 노트는 얄팍해졌다. 나는 흔들렸고, 그럴수록 백지처럼 티 없이 맑은 토대 위에 선 나를 상상했다. 나는 흰 바탕을 시작의 조건처럼 여겼지만, 흠 없이 온전한 바탕을 갖추려는 태도는 종국에는 얄팍한 노트로 귀결되는 극단에 가까웠다. 실패 앞에서 잠깐 안도하려 ‘새로 시작한다’는 감각에 기대는 일이었다. 오히려 애착이 가는 건 손때 묻고, 닳고 주름져 두툼해진 노트였다. 나의 현재를 인정하고 처음 품었던 마음 그대로 그다음 장을 이어가는 일. 삶은 그렇게,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간다.
삼한사온이라는 말이 무색한 날들이 이어진다. 창 너머로 보이는 볕이 좋아 마음은 동하지만, 몸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메마른 풍경 사이로 드문드문 초록이 보인다. 혹한의 한가운데를 나는 풀싹은 가슴에 꽃을 품고 인동(忍冬)하는 것일까. 아니면 추위를 견디고 견딘 끝에, 어느 날 무심히 작은 꽃을 피우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