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과 정탁, 그리고 이순신의 지인들
윤태호 작가의 『미생』이라는 웹툰은 많은 분들께 공감을 얻어 냈었다. 직장생활에서 필요한 능력에서부터 직장생활의 애환, 대인관계 등등 다양한 측면을 실제와 비슷하게 잘 그려낸 만화인 것 같다. 안 보신 분들은 꼭 보시길 바란다.
이 웹툰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과장이 창업을 하게 되고 계약직 사원이던 주인공 장그래를 같이 일 하자고 부르게 된다. 거기에 장그래의 사수인 김동식 대리가 마지막에 "너무 늦진 않았나요?" 라고 하면서 달려 오면서 만화를 마치게 된다.
이 위의 세 사람 같은 것이 진정한 인맥이다. 몇 년 동안 같이 일하면서 서로를 알고 진심으로 신뢰하는 사이. 삶에서 이런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일 것 같다. 오랫동안 조직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면서 창업에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 상황을 지켜 보다 보니 진정한 인맥을 갖추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초기 사업에서는 성패가 좌우된다는 것을 알았다.
IT업종에 있다가 보니 주변에서 실제 벌어지는 사례인데 어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퇴직면담을 할 때 많이 물어보는 것이 같이 할 분들은 잘 구성이 되었는지 이다. 그런데 잘 갖춰서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아리 등에서 오가다 만난 사이, 또는 그런 사람을 채용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는 반드시 어려움을 겪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대부분 초기 회사는 브랜드가 부족하다. 그래서 일반 채용으로는 좋은 인력을 뽑을 수 없다. 예를 들어서 좋은 개발자를 뽑을 수 없다면 상품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시간도 많이 잡아먹게 된다. 그리고 오가다 만나서 같이 일을 안 해 본 사람들이 모여서 창업을 한 경우면 손발을 맞추는 과정에서 신뢰가 깨지는 경우도 많이 발생을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서로 오해가 싹튼다. 그러면서 일이 잘 진척이 안 되고 서로 이권다툼을 하는 경우나 음식을 못 만드는 음식점 사장님이 주방장에게 휘둘리는 경우와 똑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서 가끔 경력상담을 하러 찾아오는 분들께는 이렇게 질문을 한다. 자신이 주도해서 사업을 하실 거면 각 기능별로 같이 할 수 있는 마음이 맞는 사람이 3명 이상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없다면 직장생활에 좀 더 충실하거나, 아니면 자기를 불러줄 수 있는 인맥을 만들거나, 혼자서 완결성을 가질 수 있는 일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한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소신과 원칙에 따라 살다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중에는 원균을 밀어주는 여러 대신들에게 모함을 당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그 당시 조정의 왕과 대신들은 대부분 공자님이 말하는 개인적인 이익을 좋아하는 '소인'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군자'의 진정한 인맥이 이순신 장군에게도 몇 명은 있었다. 그 인맥으로 이순신은 길을 열었던 것 같다.
첫 번째 가장 중요한 인맥은 서애 류성룡이었다. 이순신 장군과 어렸을 때 같은 동네에서 성장하면서 이순신 장군을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끊임없이 이순신 장군을 천거한다. 류성룡이 지은 『징비록』이라는 책을 보면 류성룡이 얼마나 실무적인 능력과 균형감각이 탁월했는지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런 류성룡이 볼 때 이순신은 나라에 정밀 필요한 인재였다는 생각을 오랫 동안 했던 것 같다.
관중과 포숙이 서로를 알고 인정하여 제나라 환공을 천하의 패자로 만들었듯이 류성룡과 이순신은 서로에게 진정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15년가량을 미관말직을 떠돌던 이순신을 전쟁이 나기 1년전에 적극 추천해서 전라좌수사로 임명되게 한 것은 오직 류성룡의 공이 아닐까 한다. 그가 부임한 뒤에도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순신을 돕는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난중일기』를 보면 류성룡이 이순신 장군에게 『증손전수방략』이라는 병서를 보내 주는 대목이 나오는데 만고의 기서라고 이순신 장군이 좋아하고 고마워하는 모습이 적혀 있다.
이순신 장군도 류성룡에 대한 강개하고 그리워 하는 마음을 일기에 자주 표현하고 있다. 둘의 신뢰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 조선의 위기를 구한 것은 인사를 통해 이순신을 천거한 류성룡과 멋지게 그 역할을 수행해 준 이순신 장군의 공이 가장 크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1597년 이순신의 파직과 죽음의 위기를 구해주지 못했다. 어떤 이는 나중에는 류성룡 조차 자신이 살려고 이순신을 나쁘게 이야기했다고 하지만 막상 천거한 사람으로서 변호하기가 힘이 들었을 것이다. 이 때 이순신과 별 이해관계도 없던 판부사 정탁이 등장한다.
