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는 것은 안기는 것이다

누가 안은 사람이고 누가 안긴 사람인지 구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랑

by 윌마

서울에서 남쪽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명일동에 있는 보육원에 다녔다. 한 달에 두 번 방문하는 것인데 한 번은 점심을 준비해서 같이 먹고 한 번은 아이들과 함께 바깥세상을 구경했다. 보육원을 찾은 지 얼마 안 돼서 하루는 원장님이 봉사자들을 초대했다. 점심 준비가 힘든 건 아닌지, 지금 활동이 평소 생각하는 봉사와 차이가 있는지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의견을 물었다. 따뜻하게 시작한 차가 식을 무렵 원장님은 그날의 주제를 테이블 위에 꺼내셨다.


"혹시 우리 아이들이 참 답답하다는 생각 안 하셨나요? 자기가 덮고 잔 이불도 개지 않고, 방바닥에 쓰레기가 있어도 주울 생각을 하지 않고."


"네. 그냥 일어나면 TV만 보는 것 같아요. 책을 읽거나 숙제하거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지 않아요."


"길에서 부모와 헤어져 시설에 온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은 버림을 받은 게 아니고 길을 잃은 거라고 믿습니다. 부모들이 자기를 찾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요. 그런데 여기 아이들 열에 아홉은 부모 손에, 지인 손에 이끌려서 이곳에 왔습니다. 자기 집이 어디인지 아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부모에게 돌아갈 희망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


"희망이 없는 아이들은 뭘 해보겠다는 생각을 못 합니다. 뭐라고 탓할 수가 없어요. 뭐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따뜻하게 안아주면 좋겠어요."


가끔 주변이나 미디어에서 희망이 사라진 사람들을 보곤 한다. 보육원 원장님 말씀을 이해한 후로는 곤경에 처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이 변해야 한다거나 노력해야 한다는 식의 계도와 도움이 얼마나 창백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막연했지만 아이들에게 힘이 되겠다 싶어 안아주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다. 희뿌연 얼음장 아래로 물은 흐르고 있었다. 아이들을 안아주면서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내가 살아갈 힘을 얻었다.


안는 것은 안기는 것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림, 나무의 정령, (은지화) 장세현 작가

* 그림은 최근에 좋은 주인을 만났습니다.

Sold Out


* 은지화(銀紙畵)는 이중섭 그림으로 유명하다. 캔버스를 구하기가 어려웠던 시절, 이중섭은 담뱃갑 속에 든 은박지에 못, 송곳 또는 철필로 그림을 그렸다. 장세현 작가는 이중섭의 은지화 전시를 본 이후에 그 매력에 빠졌다. 고심 끝에 담배 은박지 대신 쿠킹 호일을 주재료로 선택했다. 호일에 한지를 배접한 다음, 아크릴 물감을 여러 번 겹쳐 올리는 과정을 거쳐서 그림을 완성한다. 장세현의 은지화는 선에서 색의 마술로 확장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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