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서는정숙해야한다지만,제직장생활은우당탕탕인걸요

15. 거꾸로 가는 보살

by 파노



베푸는 일로써 인색함을 이겨라.




솔직히 말하면, 사찰에서 일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마음이 보살이 될 수는 없다.


업은 생각, 말, 행동으로 지을 수 있는데, 이 세 가지를 선하게 하면 선업이 되고, 나쁘게 하면 악업이 된다.

당연히 진정한 보살이 되기 위해선 선업을 쌓아야 하지만, 세상이 나를 가만 두지 않아 오늘도 속으로 '다 망해버려라!'라고 생각하거나, 입 밖으로 시원하게 욕 한 바가지 하면서 악업을 짓고서, 퇴근하기 전 법당에 들러 참회 삼배 올리는, 아직은 참으로도 어리석은 중생인 것이다.

그런 중생이기에 사찰에서 만난 인연이라 하더라도 전부를 좋아하기는 어려웠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맘과 같진 않으니.


현 보살님과 마주치는 건 꽤 불편했다. 현 보살님이 나를 못살게 괴롭히느냐? 그것은 아니었다. 현 보살님이 껄끄러워진 이유는 서러운 일중에 제일이라고 하는 '먹을 것' 때문이었다.




거, 같이 좀 먹읍시다~




사찰에서 일하면, 밥을 그득하게 먹어도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 산 길을 오르락내리락하고, 70개가 넘는 계단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야 하기 때문에 배가 금방 쏙 꺼지고 만다. 그러면 곧 입이 심심해지며 주전부리 생각이 간절해지지만,. 편의점이 근처에 없어 금방 사다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 사무실은 공양간과 주지스님의 요사채 사이에 자리하고 있고, 유리창으로 도량의 앞마당이 훤히 내다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 유리창으로 때마침 한가득 찐 고구마가 든 쟁반을 들고 가는 현 보살님이 보였다. 솥에 찐 고구마의 달달한 향에 배가 꼬르륵거렸다.

현 보살님이 다시 공양간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무실 창문을 열었다.

"보살님, 고구마 찌셨어요?"

"응."

현 보살님은 한마디 남기고 공양간으로 건너갔다. 고구마를 쪘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맞게 대답한 것뿐인데, 나는 머쓱해져서 창문을 닫았다.


".... 현 보살님 엠비티아이가 T였나 보네."

어쩔 수 없지. 자고로 아쉬운 사람이 구하는 법이랬다. 나는 직접 공양간으로 갔다.

"보살님, 혹시 고구마 남은 거 조금 있어요? 배가 고파서요."

T에게는 정확한 코딩을 입력해야 원하는 값을 얻을 수 있는 법 아니겠는가. 그러나 나의 정확한 코딩에 대한 현 보살님의 도출값은 단호했다.

“없는데?”

"아, 없구나....."

실망한 마음으로 돌아서려는 순간, 식탁 위에 이미 먹고 버린 고구마 껍질이 한가득 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뭐야, 혼자만 드셨네.’

사무실에 내가 있는 것을 알고 계셨으면서, 스님만 가져다 드리고 내 몫은 하나도 없었잖아,라는 생각이 드니 절로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러나 어쩌랴. 저는 왜 안 주셨어요라고 캐묻기도 애매하고 그냥 넘어갈 수밖에.

하지만 한번뿐일 거라 생각했던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먹는 걸로 치사하게. 됐다, 나도 안 먹어.'

한번 상한 마음은 한동안 풀리지 않았다.






화과자 가져가세요.




방 청소를 마치고 돌아가는 나에게 스님이 화과자 한 박스를 주셨다. 스님이 주신 거라 감사히 받긴 했지만, 사실 화과자는 내 입맛에 영 안 맞았다. 먹지도 못하는 걸 어찌해야 한다? 난감하던 차에 공양간에 계신 현 보살님이 떠올랐다.

'그래, 이거 보살님 드리면 되겠다.'

현 보살님에게 화과자를 드리기로 결정한 까닭은, 내가 착해서도 아니고 마음이 보살같이 넓어서도 아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지 않은 음식이고, 그렇다고 주변에 나눠줄 사람도 마땅히 없어서였다. 그러니 필요하지 않은 것을 줌으로써 나도 문제를 해결하고, 현 보살님도 화과자가 한 박스 생기는 것이니 상부상조 아닌가.


