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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Ko May 01. 2016

도시의 진정한 매력은 광장에서 나온다

역사적으로 유럽의 도시들은 대부분 광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유럽 사람들에게 광장은 다 같이 모여 축제를 즐기며 정치,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토론하는 공간이다. 마드리드에도 스페인 광장, 마요르 광장, 솔 광장 등 유명한 광장이 몇 군데 있다. 오늘은 관광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한 번쯤 지나치게 될 마드리드의 광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도심 속 시민들의 휴식공간, 스페인 광장

가장 먼저 소개할 곳은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동상으로 유명한 '스페인 광장'이다. 사실, '스페인 광장'이라고 하면, 다들 김태희가 플라멩고를 추며 CF를 찍었던 세비야의 광장을 떠올리곤 하는데, 스페인 어느 도시를 가든 '스페인 광장'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 역시, 수많은 '스페인 광장' 중 하나다.

스페인 광장은 마드리드 궁전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마드리드 궁전과 오리엔트 광장 구경을 마치고 오후 6시쯤 스페인 광장을 찾았다. '스페인 광장'은 마드리드의 최대 번화가 '그란비아 거리'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광장 중앙에 높게 솟아있는 기념탑은 세르반테스 사망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16년에 세워진 것이다. 탑 맨 윗부분에는 5명의 여인이 커다란 공을 등에 짊어지고 책을 읽고 있는데, 5명의 여인과 공, 책은 각각 5개의 대륙, 지구, 돈키호테를 상징한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세르반테스의 왼쪽 팔이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세르반테스는 레판토 해전에서 부상을 당해 왼팔을 쓸 수 없게 되었는데, 본인은 조국을 위해 싸우다 얻은 부상을 상당히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각상에도 세르반테스의 부상당한 팔을 그대로 묘사했다. 한편, 조각상 앞으로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79세의 나이로 연극무대에 올랐던 최고령 돈키호테, 이순재 할배의 이야기가 꽃보다 할배에 소개되면서, 이 곳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유럽의 광장은 대부분 중세시대에 건축되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반면,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은 전형적인 유럽 광장과 조금 다른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곳은 1900년대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높은 빌딩과 복잡한 도시의 일상을 피해 호수와 나무 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네 공원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마드리드의 명소, 마요르 광장

유럽 특유의 광장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마요르 광장'을 찾아가 보자. 마요르 광장 역시 스페인 광장처럼 어느 도시에나 반드시 있는 이름이다. 마요르란, 스페인어로 중요한(major)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곳은 중세시대부터 왕의 취임식을 비롯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열렸던 곳으로, 광장을 둘러싼 4층짜리 건물에는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라 그런지, 마요르 광장 주변에는 유독 유명한 음식점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보틴(BOTIN), 대왕 츄러스로 유명한 산 기네스(San Gines) 등이 유명하다. 보틴은 꽃보다 할배에 백일섭 할배가 버섯요리를 맛본 후, '한 접시 더!'를 외쳤던 곳이기도 하다. 음식 가격은 대충 1인당 20~30유로 정도다. 좀 비싸긴 하지만, 마드리드까지 와서 그냥 지나치기는 아쉽다. 웬만하면 꼭 가보려고 했는데, 함께 있던 친구들이 가격을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여서 다른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던 기억이 난다.

헤밍웨이가 즐겨찾았던 곳으로 유명한 보틴, 1726년에 오픈한 세계 최고령 레스토랑이기도 하다.


 스페인 특유의 흥이 넘치는 문화 공간, 솔(Sol) 광장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이 참 많다는 것이다. 특히, 언제 어디서나 음주가무를 즐기며 항상 흥이 넘치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중에서도 솔 광장은 스페인 특유의 재기 발랄한 모습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었던 곳이었다.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 태양의 관문이라 불리는 솔 광장은 그 이름만큼이나 열정이 넘치는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유럽여행을 다니면서 수많은 행위 예술가들을 만나봤지만, 솔 광장에서 만났던 '스케이트 보드 아저씨' 만큼 신기했던 사람을 만나진 못했다. 혹시 배 아래에 뭐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손으로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런 자세로 어떻게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기하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광장의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어갔다. 여기저기서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마술, 차력쇼 등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비보잉 공연이었다.  

일명 우루사 곰으로 불리는 솔 광장의 마스코트

한참 동안 넋을 놓고 공연을 관람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낯익은 동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솔 광장을 대표하는 곰 동상인데, 나무에 달린 산딸기를 따먹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곰이 산딸기를 먹는다는 것도, 그리고 산딸기가 나무에서 열린다는 것도 이 동상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역시 여행은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어 준다. 나름 솔 광장을 대표하는 동상임에도 불구하고, 광장 한켠에 조그맣게 놓여있기 때문에 잘못하다가는 놓치고 돌아갈 수 있으니 유의하시길!

꽤 오랜 시간 솔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다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냄새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얼핏 봐도 예술인의 느낌이 철철 넘치는 아저씨 한 분이 10여 장의 그림을 옆에 두고 '오늘도 황금락카 두통썼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이렇게 락카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만날 때마다, 그림을 하나 사서 집에 가져오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물론 온전한 상태로 가져올 자신이 없어서 곧 포기하곤 하지만, 이 날 역시 이 그림 앞에서 '살까 말까'를 수십 번 고민하고 있었다. 결국에는 그냥 카메라에만 담아오고 말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런 그림을 꼭 사고야 말테다! 


흔히, 유럽을 여행할 때면 유명한 건축물이나 박물관에 가서 사진을 찍고 맛집에 들러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사실 사진을 위한 여행을 한다면 굳이 마드리드에서 광장을 찾을 필요는 없다. 이 곳에서는 사진으로 남길만한 특별한 것들을 찾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들만의 문화와 삶을 느낄 수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지고, 별 것 아닌 것에도 즐거워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이 사람들은 정말 행복하게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청년 실업을 해결해 달라며 시위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우리가 하는 고민을 이 곳 사람들도 똑같이 하는구나'라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빡빡한 여행 일정을 핑계로 그냥 한번 스~윽 둘러보고 지나쳐도 충분하겠지만, 만약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반나절 정도 광장 근처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며, 마드리드만이 가진 분위기에 흠뻑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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