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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노 Jan 27. 2022

도톰한 혀



 언젠가는 이 이야기에 대해 글로써 남겨두고 싶었다. 나 이외에 누구도 내가 겪었던 일에 대해 흥미를 갖는다거나 공감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 자신을 위하여 기억이 더 바래지기 전에 기록의 가치로써 써보려 한다.
 시작하기 전에 말해두자면 그때의 기억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당시에(당시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큰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거나 머리를 다치는 일 따위는 없었는데도 이상하리 만큼 그때 그 일에 관련되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일을 알리고 싶지 않은 무언가의 힘이 나의 기억을 헤집어 놓는 것 일지도 모른다. 서둘러야 한다. 그 무지막지한 힘이 관련된 기억을 깡그리 지워버리기 전에.
그건 이십 대 초반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에 나는 시내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일을 하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그 외에 특별한 일은 없었다. 만나는 애인도 없었고 정기적으로 나가야 하는 사교모임 같은 것도 없었다. 확실히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의 일상과는 거리가 있었고 나는 그 확연한 거리를 아주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도 딱히 비관적이진 않았다. 혼자 다니는 것에 재미를 붙였고, 시간이 나면 근처 대형서점으로 가서 인파 속에 섞여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씩 도장깨기 하듯 읽고, 월급날이면 보상을 주듯 책을 몽땅 사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읽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패턴이 없는 듯해도 나름 일상의 룰 같은 게 있었는데 확실한 건 핵심적인 무언가가 빠져있었다는 것이다.
무언가 나를 '건드려'주지 않으면 끝도 없이 굴러갈 모양새였다.






당시 나는 주택가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어서 창문을 열면 앞 집 안방 창문이 있는 정도였다. 그쪽에서도 창을 열면 '안녕하세요' 하고 안부인사를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거리였다. 그건 앞 집뿐만 아니라 오른쪽 집, 왼쪽 집 뒤쪽 집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자정까지 하릴없이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어디서 긴박한 여자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작았던 소리는 절정이 다가오는지 아주 거리낌 없이 신음 소리를 토하는데, 그 울림이 어찌나 크던지, 분명 나뿐만 아니라 옆집 앞집 뒷집에도 들릴 텐데도 어느 집 하나 그들의 쾌락을 멈추지 않고 그저 여자가 흥분을 오롯이 느끼고 오르가슴이 잠잠해질 때까지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그 밤에 처음으로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과 뭔가 교류를 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아마 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날은 늦은 출근이라 점심 전 집을 나섰다. 평일 오전 10시는 정말 한가롭다. 수업을 가거나,  회사를 나가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평일 오전 10시는 자기에게 주어진 뭔가의 역할을 해나가는 시간이었다.
 대문을 나와 오랫동안 문을 닫은 분식집을 돌아가면 큰길로 나가는 길목에 전봇대가 있었다. 그냥 거리에 있는 평범한 그런 전봇대다. 근데 왜인지 나는 갑자기 계시를 받은 것 마냥 전봇대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기엔 전단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그때는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아주아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주택분양이라던지, 과외 전단지라던지. 그런 종류의.
그런데 그 전단지는 무언가를 홍보하기 위해 붙였다기엔 너무 높은 곳에 붙어 있었다. 단지 내가 키가 작아서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키 가 큰 사람이 점프까지 해야 닿을 만한 위치였다.
뭘까. 저기에 웬 전단지일까.


 무언가가 나를 '건드려'주었다.
그 전단지를 떼기 위해 내가 길거리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노력을 하던 중에 누군가 다가오면 아무 일 없는 듯 고개를 돌렸다가 길 건너편으로 사라지면 다시 제자리 뛰기를 반복했을 뿐. 단순한 호기심이라기엔 왜 그렇게 집착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지금 내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과 연관 지을 수 있을까.


 결국 전단지를 떼었다. 그리고 나는 일단 황급히 그곳을 떠났다. 왠지 켕기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그 길로 나는 빵집에 가서 빵을 포장하고 손님을 응대하고 커피를 내리면서 전단지를 살펴볼 시간이 나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나는 두 번으로 접어 놓은 전단지를 펴 보았다.
그건 일반적인 전단지가 아니라 A4용지로 컴퓨터에서 출력한 인쇄물이었다. 그리고 뭔가를 홍보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다섯 줄 정도의 한글로 적힌 메모와 네 줄의 일본어로 된 글이었다.
 그때 내 심장이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인디아나 존스 헨리 박사의 일기장을 발견한 것 마냥 내 앞에 나타난 미스터리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이제부터는 나의 기억을 훼방 놓는 미지의 힘과 대결할 시간이다.
 한글로 적힌 다섯 줄의 메모는 사실 '말이 안 되는 글'이었다. 그러니까 내용뿐만 아니라 문법이 묘하게 이상했다. 아닌가, 문법이 묘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묘했나. 마치 이상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오묘함이었다.  이러니 댄 브라운의 열혈 팬인 내가 얼마나 피가 끓었을까.  