이순신 장군의 두 번째 중요한 인맥은 판부사 정탁 선생이다. 『신구차伸救箚』라는 상소를 목숨을 걸고 올려서 이순신 장군을 죽이려던 선조를 막아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어떤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다. 자신과 정반대의 정의의 길을 갔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랬을까? 죽이고 싶었던 선조를 막아낸 것은 바로 이순신과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정탁이었다.
이 정탁이란 인물은 퇴계 이황 선생님과 남명 조식 선생님 두선생님께 공부를 배운 것으로 유명하다. 경사(經史), 천문, 지리, 상수(象數), 병가(兵家) 등에 이르기까지 정통하였다고 알려진다. 72세의 노구를 이끌고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서 별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을 구했다. 정탁이 지어 올린 『신구차』를 읽어 보면 참으로 명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용이 길어서 다 실어 볼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내용의 흐름은 아래와 같다.
1)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나라가 실의에 빠졌을 때 이순신 장군이 승전함으로써 나라에 자신감을 주었다.
2) 이것은 이순신과 원균의 공이다. 원균의 실적이 높은데 적절한 보상이 따르지 못했다. 원균의 용기가 이순신보다 높다.
3) 이순신 나쁜 마음을 먹고 그런 것이 아니고 병가(兵家)에서는 그럴 수도 있으니 살려서 공을 올릴 기회를 주시면 좋겠다.
이 글을 읽고 느낀 것인데 정탁 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실력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균을 좋아하는 선조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이순신의 공을 일깨우고 기회를 주자고 이야기 하는 흐름을 볼 때 역사에 남을 보고서(상소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이 정말 좋아서 2번의 내용을 쓰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 그러나 누굴 깍아 내리고 누굴 올리는 방식으로는 이순신을 죽음에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정확히 헤아리고 위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쓰신 것이니 그 지혜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탁 선생님의 15대 종손인 정경수씨가 경북일보와 인터뷰한 내용에 보면 류성룡 선생이 정탁 선생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자 그 형인 류운룡 선생이 아주 가는 글씨로 알아보지 못하게 편지를 써서 류성룡 선생에게 들려서 정탁 선생에게 보냈다는 일화가 있다. 그 때 정탁 선생은 밤에 촛불도 켜지 않고 편지를 읽고 답장을 써 주어서 류성룡 선생이 정탁 선생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았다고 한다. 그만큼 정신력이 투철했던 분일 것이다.
이외에도 이순신 장군의 진정한 인맥들은 많았다. 회사를 차리려면 뛰어난 인재와 함께 일을 해야 하는데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는 이런 인재들이 넘쳐 났다. 아니 이순신 장군이 발굴했는지 모른다.
항상 함께했던 동료장수이자 부하인 전라우수사 이억기, 용기 있는 녹도 만호 정운, 물길을 잘 아는 어영담, 거북선 제작을 도운 나대용, 돌격장 이언량, 사도 첨사 김완, 이순신, 장사준, 송희립, 이영남, 선배로서 경험을 제공한 정걸 등 수많은 명장들이 그와 함께 했다.
그리고 이순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조정에 보고한 이원익, 이순신과 티격태격 하다가 결국 이순신을 인정하고 함께 싸우고 이순신에게 명나라 수군 제독의 벼슬을 받게 한 진린 제독 등 좋은 인맥들이 참 많았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인맥들이 얼마나 있는가? 여러분의 30~40대를 헤쳐 나갈 때 정말 도움이 되는 진정한 인맥을 얼마나 갖추느냐가 여러분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이순신 장군은 억지로 인맥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친해지려고 억지로 노력한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예절을 다하고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던 것이 전부였다.
인사담당자로서 몇차례 새로운 조직을 셋팅해 보았는데 이럴 때는 주로 리더급들을 우선 확보해서 그 리더급들이 부하직원을 추천해서 뽑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잘 살펴보니 몇가지 패턴이 보이는데 그것은 분야의 전문성과 좋은 태도를 함께 갖춘 사람을 우선 추천한다는 것이다.
여러 차례 보았는데 아는 리더를 모셔와서 부하직원을 뽑게 하자 전 직장에서 가장 친해 보이던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추천하기에 물어보았더니 그 친구는 전문성은 좋은 예절이나 태도 등이 좋지 않아서 새로운 조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충돌이 생길 것 같다고 나중에 조직이 많이 성장하면 데려와도 늦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결국 진정한 인맥을 만드는 것은 함께 일하고 싶은 신뢰를 얻은 사람들의 관계일 것이다. 이것을 네트웍이라고 한다. 그냥 내가 누구하고 친하다는 것은 이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항상 스스로의 전문성과 태도를 갈고 닦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사진 : 보물 정탁선생 초상.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