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혁림 <통영항>과 대통령 노무현
https://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16977
청와대 영빈관 인왕실에는 ‘색채의 마술사’ 전혁림의 대작 『통영항(한려수도)』이 걸려 있다. 미륵산을 중심으로 삼천포에서 거제까지 이어지는 한려수도의 풍경을 강렬한 색채로 담아낸 작품이다.
전혁림 화백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독보적인 색채 감각으로 기억되는 화가다. 평생 통영을 떠나지 않고 남해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바다와 섬, 항구의 풍경은 그의 그림에서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삶의 기억이 쌓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생명력 짙은 색채와 자유로운 형태는 남해의 빛과 바람을 닮았다. 그는 아흔이 넘어서도 붓을 놓지 않았고, 말년까지 왕성하게 작업하며 ‘현역 화가’로 살았다.
2005년 어느 날, 노무현 대통령은 텔레비전에서 전혁림 화백의 그림을 보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다고 한다. 용인 이영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곧바로 전시장을 찾았다. 이후에 구매를 타진했고, 공간 문제로 전혁림은 작품을 새로 그렸다. 작가 나이 아흔의 일이었다.
김해가 고향이었던 노무현은 마음이 복잡할 때면 통영의 달아공원을 찾아 다도해를 바라보곤 했다. 먼바다 위로 섬들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오늘처럼 평온한 날만 있었을까. 풍경 속에서 바다와 섬은 저마다의 진실로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기쁠 때도 있고 괴로울 때도 있다. 세파에 흔들리더라도, 나는 나의 진실로 살아도 된다며 바다는 그를 위로했다. 바다는 바다고, 섬은 섬이고, 노무현은 노무현이었다. 그림 속에는 그때 그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요즘 우리는 풍경을 경험하기보다 풍경을 소비한다. 여행 프로그램은 가장 아름다운 장면만 보여주고, 사진과 영상은 가장 인상적인 순간만 남긴다. 지도에는 사진이 잘 나오는 자리가 표시되고, 사람들은 그 자리에 서서 같은 장면을 찍는다. 풍경을 바라보며 나를 비추기보다 한 장의 이미지로 남을 순간을 찾는다. 시간을 담은 풍경은 사라지고 획일화된 풍경만 남는다. 우리는 풍경 속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풍경을 소비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하지만 어떤 그림은 단순한 풍경으로 남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통영항』은 잘 그린 풍경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낸 풍경이었다. 남해의 바다를 바라보던 시간이 그림 속에서 다시 몸으로 돌아왔을지 모른다. 우리는 흔히 울림이 눈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울림은 몸에서 먼저 일어난다. 오래 기억 속에 잠겨 있던 풍경이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낼 때 그렇다.
해외 순방을 나가면 대통령궁을 방문하고 그 나라를 대표하는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전혁림 화백의 그림이라면, 한려수도를 그린 풍경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보다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직접 만난 작가와 몸소 살아낸 풍경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만 가져온 작품이 아니라, 보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하는 작품, 나의 시간을 품은 작품이야말로 더 깊이 마음에 남는다.
영상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는 사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바다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바다는 내가 직접 경험한 바다다. 현장에서 내가 몸으로 겪는 경험은 시각·촉각·후각·청각·미각이 함께 작동하는 총체적 경험이다. 서해의 썰물 때 드넓게 펼쳐지지만 발을 빼기가 쉽지 않아 더 막막했던 갯벌, 몇 걸음만 들어가도 곧장 깊어지는 동해 바다, 그리고 코발트빛 물결 위에 몸을 맡겼던 제주 바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몸이 기억하는 경험, 총체적 감각이 함께 새겨 놓은 기억일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은 세상에 많다. 그러나 모든 풍경이 우리에게 깊은 공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풍경은 금세 잊히고 어떤 풍경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 차이는 풍경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과 내가 맺어 온 관계에 있다. 아름다움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생긴다. 저마다의 진실이 담긴 풍경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