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 같은 조그만 상처 하나 남기고

by 파노




아홉 시 반 출근. 차를 몰고 오면 이십 분 남짓한 거리.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 전원을 키는 것이다. 그리고 신발을 운동화로 갈아신고, 36개의 계단을 오르고, 30도 정도 되는 오르막길을 올랐다가, 다시 그 정도 경사가 되는 내리막을 걸어 내려간다.

작은 쪽방에는 대나무 돗자리가 펼쳐져 있고, 연꽃무늬로 조각된 나무로 된 좌식 테이블이 있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조금 뒤 상사가 들어온다. 간단히 그날의 일에 대해 조회하고, 감사나 운영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업무를 시작한다.

각 방의 창을 열고, 밤새 고여있던 공기를 환기한다. 볕이 좋으면, 건조대를 바깥으로 꺼내 솜베개를 말리기도 한다. 젖은 걸레와 마른걸레, 두 가지를 준비해서 각 방을 닦고, 마룻바닥, 좁은 툇마루를 닦는다. 화장실은 바닥과 세면대, 거울까지 세정제를 뿌리고, 솔로 문질러 닦는다.


왼쪽 귀에 꽂은 무선이어폰에서는 쉴 새 없이 누군가 노래를 불러댄다. 가끔 색소폰을 불기도 하고,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한다. 무선이어폰을 꽂지 않은 오른쪽 귀에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들린다. 무슨 새인지 다채로운 지저귐도 간간이 들리곤 한다.

S는 하나의 몸뚱이로 두 가지의 소리를 듣지만,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만큼 일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두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소리는 거진 일이 마무리가 될쯤 다시 들린다. 시간은 11시쯤.

다시 작은 쪽방으로 들어가 앉는다. 쪽방은 2면이 큰 창이 나 있고, 나머지 2면은 바깥으로 이어지는 문과 안 쪽방으로 이어지는 작은 문으로 되어 있다.


S는 잠시 앉아 땀을 식힌다. 왼쪽 귀에서 이어폰을 빼내자, 자연의 소리가 구슬을 꿰듯 몸을 관통한다. 그곳에서 S는 이른 점심을 먹는다. 가방에서 아침에 싸 온 도시락을 꺼낸다. 간단히 먹고 싶을 땐 구운 계란과, 볶은 버섯을 싸 오고, 활동량이 많은 날에는 간단한 달걀 볶음밥을 싸 온다. 기다란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도시락을 먹고 난 뒤엔 통을 간단히 씻어 가방에 담고, 휴식 시간을 갖는다. 휴식 시간이라고 별다른 것은 없다. 앉아서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지켜본다거나,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사라져 버린 쓸쓸한 뒷마당을 내다보는 것이 전부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는 것. 이건 S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어느 곳에서나, 커다란 나무와 울창한 잎, 그리고 머리카락을 나부끼는 정도의 바람이 있는 곳이면, 언제나 S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나뭇가지의 초록 잎을 쏴아악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본다.

그 장면을 유심히 본 이가 있을까.


가지는 느릿하게 흔들린다.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S는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시간도 그때만큼은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S로 하여금 시간을 시각화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면 조금은 사는 것이 두렵지 않게 생각되었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를 다섯 마리 낳았다. 하지만 S가 4일을 쉬고 돌아온 날, 모두가 떠나고 새끼 한 마리만 개에게 물려 쓰러져 있었다.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보였다. 파리가 윙윙거리고, 구더기가 끓었다. S는 종이컵에 물을 받아와 살짝 고양이 입에 흘려 넣었다. 쓰러져있던 녀석이 온 힘을 다해 S의 손가락을 물었다. 첫 번째 병원은 가망이 없다고 했다. 죽을 때까지 그냥 둘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그러기엔 고양이의 생명이 아직 붙어 있었다. 죽는 순간까지 구더기가 온몸을 파먹히게 둘 수는 없었다. 두 번째 병원에서는 하는 데까지 해보자고 말했다. 구더기를 치웠지만, 상처에서 끊임없이 올라왔다. 이것저것 노력했지만, 치료를 받고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새끼 고양이는 죽고 말았다.


S는 그날 새끼 고양이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아직도 녀석에게 물린 손가락은 통증이 남았다. 그것이 참 묘하다. 이 통증이 새끼 고양이가 세상에 살았었다는 증거. 하지만 이제는 없는 것. 남은 통증은 그럼 무엇일까. 어째서 남아 있는 것일까.

S는 다른 나머지 새끼 고양이들이 보고 싶었지만, 개에게 물릴 위험이 있는 이곳으로는 다시 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때로는 그래야 할 때가 있다. 그리운 마음을 접어야 할 때가.


S가 슬펐던 건, 새끼 고양이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은 아니었다. 쓰러진 것을 처음 보았을 때도 가망은 없어 보였다. S가 슬펐던 것은, 숨이 다할 때까지 괴로운 상태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살을 파먹는 구더기만이라도, 그런 마음으로.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S는 왜 다른 병원을 찾아서 또 갔던 것일까. S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것을 보며, 그 잎 사이사이를, 어떤 생각으로 스쳐 가는지를, 그리고 흩어지는가를 생각하며 깨닫는다. 슬픈 건 모든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고.


아린 통증은 새끼 고양이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저, 손가락에 얼룩 같은 조그만 상처 하나 남기고. S가 사랑하던 털끝 하나까지 생명력을 뿜던 새끼 고양이는 이제 없다. 땅에 묻혀 썩어갈 사체뿐. 그러니 S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로 마음먹어본다.

어차피 모든 것은 다, 얼룩 같은 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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