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열한 번째 이야기
포르투갈 제 2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포르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작았다. 동네 마실 나가는 기분으로 스리슬쩍 둘러보고 사진 몇 장 찍으면 하루 만에도 웬만한 것들은 다 보고 갈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포르투를 댈 것이다. 그만큼 이 곳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호스텔 스텝을 따라 포르투 시내에 있는 리베르다데 광장으로 나갔다. 여행하기 더없이 화창한 날씨에 이미 광장에는 꽤 많은 여행객들이 모여있었다. 아마도 포르투에 있는 호스텔 몇 군데가 손님들을 모아 공동으로 시티투어를 진행하는 것 같다. 늘 그래 왔듯 서로 이름과 국적을 이야기하며 다소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며, 투어가 시작되었다.
* 작지만 유용한 팁!
포르투에서 타트바 호스텔 혹은 워킹투어를 진행하는 숙소에 머무르게 된다면, 가급적 도착한 날에 투어를 받도록 하자. 비교적 짧은 시간(2시간 남짓) 동안 포르투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투어 때 들렀던 장소 중, 마음에 드는 곳을 따로 한 번 더 방문할 수도 있고, 가이드에게 새로운 장소를 추천받을 수 있다. 피곤하다고 혹은 일정에 여유가 있다고 해서 투어를 다음날로 미룬다면, 첫날에 우왕좌왕 대느라 시간낭비를 할 가능성이 많다.
투어를 받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해리포터의 배경이 바로 이 곳, 포르투에 있었다.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이 포르투를 여행하던 중 발견한 렐루 서점에서 영감을 얻어 '해리포터'의 배경으로 등장시켰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했던 날은 서점이 문을 열지 않아 건물 외관만 보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렐루 서점은 다음날 따로 가서 보고 왔다, 아마 다다음 번 포스팅쯤 등장하지 않을까?)
서점 건너편에는 대학교 건물이 하나 있었다. 뭐라고 설명을 듣긴 했는데,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학교 건물보다 오히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하늘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포르투에서 머무르는 기간이 길다면, 하루쯤 샌드위치를 사다가 잔디밭에 나와 소풍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일상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여유로운 순간을 맞게 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는 일정을 잠시 미루더라도 그 순간을 마음껏 즐겨야 한다.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서울에서는 저 때, 그 감정이 도무지 느껴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포르투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 클레리구스 전망대도 렐루 서점 근처에 있다. 포르투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하니, 정확한 위치를 몰라도 어디서나 우뚝 솟아 있는 종탑을 향해 걷다 보면 금방 도착할 수 있다. 이럴 때에는 도시가 작다는 것이 엄청난 장점이다. 클레리구스 전망대에 다음 날 따로 올라가 봤는데, 힘들어서 죽을 뻔함... ㅡ.ㅡ;; 입장료는 2유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가이드를 따라 골목 어딘가를 정신없이 걷다가 문득 벽에 적힌 낙서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들어 뉴스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블라터 전 회장과 피파의 비리를 포르투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저 당시에는 포르투갈의 축구 영웅 루이스 피구가 피파 회장 선거에 출마했던 때다. 뭐, 피파와 포르투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포르투 골목 여기저기에서 피파를 욕하는 낙서를 유난히 많이 볼 수 있었다.
골목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간 후에야, 목적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고, 멀리 도루(Douro) 강과 루이스 1세 다리까지 보이는 전망 좋은 그곳에서 일단 기념사진을 한 장 박았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서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노랑머리 애들은 포즈나 표정이 엄청 다양하고 자연스러운데, 난 왜 맨날 비슷한 포즈에 어색한 표정인 건지... 남미 여행을 떠나기 전에, 사진 찍히는 연습을 좀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ㅠ
다들 사진을 찍는 반대 방향에는 쓰러져가는(?) 집이 한 채 서 있었다. 그래피티라고 하기엔 뭔가 초라한 낙서들이 가득하지만, 뭔가 묘한 매력이 느껴져서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포르투가 딱 이런 느낌이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건물마다 널려 있는 빨래들... 뭔가 정신없고 어지러운데, 불쾌하다기보다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지는 분위기랄까? 물론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정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내게 포르투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포르투에서 가장 크고 사람이 많이 붐비는 기차역은 바로 상 벤투(San Bento) 역이다.. 그런데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절반 정도는 기차를 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리곤 한다. 그들이 상 벤투 역을 찾은 것은 단지 이 '아줄레주'를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흔히, 포르투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줄레주로 꼽히는 그림들이 상 벤투 역 내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웅장한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림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가이드 말로는 작품 하나하나가 포르투갈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 곳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저번 포스팅에서 아줄레주를 보면 화장실이 생각난다고 했던 망언, 취소해야 할 것 같다.
