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노 Mar 11. 2022

와인과 재즈



"와인과 재즈요?" 나는 앞에 놓인 나무 접시를 왼쪽으로 옮기며 되물었다. "그 둘은 직소퍼즐 같아요." 여자는 샐러드 볼에서 발사믹 소스를 버무린 양상추를 옮겨놓은 나무 접시 위에 덜어주었다. "너무 완벽히 들어맞아서, 숨 막히는 기분이었어요. 직소 퍼즐은 맞추기만 하니까 저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뻔히 무슨 그림이 될지 알 고 있는 것도 별로고."



 여자는 뒤 돌아 차갑게 식힌 파스타 면을 하얀 유리그릇에 담았다. 나는 하얀색 유리가 왜인지 따듯한 색감으로 느껴져서 조금 당황했다. 여자는 손이 빨라서 금세 면 위에 물, 설탕, 레몬즙, 간장, 화이트 발사믹 식초를 섞어 만든 소스를 뿌리고 다진 양파와 올리브유를 둘렀다. 그리고 하얀 덩어리의 부리타 치즈를 꺼내어 파스타 위에 얹었다. 후추와 바질까지 뿌려 완성된 차가운 파스타는 식탁 위에 올려졌다.



"그래서 저는 그랬죠, 와인 같은 건 모른다. 마실 줄은 알지만. 재즈도 모른다. 그래도 다른 좋은 노래는 많이 안다.라고." 여자는 대충 묶은 머리에서 흘러나온 한가닥의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여자의 손 끝이 빨갰다.

"상대방은 뭐라던가요?" "와인은 이렇고 저렇고, 재즈는 또 누가 훌륭하고,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여자는 식탁을 눈으로 훑으며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불현듯 내 눈을 마주 보며 덧붙였다. "마치 내 대답은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이 말이죠." 여자는 냉장고 문을 열고 차가운 맥주병 두 개를 꺼냈다. "잔?" 여자가 물어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샐러드에는 양상추와 방울토마토, 닭가슴살, 당근이 들어있었다. "잘 먹을게요." 나는 양상추와 닭가슴살을 포크로 찍어 한 입에 먹었고 여자는 자신의 접시에도 샐러드를 덜어 담았다.

"만났던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실례일지도 모르겠네요." 여자의 포크엔 양상추와 당근이 찍혀 있었다. "아니에요." 뭔가 말을 잇고 싶었는데 적절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니라는 말은 진심이었다.

 평범한 일은 아니긴 했지만 어차피 여자를 만나고 난 후 평범한 일이라는 건 없었다. 평범함이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는 뼈를 좋아한다는 이상한 계기로, 우리 둘을 한 접점에 이르게 한 친구에 의해 만나게 되었다. 내가 뼈를 좋아하는 것은 단순히 공룡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런 뼈들이 전부라면, 여자가 탐구하는 뼈는 그보다 더 깊고 진했다. 여자는 와이너리 공사 중 발견된 오래된 유골 사진을 보내주며 골반의 각도를 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얘기해 주기도 했다. 나는 사진을 보고 이제 막 먹으려던 감자 그라탕을 손도 대지 못하고 포크를 내려놓아야 했지만, 여자가 들려주는 뼈 이야기가 재미있어 한참을 식탁에 앉아 얘기를 듣곤 했다.



'너처럼 특이한 사람이야. 그래서 뭔가 통하지 않겠어?'라는 친구의 말이 예언처럼 들어맞은 것이다. 우리는 가끔 통화했고 오래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오늘 여자는 집으로 나를 초대해주었다.

"어때요?" 여자가 물었다. 어떤 게 어떠냐는 것일까. 샐러드가? 만났던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좋아요" 무엇이든 좋았다. 여자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씩 웃었다. 아주 멋진 표정이었다. "우리는 재즈 대신 Judas Priest?" 나도 웃으며 답했다."너무 좋죠."



어째서 차가운 파스타에 병맥주, Desert Plains가 한 식탁에서 어우러지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여자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즐겁다는 것이다. 여자는 방금 전 포크에 면을 돌돌 말아 입에 쏙 넣었다.

그녀는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묻는다. "아, 새로 발견된 유골 사진이 있는데 한번 볼래요?" 나는 도통 무슨 이유로 이 여자가 좋아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깊게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여자를 만나고서 평범한 일이라곤 사라진 지 오래니까.


<完>

작가의 이전글 세상 어디에도 똑,똑하며 뛰는 심장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