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열아홉 번째 이야기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은 바로 포르투갈에서의 일정 배분이었다. 당초 예정에 없었던, MBA 교류 프로그램(GNAM)에 참여하게 되면서 25일 짜리 일정이 20일로 짧아졌고, 그로 인해 포르투갈에서는 머무르는 일정도 3박 4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리스본과 포르투, 두 개의 도시 중 어디에 그나마 오래(2박) 머무를 것인가를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블로그 후기를 찬찬히 살펴보니, 수도인 리스본보다 오히려 포르투에서의 여행이 더 좋았다는 의견이 많길래, 리스본 일정을 과감하게 줄이고, 포르투에서 이틀을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막상 포르투에 도착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전 조사 당시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변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리스본 근교에 있는 신트라. 리스본을 여행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시내 관광을 포기하더라도 신트라만큼은 꼭 가봐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게다가 신트라도 제대로 둘러보려면 1박 2일 정도가 걸릴 정도로 만만치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 여행 욕심이라 했던가? 신트라에서의 여행담을 들으면 들을수록 생겨나는 욕심을 더 이상은 억누를 수 없었고, 결국에는 야간열차를 타고 조금이라도 빨리 리스본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자정 무렵, 포르투를 떠나 리스본에 도착하는 시간은 약 새벽 4시 반. 버스 터미널 근처 호스텔을 잡아 짐을 맡긴 후, 신트라로 최대한 빨리 이동해서 일정을 소화할 작정이었다.
*<참고> 알아두면 돈이 되는 정보 : 야간 버스 이용 시, 하루치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다. 숙소 체크아웃 후, 짐을 맡겨놓고 시내 여행을 한 후, 버스에 오르면 된다. 물론, 이튿날 숙박비를 결제하면 저녁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후, 버스에 오를 수는 있다. 하지만, 개운하게 샤워를 했다고 해서, 야간 버스에서의 쪽잠이 숙면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낮에 미리 터미널을 찾아 버스 시간과 여유 좌석을 확인해 보니, 좌석이 매진될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혹시라도 나중에 맘이 바뀔까 봐, 표는 미리 예매하지 않았다. 출발 30분 전쯤 터미널에서 표를 구매했는데, 좌석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뭐, 예매를 할지, 안 할지는 여러분의 선택!
* 포르투-리스본 구간의 버스노선은 레데 익스프레스라는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데, 자세한 버스 시간은 홈페이지(http://www.rede-expressos.pt/default.aspx)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금은 19유로, 학생 할인 적용 시 17유로.
버스 내부는 한국의 고속버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등고속보다는 좌석이 좁고, 관광버스보다는 조금 넉넉한 편이었다. 확실한 것은 잠을 제대로 청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는 점. 나름 아무데서나 잠을 잘 자는 편이었음에도 리스본에 도착하기 전, 서너 번은 잠에서 깼던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버스는 리스본에 도착해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터미널 밖으로 나왔는데, 아뿔싸 이게 무슨 일인가? 여긴 내가 생각했던 곳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동네였다.
리스본에서 숙소를 잡아둔 곳은 호시우 광장. 흔히 배낭여행을 할 때, 각 도시 별로 일종의 거점을 잡곤 하는데, 리스본에서는 그게 호시우 광장이다. 리스본과 다른 도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라, 당연히 버스가 그 곳까지 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터미널은 호시우 광장에서 지하철로 서너 정거장쯤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그 때가 새벽 4시 반 쯤이었으니, 지하철을 타려면 두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했다. 그야말로, 멘! 붕!