 내용은 누군가와의 헤어짐을 얘기하는 글이었는데,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듯했고, 다시 만나기를 희망하는 글인 것 같기도 했다. 다만 화자와 청자의 성별도 유추할 수 없을 정도로 애매한 단어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라던지, 그녀라던지. 지칭하는 단어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제일 수수께끼 같던 부분은 분명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글이었는데도 내용이 상당히 '성(性)'  적이었다는 것이다.


 글에선 (아마도 화자와 청자 간에 있었던) 키스에 관해 말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는 19금은 오로지 영상으로만 봤었기 때문에 글로 표현된 것에 대해 새삼스럽게 얼굴이 붉어졌었다.
 지금 그때 종이에 쓰여있던 문장 그대로를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머릿속엔 그 느낌 그대로가 살아있는데, 적어내기가 쉽지 않다.


기억나는 유일한 문장은 '도톰한 혀' 뿐이다.
 그리고 밑에는 일본어로 쓰인 글이었는데 아마도 위의 한글로 적힌 글과 같은 글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러니까 뭔가 미묘하게 어긋난 듯한 글은 어쩌면 일본어를 번역한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확실히 확인받기 위해서 일본어를 공부하는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은데, 당시엔 그것을, 그러니까 글 자체를 넘어서 그것이 갖고 있는 메시지 자체를 이해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A4용지를 두 번으로 다시 곱게 접어 한 권의 책에 끼워 놓았다. 그 종이를 들고 다니며 사방팔방 '이것 좀 봐'하며 알리고 싶지 않았고, 나 이외에 누군가 또 그것을 읽게 되는 게 무언가 잘못된 일이라고 느꼈다.
*이른바 본능적으로.
 며칠을 기다렸지만 친구의 답변은 '잘 모르겠다'였다. 지금 같았으면 사진을 찍고 번역기를 돌리면 되었을 테지만 그때엔 그 방법만이 유일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글을 해석 못한 게 어찌나 다행스럽던지.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어느 정도 내 흥미와 호기심이 사그라들자 이번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이 누군가를 향한 메시지를 멋도 모르고 단지 내 호기심을 충족 시 키위 해 가로막은 것은 아닐까.  
 나는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이상한 위치에 붙어있던 그 전단지가 정확히 맞은편 주택 2층 창문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저 2층 방의 주인이 바로 그 '도톰한 혀'를 가진 '그 사람'일까. '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손이 닿지 않는 전봇대에 종이를 붙이기 위해 '그 사람'은 얼마나 많이 점프를 뛰어야 했을까. (물론 그 사람이 거인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그 둘은 재회를 했을까.
아니, 아마 못했을 것이다. 아마 나 때문에.
나는 전봇대 아래 버려놓은 쓰레기봉투처럼, 편지만큼 묘한 죄책감에 빠진 채로, 2층 창문 방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책을 펼쳤을 때 그 종이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책 사이에 넣어 놓은 후로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는데, 책장을 모두 뒤엎어봐도 종이는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종이에 적혀있던 문장들이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다.
 시간이 지나고 그 정겹던 이웃들이 살던 주택가를 떠나게 될 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든 종이를 뒤적거려 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뭔가 아쉬운 마음에 일어로 적힌 글을 물어봤던 친구에게 전화를 넣어 봤다.
'혹시 예전에 내가 일어로 된 글 물어봤던 거 기억해?' '그런 적이 있던가? 기억 안 나는데..'
나는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했지만 친구는 기억해 내지 못했다.
 시간이 꽤 지났으므로 기억을 못 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직감이란 것이 있다. 고백을 할 때 아직 '좋아해요'라는 말도 나오기 전인데도 이건 틀렸다 싶을 때 같은 직감 같은 것. 친구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그에겐 '기억해 낼 만한 것 자체가 남아 있지 않다' 하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이어갈 말이 없어, 한번 밥이나 먹자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 묘한 메시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것을 쓴 사람과 그것을 우연히 가로챈 나뿐이다.
우리는 어떤 인연으로 묶였던 걸까. 그것을 쓴 사람에게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일까.
만약 가능하다면 내 인연의 한 부분을 떼어 그 둘을 만나도록 하고 싶다.
 적어도 한 번은 재회하여 '그때 전봇대에 붙은 내 메시지를 봤어?' '아니, 그건 못 봤는데' '그런데도 우리가 다시 만나다니 정말 다행이야'정도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전봇대에 편지를 붙인 그 사람과,
혀가 도톰한 그 사람,
그리고 여전히 떨쳐내지 못하는 죄책감을 가진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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