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려지지 않은 것과 그릴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읽어낼 수 있는 사람
봄이다.
길가에는 개나리꽃이 망울졌다. 이맘때면 동네 천변을 노랗게 물들일 그 망울들의 기세가 무섭다. 풀빛과 물빛마저 고운 풍경에 입가에 미소를 짓다가, 나는 이내 먹먹해진다. 세상은 형형색색 자기 색을 찾아가는데, 나만 유독 흑백으로 남은 듯하다.
꽃은 무심히 피었다. 어제 피지 못한 꽃은 오늘 피고, 오늘 망울진 꽃은 내일 피었다. 꽃은 차례차례 핀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제 차례가 되었을 때 꽃은 핀다. 조팝나무 꽃이 피었다고 싸리나무가 조급해하지 않는다.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나만 좌불안석인 것일까.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꽃은 피고 또 피었다. 꽃이 진 자리에는 잎이 나고, 나무는 금세 무성해진다. 그 무심한 반복이 나를 위로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기계적이다. 많은 사람의 시간과 마음이 모여 완성되는 하나의 사랑이면서, 동시에 순서와 방식에 따라 진행되는 체계적인 일이다. 인간에 무게를 두면 반복의 멍에가 버겁고, 기계에 무게를 두면 단순한 반복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잃는다. 유심(有心)과 무심(無心) 사이를 오가며 흔들리는 것,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 흔들림은 일상의 사소한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이사를 했다. 다섯 사람이 일을 나눠 맡았고, 주방은 그중 유일한 여성이 맡았다. 이사를 마친 뒤 가장 대비된 곳은 주방과 베란다 선반이었다. 주방에는 동선과 배치를 고민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쓰는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한 자리였다. 반면 선반은 그저 물건을 쌓아 둔 상태였다. 그 차이를 보는 순간, 내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그동안 해온 일은, 내가 주위와 맺어온 관계는 일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매년 개나리꽃 길을 걷는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오래전부터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명확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 늘 그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답은 없다. 때로는 일에, 때로는 사랑에 무게가 실린다.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외줄은 아랑곳하지 않고 흔들린다. 그 위에 서 있으려면 긴 장대가 필요하다. 한쪽이 ‘일’이라면, 다른 한쪽은 ‘사랑’이다.
내가 꿈꾸던 사랑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것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서로에게 서서히 물드는 과정이었다. 요즘은 책이 그렇다. 펼치고 넘기고 읽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마음에 닿는다. 사랑은 그렇게 시간을 들여 경작해야 이루어진다.
돌이켜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흘러온 시간이었다. 삶은 극적이기보다 단조롭고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반복되는 하루와 눈에 띄지 않는 선택의 연속이다. 죽을 만큼 힘들지도, 죽은 듯이 무료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방긋 웃는 개나리꽃을 무색하게 하는 이 먹먹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같이 살아내는 그 시간을 마주하면, 우리는 쉽게 말할 수 없게 된다. 그 안에는 말해지지 않은 수많은 순간과 감각이 쌓이고, 끝내 드러나지 않는 저마다의 진실로 남는다. 삶이라는 캔버스 위에 그린 것만이 아니라, 그려지지 않은 것과 그릴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뿐이다. 그렇기에 누구도 그 삶을 부정할 수 없다.
천변에 저마다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개나리꽃은 나를 향해 ‘오직 나의 것’을 묻는다. 삶은 반복 속에서 흘러가지만, 그 안에서 어떤 것은 또렷해지고 어떤 것은 흐려진다. 무엇이 남았는지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된다. 삶은 하나의 완성된 원이 아니다. 저마다 다른 궤적을 그리며, 살아가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뒤늦게 하나의 형태로 드러날 뿐이다. 그 수많은 궤적 중의 하나가 오직 나의 것이라는 사실, 그 자체로 조용한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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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차례차례피는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