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열두 번째 이야기
짧지만 알찬 시티투어가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가는 길,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현지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사실, 입맛이 그리 까다로운 편이 아닌지라 무엇을 먹어도 대부분 맛있었지만, 그래도 현지 가이드가 자주 찾는 레스토랑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컸다.
우리가 찾았던 피코타(Picota)라는 식당은 포르투 증권거래소 궁전을 지나 골목길을 따라 조금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다. 나야 그냥 가이드 뒤를 졸졸 따라간 것이 전부였지만, 이 포스팅을 보고 찾아갈 것이라면 언제나 그랬든 구글맵에 'Picota'로 검색해 보거나, 혹시라도 검색이 되지 않으면 아래 주소를 입력해 보시길,
<프랑세지냐 맛집 피코타(Picota) 정보>
주소 : Largo Sao Domingos. nr. 56 4050 - 545 Porto
전화번호 : +351 22 200 60 24 / +351 91 320 41 07
홈페이지 : www.picota.pt
점심시간이 약간 지난 시각이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자리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동안 종업원이 목이라도 축이라며, 생맥주를 한 잔씩 서비스로 제공해주었다. 별 것 아니지만 기분 좋은 배려, 여행을 하면서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기다리는 동안 메뉴판을 살펴보니 음식 가격은 대부분 5~10유로 정도. 그다지 비싸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포르투갈의 물가는 대체적으로 스페인과 비슷하거나 약간 싼 것 같았다. 맥주가 한 잔 들어가서 그랬던 걸까? 식당 안과 테라스를 오가며 이것저것 사진도 찍고 직원들과 농담도 나누면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우리 말고도 가이드를 따라온 여행객들이 몇 명 더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그동안 여행한 곳은 어디인지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20여분 정도 기다렸을까? 드디어 테라스 쪽에 자리가 났다. 테이블 자리가 나길 기다리면서 음식을 미리 주문해 놓은 터라,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고추볶음(?), 머나먼 이역만리 포르투에서 느낀 고향의 맛이었다. 올리브유에 고추와 갖은 양념을 넣고 볶은 듯한 요리였는데, 짭쪼름하면서도 매콤한 것이 꽤 맛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여행객들도 한 개씩 맛보더니, '어메이징!' 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다만, 양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 밥으로 먹기는 좀 그렇고, 술안주로 적극 추천하는 메뉴다. 그야말로 술이 술술 넘어갈 듯... 밤새도록 수첩을 뒤진 끝에 알아낸 이 음식의 이름은 비멘토시 파드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프랑세지냐가 나왔다. 아까 고추요리를 주문한 이탈리아 남자와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한 독일 여자 말고는 다들 프랑세지냐를 주문했다. (여기에는 가이드의 적극적인 추천이 한몫했음) 얼핏 보기에는 오므라이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저 속에는 엄청난 양의 고기가 꽉꽉 들어차 있었다.
'작은 프랑스 소녀'라는 뜻을 가진 프랑세지냐는 크로크무슈라는 프랑스 음식을 포르투갈 식으로 개량해 만든 음식이다. 식빵 사이에 햄과 스테이크를 잔뜩 때려 박아 넣고, 그 위에 치즈를 듬뿍 올린 후, 토마토와 맥주로 만든 소스를 끼얹은 요리인데, 딱 봐도 알겠지만 칼로리가 어마어마하다. 넘쳐나는 칼로리만큼이나 엄청난 맛을 자랑하지만, 다이어트 중이라면 반드시 피해야 할 음식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피코타에서 파는 프랑세지냐 가격은 대략 6유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담하건대, 단돈 6유로로 느낄 수 있는 맛 중에는 최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포르투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반드시 먹어보시길 추천한다. 물론 느끼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프랑세지냐는 안에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주문하기 전에 웨이터에게 간략하게 설명을 부탁하자.(피코타에는 베지터리안 프랑세지냐도 있었다. 다만, 고기 대신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나도 모름)
어떤 사람들은 너무 느끼해서 하나를 다 먹기 힘들었다고 하지만, 나는 전혀 '노 프라블럼'. 오히려 한 접시 더 시킬까 하는 충동이 들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의 그 감동이 떠올라 당장이라도 달려가 한 접시를 후딱 해치우고 싶은 마음뿐이다.
식당 옆에는 스트릿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테라스에 앉아 여유롭게 점심을 먹으며 공연을 즐기는 여유, 유럽 여행이 아니면 언제, 어디서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근데, 한참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쟤네들 뭔가 이상하다. 멀쩡히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 잡아두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테이프로 몸을 사정없이 옭아매고 있었다. 3명으로는 부족했는지, 계속해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 이어 구경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접근해서 뭐라고 계속 이야기하며 자기들 공연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는 분위기랄까?
드디어 그 녀석의 마수가 우리에게까지 뻗쳐왔다. 대충 먹던 거 마무리하고 빨리 와서 같이 놀자는 듯한 모습이다. 배트맨에 나오는 조커의 웃음을 날리며 계속 찝적대는데, 뭔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다들 시티투어를 마치고 배부르게 밥을 먹은 터라 조금씩 늘어지던 순간, 그 녀석의 찝쩍임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조금 더 지켜보고 있으면 뭔가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될 것 같았지만, 갑자기 찾아온 파장 분위기에 나도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간단히 체크인을 마친 후, 시티투어에서 만난 한국인 분과 함께 와인투어를 하기 위해 도루 강 너머에 줄지어 있는 와이너리를 가보기로 했다.
마드리드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 곳으로 넘어올 때만 해도, '오늘 하루 뭘 해야 하나...' 막막한 심정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인연들로 포르투갈에서의 첫 번째 하루가 그렇게 알차게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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