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열세 번째 이야기
흔히 '와인'하면 프랑스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이 곳 포르투 사람들도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포르투 와인이 약간 생소하다고? 식사 후, 단 것이 땡길 때 찾게 되는 달달한 포트와인(port wine)의 뿌리가 바로 포르투(Porto)에 있다.
와이너리가 줄지어 있는 도루 강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왜 '포르투'가 와인의 도시인지 실감하게 된다. 포르투 와인의 역사는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와의 전쟁 때문에 더 이상 프랑스에서 와인을 수입하지 못하게 된 영국 상인들은 프랑스 남쪽, 포르투갈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에도 포르투는 비옥한 토양, 화창한 햇살 등 와인을 생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자랑했다. 문제는 단 하나, 와인 수송선이 전쟁지역을 우회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영국에 도착하기까지는 배로 꼬박 한 달이 넘게 소요되었고, 그 기간 동안 와인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상인들은 와인에 브랜디를 조금씩 섞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부터 특유의 달달한 맛과 향을 가진 포트와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혼자였으면 가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마침 워킹투어에서 만난 한국 분께서 와이너리 투어를 가신단다. 혼자는 외롭지만, 둘은 서로에게 힘이 되는 법! 카메라를 들쳐 메고 길을 나섰다. 시내 반대편으로 건너가기 위에 동 루이스 다리에 올랐다. 강 너머에 자리 잡은 수많은 와이너리가 눈에 들어왔다. 테일러는 어떻고, 샌드만은 어떻다며 일행 분이 미리 찾아 놓은 정보를 술술 풀어내신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기대감은 커져만 갔고, 드디어 강 건너편에 도착했다. 와인통을 가득 실은 배들이 강변에 정박해 있다. 지금도 이 작은 배로 와인을 실어나르는 것일까?
강변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에도 와인 수송선이 한가득 있었다. 그것은 바로 와인 수송선 미니어처. 아기자기한 크기에, 실제 와이너리의 문양을 담은 돛이 너무 귀여워서 '선물용으로 몇 개 사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카메라에 그 모습만 고이 담아둔다. 아무래도 여행길에 이리저리 치여서 다 망가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건은 사지도 않으면서 사진을 찍는 게 죄송스러워 혹시 사진을 좀 찍어도 되겠냐고 여쭤봤는데, 너무나도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워킹투어를 마치고 조금 늦게 출발한 탓에 혹시라도 투어 시간을 놓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장 유명하고 와인 맛도 좋다는 테일러(Taylor's) 샵에 도착했는데, 이미 투어가 모두 종료되었다고 한다. 그때 시각이 아마도 5시 15분쯤이었을 거다. (일행분께서) 인터넷으로 알아본 정보에 따르면, 오후 6시에 마지막 투어가 시작된다고 했는데, 아마도 동절기(10월~3월)라 한 시간 정도 일찍 끝났나 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사진을 몇 장 찍고 있었는데, 한 직원이 다가왔다. 주변에 6시 30분까지 투어를 진행하는 와이너리가 있다고 한다. 심지어 그곳도 자기네들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크로프트(CROFT)'라는 와이너리인데 한 번 가보지 않겠냐고 한다. "Why not?" 직원에게 위치를 안내받아 크로프트로 향했다.
포르투에서의 와이너리 투어는 간단하다. 5유로를 내고 2~3잔의 와인을 시음한 후,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와인 창고 내부를 둘러보는 것, 시간은 대략 20~30분 정도가 소요된다.
포트와인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라, 브랜디를 발효 전에 넣느냐, 발효 도중에 넣느냐에 따라, 오크 나무통에서 숙성하느냐, 병에서 숙성하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맛과 향을 가지게 된다.
크로프트에서는 총 3가지 종류의 포트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와인투어를 시작하기 전에 일단 두 종류의 와인을 마셔보았는데, 정말 맛과 향이 서로 확연히 달랐다. 와인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못하지만, 정말 진짜 완전 다르니, 가서 직접 느껴보시라.
먼저 약 15분 간 와인 시음을 하며 기다리고 나니, 투어가 시작되었다. 와인통이 가득 찬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서늘한 기운이 몰려왔다. 와인은 숙성 단계에서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곳에서는 겨울철에는 11도, 여름에도 18도 이하의 온도가 유지된다고 한다.
통로 양쪽으로 와인통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와인을 보관하는 통은 600리터, 44,000리터, 100,000리터 이렇게 3가지 종류가 있는데, 통이 작을수록 와인이 오크나무 통과 많이 접촉하기 때문에, 화학작용이 활발히 일어난다고 한다. 작은 통에 담겨 있는 와인은 특유의 어두운 색을 잃고 맛도 변하게 되는데, 흔히 우리가 가볍다고 하는 맛의 밝은 색 와인은 대부분 600리터짜리 통에서 숙성된 것이다.
포트와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루비(Ruby)는 44,000리터짜리 오크통에서 와인을 3~5년간 숙성한 후 블랜딩 한 것으로 나무나 공기와의 접촉이 적어 색깔이 진하고, 무거운 맛을 띄기 때문에, 초콜릿, 치즈 등 디저트류와 잘 어울린다고 한다. 뭐 그 외에도, 레이트 보틀 빈티지(LBV; Late Bottle Vintage)는 정통 빈티지 포트와인이 아니라 그냥 있어 보이게 하려고 지은 이름이라는 등 알아두면 좋을 만한 와인 상식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와인에 대한 설명이 모두 끝나고, 창고 밖으로 나와 와인 시음이 이어졌다. 시음에 앞서 와인의 빛깔을 확인한 후, 잔을 돌려가며 와인이 잔을 타고 흘러내리는 속도를 보며, 점도를 느끼껴 보라고 한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직원이 직접 시범을 보여가며 설명해 주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폼 잡는 건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름 의미가 있는 동작이었다. 이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나왔다보다.
와인투어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시음한 와인은 '루비 포트'. 투어에서 디저트와 잘 어울린다고 했던 그 어린 와인이다. 투어를 안 받았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텐데, 괜스레 초콜릿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들었다. 이래서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나왔나 보다.
와이너리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데, 도루 강변이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석양이 지는 모습을 좀 더 구경할까 고민했지만, 일단 숙소로 돌아가 기력을 좀 충전하기로 했다. 대신, 저녁에 강가로 나와 야경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는 걸로... 그러기 위해서는 마트에도 좀 들러서 맥주와 간단한 간식거리도 준비해야 한다. 뭔가 바쁘지만, 알찬 포르투에서의 첫날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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