일단, 미리 다운받아 놓은 리스본 지역 구글 맵을 켜고, 주변 버스 정류장을 찾아가 보았다. 정류장 노선도 상에는 호시우 광장 행 버스가 그 시각에도 있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이역만리 리스본에서 배낭을 들쳐 메고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려 보았지만, 40여 분이 지나도록 버스는 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쳐, 다시 지하철 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까와는 달리 역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문이 열려 있었다. 하지만, 열차 운행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은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와이파이를 찾아봤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지하철 와이파이에 무료로 접속할 수 있었다. '하늘이 날 버리진 않았구나.' 벅찬 가슴을 부여잡고, 구글 맵으로 호시우 광장까지 가는 대중교통편을 찾아보니, 버스가 있다!! 아까는 번지 수를 잘못 찾았나 보다. 분명히, 아까 그 정류장 노선도에는 버스가 있었는데;;; 살짝 억울한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시시비비를 가릴 때가 아니다. 구글 신이 인도하는 대로 따르니, 그 곳에 정말 버스가 있었다.
남들도 다 알지만, 혹시나 해서 적는 Tip> 배낭여행의 필수품 구글 지도를 활용할 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일단 '길 찾기' 기능은 온라인 상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일단 온라인 상에서 경로를 찾아두었다면,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찾아둔 경로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GPS 기능이 살아있기 때문에, 미리 찾아둔 경로 상에서 나의 위치를 확인해 가며, 길을 찾으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구글 지도가 백그라운드 상에서라도 반드시 계속 실행 중이어야 한다.
아직 인적이 없는 리스본의 어두운 새벽 거리를 지나 드디어 호스텔에 도착했다. 리스본에서의 하루를 보낼 장소는 호시우 광장 근처, '리빙라운지 호스텔'. 길을 찾는데 다소 애를 먹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참고로, 간판이 작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으니, 리스본에서 리빙 라운지 호스텔에 머무를 계획이라면, 번지 수(116번지)를 기준으로 찾아가길 바란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에, 혹시라도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벨을 누르고 호스텔로 올라가 보니, 프론트 직원이 밝고 친절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었다.
간단한 예약 정보 확인 및 숙박비 결제 후, 호스텔 직원에게 말을 건네 보았다. 이른 시간에 오게 된 자초지종을 비롯해서, 오늘 하루 신트라 지역을 돌아보고 싶은데 정보가 많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이야기를 하니, 리스본에서 신트라로 가는 교통편부터, 어떤 순서로 일정을 짜는 것이 좋은지까지, 세세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일단, 신트라로 가는 열차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었기에 프런트 한쪽에 마련된 소파에 누워 핸드폰과 체력을 충전하며 짧지만 달콤한 쪽잠을 청해보았다.
참고로 리빙 라운지 호스텔의 숙박비는 6인 도미토리 기준으로 16~18유로 정도다. 조식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지만, 개수가 넉넉한 편이라 사용하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 침대 아래편으로 캐리어를 보관할 수 있는 개인 사물함도 제공하고 있다.
빵과 치즈, 잼, 시리얼, 우유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식 식단은 여느 호스텔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각자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으면 되는데, 주머니 사정이 얇은 배낭여행객들은 이 조식 서비스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아침잠이 많아서, 혹은 귀찮다는 이유로 조식을 거르게 되면, 이게 은근 추가적인 식비 지출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리빙 라운지 호스텔'에서는 웬만하면 조식을 먹고 일정을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은데, 그 이유는 바로...
이 팬케이크 때문이다.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아주머니들이 즉석에서 구워주시는데, 이걸 메이플 시럽에 콕 찍어 먹으면 그 어떤 호텔 레스토랑의 메뉴가 부럽지 않은 맛이다. 둘째 날, 아침 빵과 잼을 접시에 가득 채운 후, 요 팬케이크를 달랑 두 장 가져다 먹었는데, 맛을 한 번 본 다음 곧바로 대여섯 장을 더 가져왔던 기억이 난다. 아침 일찍 신트라로 출발해야 했기에, 첫째 날에는 이 훌륭한 조식을 맛 볼 기회가 없었다.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체크인을 하기 전이니, 조식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별도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아무튼, 소파에 누워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 알람이 눈치 없게 울리기 시작했다. 결국, 천근만근 무거워진 눈꺼풀을 들어 올린 후, 가방을 챙겨 호스텔 밖으로 나왔다. 자, 드디어 이제 말로만 듣던 신트라로 떠날 차례다! 부족한 잠이야 뭐, 기차에서 채우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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