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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Ko Sep 12. 2016

다시 유럽으로... 세비야에서 맛 본 '오늘의 메뉴'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서른일곱 번째 이야기

모로코에 첫 발은 내딛은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모로코, 그리고 마라케시가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것을 보니 이제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할 순간임이 분명하다. 집 앞 놀이터처럼 익숙한 제마 엘프나 광장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19번 버스를 탔다. 그리고 버스는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마라케시 메나라 공항은 오늘도 여전히 아름답다. 공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환전소! 모로코 화폐(디르함)는 다른 나라에서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환전소에서 받아주지도 않기 때문에 남은 돈은 반드시 유로화로 환전해야 한다. 공항 환전소 외에는 디르함을 달러나 유로로 바꿔주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환율이 정말 개판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거라도 건져야지... 

환전에 발권까지 마친 후, 공항 곳곳을 둘러보다가 재미있는 곳을 발견했다. 공항에 흔히 있는 카페인데, 인테리어가 독특했다. 의자와 테이블은 물론 텐트까지 모로코 전통 유목민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게다가 모로코 전통 의상을 입은 직원이 라이브로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 혹시나하고 남겨두었던 디르함을 꺼내 오렌지 주스를 한 잔 사다가 바닥에 철퍼덕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이건 떠나는 내게 모로코가 주는 선물임이 분명하다.   


마라케시에서 다음 목적지인 스페인 세비야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참고로 모로코와 스페인 사이에는 한 시간의 시차가 있다. 오후 1시 반에 이륙한 비행기는 스페인 현지 시각으로 오후 3시 45분에 세비야 공항에 도착했다. 잘 찾아보면 꽤 저렴한 저가 항공편이 있으니, 괜한 고생하지 말고 비행기로 편하게 이동하는 것을 추천한다. 참고로 나는 라이언에어를 타고 단돈 50달러에 마라케시에서 세비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마드리드를 떠난 지 9일 만에 포르투와 리스본, 마라케시와 사하라 사막, 그리고 에싸우이라를 거쳐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어느덧 이번 여행도 후반전에 접어든 셈이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스페인의 모습은 그전에 내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맑고 파란 하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비', 예상치 못한 복병의 출현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일단 숙소에 짐을 풀고 세비야 대성당 근처로 나왔다. 다행히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지는 것 같았다. 일단 뭐라도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식당을 찾아 헤맸는데 다행히 성당 뒤쪽에서 먹자골목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점심시간을 한참 지난 시각이라 가게가 다들 한산했고 문을 닫은 곳도 더러 있었다. 고심 끝에 1386년에 문을 연 것으로 보이는 'Las Escobas'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를 비롯, 가게 내부 인테리어가 꽤나 고풍스러웠다. 몇 시간 전까지 모로코에 있었던 나로서는 이런 분위기가 영 익숙지 않았다. 왠지 모를 불편함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러던 와중에 앞쪽에 놓은 의자를 바라보며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왠지 낯설지 않은 이 느낌은 뭐지?" 머나먼 타지에서 부채표를 만나다니, 더부룩한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부채표만 있으면 뭐든지 소화시킬 수 있겠지?" 빨리 음식을 주문해야겠다. 

자신 있게 메뉴판을 받아 들고 쓰윽 훑어보는데, 메뉴를 고르는 것이 쉽지가 않다. 적응이 될 법도 한데, 그놈의 영어 메뉴는 아무리 봐도 느낌이 잘 오질 않는다. 용기를 내서 웨이트리스에게 메뉴 추천을 부탁했더니 'Menu del Dia' 그러니까 오늘의 메뉴를 한번 시도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전에 포스팅에서 한 번 설명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스페인의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는 '메뉴 델 디아'를 주문하면 훌륭한 요리를 꽤나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라스 에스코바스에서는 에피타이저와 메인 메뉴, 디저트에 음료까지 포함된 세트메뉴를 15.5유로에 맛볼 수 있다.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 "Menu del dia, Gracias!" 입에서 반사적으로 스페인어 문장이 튀어나왔다. 

식전 빵과 올리브, 그리고 음료로 주문한 샹그리아가 나왔다. 상그리아, 마드리드에서 처음 맛본 뒤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기회가 될 때마다 꼭 마셨던 술이다. 포르투갈과 모로코를 여행하면서는 상그리아를 맛볼 기회가 없었는데, 그동안 너무나 그리웠기에,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상그리아는 와인을 소다수로 희석시킨 후 오렌지, 사과 등 과일을 싹둑싹둑 잘라 넣어 만든 과실주다. 과일의 달달함과 얼음의 시원함을 가득 머금은 상그리아를 한 모금 마시면, 뜨겁게 내리쬐는 스페인의 불볕더위와 여행의 피로가 한 번에 쏴악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가스파초! 토마토, 올리브 오일, 식초와 함께 얼음을 갈아서 만든 차가운 수프다. 피망, 고추, 오이 등 야채와 빵을 넣어 먹는 안달루시아 전통 음식인데, 생각보다 입맛에 맞아서 조금은 놀랐다. 요즘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데, 이런 날씨에 입맛 돋우기 딱 좋은 메뉴다. 

드디어 등장한 오늘의 메인 메뉴, Fried Fish, 그러니까 해산물 튀김이다. 흠... 뭐랄까... 술안주로는 딱이지만 끼니로 먹기에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스페인 음식 특유의 짠맛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메인 메뉴는 Fried Fish와 Cooked Dish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참고로 Cooked Dish는 고기다. 그것도 감자튀김과 함께 나오는... 하필이면 나는 왜 해산물 튀김을 골랐을까? 벌써 1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지금까지도 아쉬운 선택이다. 

메인 메뉴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디저트, 바닐라 반, 초코 반으로 이뤄진 아이스크림에 달콤한 휘핑크림이 곁들여져 있었다. 아이스크림 한 입과 상그리아 한 모금으로 이뤄진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어느새 비가 그쳐 있었다. 

사실 아무리 짧은 구간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도시를 이동하는 게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내심 비를 핑계 삼아 오늘은 밥을 먹고 나서 숙소로 돌아가 하루 쉴까 했었는데, 막상 비가 그치니 뭐라도 구경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게다가 세비야에서의 일정은 1박 2일에 불과했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보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자, 그럼 자리에서 일어나 슬슬 밖으로 나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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