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_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남은 사랑이란
.... 그러므로 장자여,
염부제 중생이 목숨을 마친 부모나 가족들을 위하여
재를 베풀어 공양하되 지극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정성을 다하면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모두 다 이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장경 (제 7품 이익존망품)
내가 사찰에서 일한다고 하면, 절에서 대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곤 한다. 간혹 우스갯소리로 혹시 머리를 깎았느냐 하기도 한다. 그만큼 생소한 일이라는 걸 테다.
"내가 하는 업무는 템플스테이 실무인데, 잡초도 뽑고, 화로대도 만들고, 과일도 닦고, 창호지도 바르고.. 그런 거 해."
라고 답하면,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곧 질문이 이어진다.
"그런데 과일 닦는 건 뭐야?"
과일은 재사 때 쓰는 것으로, 굳이 말하자면, 내 업무는 아니다.
할 일이 잔뜩 쌓여 있을 때, 과일을 닦아야 할 때면 절로 '이걸 내가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뻗친다.
법당에 홀로 앉아 과일을 닦는 나를 본 거사님 한 분이. "그거 다 공덕 쌓는 일이에요"라고 좋은 소리 해주시는 것도 어쩐지 얄미웠다.
아니, 공덕은 나중에 쌓을게요.
지금 쌓인 건 제 할 일이라고요.
내가 닦은 과일이 올라가던 재사였다. 법당보살님이 몸살기운이 있어 재사 뒷정리에 투입되었다.
영단에 모셔진 영정사진에는 멋진 하얀색 중절모를 쓴 할아버님이 계셨다.
법당에는 고인의 자식과 손자까지 가득 차 있었는데, 눈에 띄는 것은 할머님이셨다. 백발이 성성하고, 허리가 굽으신 할머님은 모두가 절을 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영정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마침내 영단을 정리하려는 때에, 할머님께서 처음으로 스님에게 말을 거셨다.
"스님, 혹시 영정 사진은 어디에 두시나요?"
"보자기에 잘 싸서 다음 재까지 보관해 둡니다."
그러자 할머님께선 주저하시며 영정 사진에 시선을 던졌다.
"가능하다면 신중단에 놓아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 영감이 어둡고 좁은 곳은 영 싫어하셨어서."
그 말을 들은 딸은 할머니의 손을 살짝 끌어당기며 나무라듯 말했다.
"엄마, 스님께서 잘해주시겠죠."
스님은 딸의 손길을 제지하듯 손을 뻗으시곤, 그러겠노라고 답하셨다.
스님께 부탁할 때의 할머님의 눈빛에 아릿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어째서 노년의 죽음은 슬프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일까.
가슴이 미어지는 통곡이 없어서였을까?
나이가 들었으니 죽음에 대해 초연해졌으리라 생각한 것일까?
늙었다고 해서 죽음이 슬프지 않을 리 없는데.
그날 이후 과일을 닦을 때 좋은 마음으로 하기로 다짐했다. 이것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남은 이들을 대신해 차려주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 재사상을 아, 귀찮아하면서 할 수는 없었다.
다른 재사가 있던 날. 사랑하는 엄마를 떠나보낸 50대의 따님이 한참 동안 영단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과일도 내리고, 나물도 내려야 하는데, 엄마의 영정사진을 보며 마지막 말씀을 나누고 계시기에 잠자코 대화가 마무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상을 보니, 내가 닦지 않은 과일들이 올라 있는 게 보였다. 재기에도 올리지 않은 그것은 단감이었다.
"엄마. 편해 보인다. 거긴 이제 괜찮지?"
슬픔을 꾹 누른 따님의 목소리 끝이 떨렸다.
"집 앞마당에서 따온 감이야. 엄마가 좋아하던 거. 근데 내가 깜빡하고 커피를 못 사 왔네."
아, 저 감은 어머니께 드리려고 따로 챙겨 오신 거구나.
정말 영가가 내려와 재사상의 음식을 먹는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가는 길에 엄마가 좋아하던 음식을 대접해드리고 싶은 딸의 마음은 안다. 그 마음이 나를 울컥하게 했다.
"그러게, 어머님 커피 참 좋아하셨는데."
따님의 남편 되시는 분도 말을 거들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어떤 커피 좋아하셨어요?"
따님 마음에 한 점의 아쉬움도 남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메리카노든, 카페라테든 상관없었다. 근처 카페까지 차로 가면 기껏해야 5분 거리였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거 있잖아요? 그냥 종이컵에 타 먹는 스틱커피요."
"아, 맥심이요?"
맥심이라면 사무실에 한 박스 있었다.
"제가 커피 타서 올려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내 말에 따님의 눈이 동그래지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
나는 공양간에 가서 제일 이쁜 찻잔을 꺼냈다. 커피 가루를 넣고, 따듯한 물을 부어 잘 저었다. 찻잔을 받침대에 올리고 나서자, 공양주 보살님이 그게 뭐냐고 물으셨다.
그 소리에 공양간에 있던 따님이 나를 보셨다.
"어머, 예쁘게도 해주셨네."
따님은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나를 향해 깊이 고개 숙여 감사함을 표시했다.
영단에 맛있게 탄 커피 한잔을 따님 대신 올려 드렸다. 법당에는 금세 그윽한 커피 향으로 가득 찼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가가 정말 내려와 이 커피를 마시는지 아닌지 보이지 않으니 알 수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건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해서 엄마를 사랑하는 딸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할머님이 내려와 따듯한 커피 한잔 마시고 가시길 진심으로 바랐다.
"내일 갑자기 초재가 생겨서, 과일 좀 닦아 줄 수 있어요?"
"네, 그럴게요. 스님."
"아버님이 산에서 낙상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하네요."
스님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과일을 정성스럽게 닦았다. 유가족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사고로 갑작스럽게 맞게 된 가족의 죽음. 그 황망한 마음을 어찌할까.
다음 날 만난 유가족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매였다. 단 둘 만이 법당을 지키고 있었다. 영정 사진 속 고인은 어느 사진의 일부분에서 따온 듯 옆을 보며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딸은 하염없이 숨을 죽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영정 사진으로 쓸 아버지의 사진을 고를 때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 준비도 못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재사가 끝나고 영단을 정리했다. 남매는 과일 하나 챙겨가지 않고 서로를 부축하며 내리막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저기...."
내 목소리에 남매가 뒤를 돌아보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심히 내려가세요."
섣불리 위로 조차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나를 묵직하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낮선이가 아버지의 명복을 빌어준다는 말이 얼마큼의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부디 두 사람에게 진심이 닿기를 바랐다. 아버지의 명복을 비는 것이 비단 두 사람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다. 나는 그 사실이 두렵다. 언젠가는 이 모든 사랑 하는 것들을 두고 가야 한다는 것이, 어느 날 문득 덮치듯 떠오르곤 한다.
부처님처럼 육체에 집착하지 않고, 생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은 그런 중생이다. 그러니 내가 죽음의 두려움을 잊으려면, 더욱 열심히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을 지우려면, 더욱 열심히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죽음을 맞이하게 될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고 위로해 주고 사랑해야 할 뿐이다.
사찰에서는 정숙해야 한다지만, 제 직장 생활은 우당탕탕 인걸요. _ 계속
생생한 우당탕탕의 근무일지가 보고 싶다면, 인스타그램 @woodangtangtang_tem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