화과자가 든 쇼핑백을 들고 공양간으로 향하는데, 처사님 한분이 나를 잠시 불러 세운 순간, 공양간 쪽 창문이 열리며 현 보살님이 얼굴을 내밀고 말했다.


"처사님! 군밤 쪘어요. 군밤 드시러 오세요."


처사님은 공양간으로 향하고 나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안 보이나? 둘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 굳이 한 사람만 지목해서 부를 일인가?

기분이 확 상해 화과자를 던져놓았다.

'내가 주나 봐라!'

나는 씩씩거리며 악에 받친 다짐을 했다.



업무를 보고 있어도, 아까의 일이 떠올라 분이 삭히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노크를 하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팀장님,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에 사찰을 찾은 반가운 노보살님이 인사를 건네셨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조금 전의 기분 나쁜 일을 금세 잊어버리고 웃음을 보였다.

한참 대화를 나누던 중 노보살님의 시선이 화과자 쇼핑백에 닿았다.

"저건 뭐예요?"

마침 잘됐구나! 나는 쇼핑백 봉투를 노보살님께 들이밀며 말했다.

"화과자인데, 가져가서 드세요. 저는 화과자를 안 좋아해서요."

"마음은 고마운데, 내가 단 거를 못 먹어."

미안한 표정의 보살님이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 현 보살님 드리면 어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 버렸다. 현 보살님 이야기만으로도 기분이 확 상해버린 것이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는지, 보살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조금 전 벌어진 일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그랬구나. 속상하겠네. 현 보살님이 왜 그러셨을까."


노보살님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이 말을 덧 붙였다.





아무래도, 현 보살님이 우리 팀장님한테 역행보살인가 보네.





"역행보살이요?"

역행보살은 뭘까. 역행이라. 기준과는 반대로 나아가는 것. 뒤로 가는 보살이라니?

"그릇된 행동을 보여줘서, 오히려 나를 깨닫게 도와주는 사람을 말해요."

노보살님은 싱긋 웃으며, 기분 너무 상해하지 말고 잘 추스르고, 화과자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라고 말씀하시며 사무실을 떠났다.


노보살님의 말을 듣고 난 후, 곰곰이 생각을 돌이켜보았다. 현 보살님으로 인해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고, 마음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현 보살님의 행동으로 나는 화과자를 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럼으로써 결국 화과자를 처리하는 것은 내 몫이 되어 버렸다. 먹지도 않을 화과자 박스를 들고 이동해야 하고, 집에 가져다 두었다가 종국엔 음식이 상해버려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 분명했다.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일까? 내 기분이 상해서 주기 싫다고 되려 번거로운 일들만 잔뜩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내가 현 보살님의 행동을 용서하고 화과자를 드린다면? 귀찮은 일 없이 문제는 사라진다.


게다가 돌이켜보면, 사실 내가 현 보살님이 너무 좋아서 화과자를 드리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었다. 애초부터 처리하기 곤란한 물건을 대신드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니 내가 화과자를 주려고 했던 것은 현 보살님의 행동과는 별개의 일인 셈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또 한 가지 크게 달라진 것이 있었다. 내 마음속 현 보살님을 향해 불타오르던 분노가 사그라졌다는 것이다.


나는 화과자 쇼핑백을 들고 공양간으로 향해, 현 보살님께 건네드렸다. 현 보살님이 놀랐는지 눈이 동그래졌고, 옆에 있던 노보살님은 기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미움은 미움으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으로만 사라진다.





며칠 뒤.


"아, 배고파...."

과자라도 좀 들고 올걸. 서류를 작성하며 마우스를 딸깍 거리는 그때, 누군가 사무실 유리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아니, 저기..... 이것 좀 먹어보라고."


현 보살님이 쑥스러운 표정을 하곤, 맛있게 찐 단호박을 쓱 내밀었다. 나도 속으론 깜짝 놀랐지만, 곧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보살님."






사찰에서는 정숙해야 한다지만, 제 직장 생활은 우당탕탕 인걸요. _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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