상 벤투 역을 나와 포르투 여행의 하이라이트 도루 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크고 작은 언덕, 제 멋대로 나 있는 도로, 화창한 날씨 등 포르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 사진 한 장에 모두 담겨 있었다.
뭐하는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포르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축을 꼽으라면 이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 아마 무너진 건물에다가 예술적인 조형물을 설치해 놓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 보았지만, 확인된 것은 없다. 어쩌면 그냥 공사 중인 건물일 수도 있고... 뭐 어찌 되었든, 지금도 포르투 하면 생각나는 몇 가지 장면 중에는 이 건물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다.
드디어 도루 강이 내려다 보이는 루이스 1세 다리에 도착했다. 다리 중앙으로 트램이 지나다니고, 그래서인지 차량은 이 곳을 통과하지 않는다. 덕분에 사람들이 다리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누비며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분명 여기서 사진을 엄청나게 찍어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막상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쓸만한 사진이 거의 없는 건 왜일까? 루이스 1세 다리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숨이 턱! 하고 막힐만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저기 사진 속에 보이는 저따위 허접한 경치와는 차원이 다르니, 기회가 된다면 꼭 직접 찾아가서 경치를 감상하기 바란다. 그리고 혹시라도 괜찮은 사진 건지시면 저한테 한 장만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실제로 와인을 옮기는 배인지 아니면 그냥 설정만 해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강변에는 와인 통을 한 가득 싣고 있는 조각배들이 많이 보였다. 그렇다. 포르투는 와인의 도시였다. 워킹투어가 끝나는 대로, 도루 강 건너편에 줄지어 있는 와인 가게에 찾아가 와인투어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한참 동안 사진을 찍고 다 같이 함께 시내로 돌아가는 길, 저 멀리 클레리구스 종탑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 어디서나 포르투에서는 고개만 들면 저 탑을 발견할 수 있다. 지도가 없어도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아주 고마운 존재다.
워킹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포르투 대성당, 멀리서 쳐들어오는 적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 목적으로 건물을 요새처럼 지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미 도루 강을 보고 엄청난 감동을 느낌과 동시에 심신이 몹시 피곤해진 관계로 성당이 눈에 잘 들어오진 않았다. 사실, 가이드의 설명을 내가 잘 알아들은 건지도 미지수... 게다가 사진을 좀 찍어볼까 했는데, 역광 때문에 성당이 잘 찍히지도 않는 등 이래저래 나와는 아다리가 잘 맞지 않았던 곳이다.
역광을 피하다 보니 찍을만한 거라곤 고작 이 기마상뿐, 그나마 이것도 정면에서 찍으면 역광이었음.
성당을 대충 둘러본 후, 좁은 골목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도루 강변 거리가 나온다. 저때가 아마 3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강가에 있는 레스토랑마다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포르투 시내와 도루 강변의 분위기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시내는 약간 시골 같은 조용함과 평온함이 있다면, 도루 강변은 그야말로 관광지 느낌이 물씬 나는 에너지 넘치는 공간이랄까?
도루 강변에서 보이는 루이스 1세 다리의 모습이다. 파리의 에펠탑을 닮았는데, 실제로 저 다리를 디자인한 테오필 세이리그는 구스타브 에펠이 극진히 아꼈던 제자라고 한다. 에펠탑이 그렇듯, 루이스 1세 다리 역시, 낮보다는 밤에 보이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이 곳의 야경 역시 추후 포스팅을 통해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크루즈라고 하기에는 아담한 여객선을 앞에 두고, 오늘의 워킹투어 일정이 모두 종료되었다. 공식적인 투어비는 무료, 하지만 약 2시간 동안 수고해 준 가이드에게 감사의 표시로 약소하지만 팁을 건네고 각자 다음 목적지를 향하며 헤어졌다. 남은 하루를 워킹투어에서 만난 한국 분과 함께 동행하기로 했는데, 여행이고 뭐고 일단 배가 너무 고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가이드에게 혹시 근처에 추천해 줄만한 레스토랑이 없냐고 물어봤더니, 프랑세지냐를 기가 막히게 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마침 자기들도 지금 그곳으로 밥을 먹으러 가려던 참인데, 같이 가겠냐는 것이다. 'Why not?"을 외치며, 쫄래쫄래 가이드들을 따라나섰다.
금강산도 식후경, 일단 밥 좀 먹고 와서 포르투의 대표 음식 '프랑세지냐'를 소개해 보겠다.
블로그를 방문하시면,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