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_ 흑과 백의 요리가 아닌 사찰음식(1)
등불을 밖에서 찾지 말고,
스스로를 등불로 삼아라.
넷플릭스 시즌2 흑백요리사에 선재스님께서 출연하셨을 때, 보는 내내 마음을 졸이면서 봤었다. 경연의 합격 여부 때문이 아니라, 살벌한 경쟁에서 혹시나 스님이 곤혹스러운 일을 겪게 되진 않으실까 염려하는 마음이었는데, 방송이 끝난 후 또 여럿의 스님이 출연하는 방송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엔 뭘까, 또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아니겠지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사찰 음식 명장 스님들만 나오는 힐링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포스터 속의 스님들 중에 유독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주인공은 백양사 천진암의 주지스님인 정관스님.
때는 바야흐로 사찰에서 근무한 지 한 달 남짓 된 무렵.
"아, 맞다. 보살님, 호텔조리과 나오셨다고 하셨지요?"
스님께서 나를 보며 물으셨다. 나는 멋쩍어하며, 네, 스님. 하고 답했다. 그렇다. 나의 전공은 호텔조리학이다.
전공이 호텔조리학이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리를 잘하겠구나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수순이다. 요리를 전공까지 한 사람이니.
하지만 내 실력은 당연하지 않다. 부끄럽지만, 난 요리를 못하는 편이다. 때문에 어디 가서 호텔조리를 전공했다고 굳이 말하지 않는다. 요리 실력도 될 수 있으면 감추려고 노력했다. 내 요리를 보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너 호텔조리학과라며?라고 되물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러나 이력서에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사찰음식 소임자 교육이 있어요. 저번달에 미리 신청했던 건데, 공양주 보살님이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못 가게 되었는데, 보살님이 가보실래요? 백양사 천진암 정관스님이 사찰 음식으로 유명하신 분이세요."
사찰에서 일하기 전, 내가 알고 있던 유일한 스님은 『무소유』의 법정스님뿐이었다.
사찰에서 일하게 된 후, 알게 된 스님은 법정스님을 포함해 사찰에 계신 스님 세 분. 그러니까 일생에서 아는 스님이라곤 총 네 분뿐인 애송이가 나였다. 정관스님이라. 알 턱 이 없었다.
그날 저녁, 친구와 통화를 하던 중, 사찰음식 교육 일정을 얘기하며 우연히 정관스님의 이름이 나오자 친구가 화들짝 놀랐다. 나는 친구가 정관스님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네가 어떻게 스님을 알아?"
"넷플릭스에 나오셨잖아. 못 봤어?"
"스님이 넷플릭스에?"
도무지 스님과 넷플릭스가 연관 지어지지 않았던 나는 친구가 알려준 대로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았다. 확인만 하려고 틀었던 것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편을 뚝딱 보았다.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머릿속에는 한 가지 사실로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호텔조리학과 졸업생으로서 정관스님께 요리를 배워볼 기회를 얻었다니!’ 같은 순수한 열정 같은 건 아니었다.
내 마음을 가득 채웠던 것은 오직 하나.
"앗싸! 나, 정관스님 요리 먹어본다!"
시간은 흘러 백양사 천진암. 교육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전국 사찰에서 온 공양주 보살님들과 비구니 스님들이었다. 내가 일하는 사찰에는 비구 스님들만 계셨기에, 비구니 스님들을 만나는 자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자리에 여러 분의 스님이 함께 계시니, 불치병인 뚱땅뚱땅 긴장감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첫자리이자 점심공양은 간소한 음식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정갈한 한 상이었다.
모두가 자리에 앉을 무렵, 호탕하게 웃으며 정관스님께서 나오셨는데, 넷플릭스에 나오는 스님의 모습을 먼저 봬서 그런가, 어쩐지 연예인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기 전, 정관스님께서 "내가 음식을 하는 것은 수행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수업이 시작되니, 정관스님의 말씀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수행은 완성된 음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재료 하나하나와 손질의 모든 과정까지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을.
특히 나물 하나를 재료로 삼을 때에도, 그것을 심고 물을 주며 햇볕을 받고 바람과 서리를 이겨내어 비로소 제철을 맞을 때 정성껏 요리한다는 말씀은, 비단 입으로 들어가는 재료가 아닌 시간을 재료로 삼는다는 인식을 주었다.
정관스님이 해주신 요리 먹을 수 있겠다라며 신이 났던 내가 우스워졌다. 나는 마음을 잡고, 우등생은 아니지만, 반등을 노리는 열등생처럼 맨 앞줄에서 열심히 필기하며 공부했다.
때마침 정관스님께서
"펜 좀 주세요"라고 하시기에
아,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인가 싶어 자신 만만하게 들고 있던
(볼) 펜을 건네드리려는 순간,
정관스님께서 '(프라이) 팬'을 잡으셨다.
아이고, 여기서까지 우당탕탕이냐.
얼굴이 뜨거워지며, 쥐구멍이 어딨나 눈치를 보는데, 순간 창피함도 잊게 할 만큼 달큰한 향이 코끝에 맴돌았다. 바로 정관스님의 시그니처 요리 표고버섯 조청조림이었다.
(이어서)
사찰에서는 정숙해야 한다지만, 제 직장 생활은 우당탕탕 인걸요. _ 계속
생생한 우당탕탕의 근무일지가 보고 싶다면, 인스타그램 @woodangtangtang_tem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