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서는정숙해야한다지만,제직장생활은우당탕탕인걸요

14_ 우리가 진정 보아야 할 것

by 파노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황금도 아니고 보석도 아니다.
진실한 마음, 착한 마음, 아름다운 마음을 주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다.





사찰에서 근무를 시작한 후 방문객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아, 저도 이런 데서 일 해보고 싶어요. 여유롭고 스트레스도 없을 거 같아요."


말과 함께 나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어떻게 하면 사찰에서 일할 수 있어요?" 라고 묻는 분도 계셨다.

아마도 '이런 데서' 라는 말의 의미는 공기도 좋고 풍경도 좋은, 거기에 사찰의 고즈넉함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을 일컬으며, 다른 말로 하자면 '한가로운'이 축약된 의미일 거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공기 좋고, 풍경 좋은 것은 두말할 것이 없지만, 여유롭고 한가롭다? 그것은 보기와 전혀 다르다.

사찰은 참으로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 도량은 넓고, 잡초는 계속 자라며, 낙엽과 눈은 쓸어도 쓸어도 쌓이고, 창호지는 새로 바르면 또 구멍이 나고, 재사와 공양간의 일까지 더하면 만만치 않다. 그러니 "아, 이런 데서 일하고 싶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인력들이 있는 것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아닌데, 만만치 않은데?'라고 울컥하기도 했지만, 사실 방문객들에게 일일이 일의 고됨을 설명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구태여 다른 이의 시선에 상처 받지말고, 오로지 느껴야 하는 것은 사찰이 좋게 보이는구나, 잘해가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이었다.


한 날에 템플스테이에 온 법우님이 같은 말을 하자, 같이 온 친구가 옆구리를 푹 찌르며 말했다.


"사찰에서 일하는 게 쉬운 게 아니야. 여기 관리하려면 얼마나 힘든데."


오잉, 저 법우님은 어찌 저리 아실까. 그러자 말씀하시길,


"사찰에서 일해본 적은 없지만, 자주 다니다 보니까 해야 될 일이 정말 많아 보이더라고요."


아, 저 법우님은 누군가 사찰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셨던 거구나. 그러니 자칫 한가해 보이는 사찰에 모습에서도 숨겨진 많은 일거리를 볼 수 있었던 것이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무엇이든 직접 봐야 아는 것인가?






일찍 찾아온 무더운 계절, 6월까지 달력을 꽉 채우던 템플스테이 예약이 한 더위가 시작되자 모두 시원한 물놀이를 하러 떠났는지, 하향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상한 이야기가 내 귀에 들려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




템플스테이 손님도 많이 줄어서 일하는 것도 없는 것 같던데.




사찰에 가끔 한 번씩 찾아오는 어느 보살님에게서 시작된 이야기였다. 오며 가며 인사한 것이 전부였던지라, 나는 적잖이 황당했다. 대체 무엇을 아신다고 저리 말하는 걸까?

보살님의 그 한마디에 내가 하는 일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드었다. sns로 홍보를 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역 매체에 광고를 올리고, 서류를 처리하기 위해 컴퓨터 작업을 하는 모습을 그저 '할 일이 없으니 사진 찍고 있네' 라고 볼 뿐이었다. 내가 농땡이를 치고 있을 것이라 보는 사람들에겐 나의 노력은 별 의미없는 행동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인식들에게 쫓아가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할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템플스테이 일이건, 사중의 일이건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일했기때문이었다.


그런데 결국 부딪히고 말았다. 방사 청소를 마치고 올라오는 길에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던 보살님과 다른 분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이렇게 손님이 안 오면 이제 템플스테이를 그만해야지. 인건비만 줄줄이 세는 거 아냐."


몇몇의 동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머리에서 열이 훅 솟아올랐다.




이런, 관세음보살!
부처님 죄송합니다. 더는 못 참겠네요




거 참. 사찰 이니랄까봐, 정말 *이판사판이렸다!

내가 씩씩 거리며 고개를 넘어 다가가려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호령이 뚝 떨어졌다.


"뭘 안다고 그렇게 얘기하요?"


호통을 친 건 매일 아침 기도를 올리러 오시는 보살님이었다. 호통에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 하는 그들에게 보살님이 말한다.


"봤소? 다 알고 하는 소리냐고?"

"아니 그거야, 손님이 없으니까. 일을 안하는 건 맞잖아요."

"아따, 손님 없으면 일 없는 거요? 눈 앞에서 일 안 하면 아예 일 안 하는 거요? 그럼 종일 띵까띵까 하다가 눈앞에서만 일하면 일 잘하는 거고?"

"뭔 또 그런 소리는 아니지."

"아니긴 뭘 아녀? 그러는 자기는 사찰 일손 도와 본 적은 있고?"


보살님의 호령에 나머지 분들이 얼른 줄행랑을 친다. 나는 어째선지 꼼짝않고 몸을 숨기고 있다가,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난간 후에야 보살님께 다가갈 수 있었다.


"오메, 팀장님 거기 있었는가?"


오해한 건 다른 분들인데, 되려 보살님이 머쓱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신다.

편이라면 편이랄까. 감사한 마음이 드는 한편, 나를 위해 그렇게 호통을 친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왜 나면 이 보살님 또한 아침 기도 시간 때 뵈면 인사를 나누고, 종종 오며 가며 안부만 여쭈었을 뿐, 내 편을 들어줄 만큼 친분이 쌓인 관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씀해 주셨던 것일까.




"눈에 보이는 행동이 다가 아니잖어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면 안된다니께.
나는 팀장님의 됨됨이를 본 거요."




"됨됨이요?"

"그려요. 진짜 약삭빠른 사람들은 누가 볼 때만 열심히 하는 척하지. 그건 눈을 통해 속이는 것이고. 됨됨이는 속일 수가 없거든.

내가 매일 아침 기도하러 올 때마다 팀장님이 법당을 정리하고 올라가고, 또 내려갈 때 보면은 기와불사 접수처 먼지 털고 있고. 보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요.

법당보살이 재기 정리하자고 하면 웃는 얼굴로 알겠다고 하고, 밭에 무 심자 하면 또 얼른 내려와서 도와주고. 이런 거 보면 알지요. 눈에 안 보이더라도 팀장님은 어딘가에서 뭔 일을 하고 있겠구나 하는 거지. 눈앞에서 일 안 하고 있다고 노는 거요? 그렇게 보이는 것만 보는 게 문제인 거요. 형상만 보면 되는가, 그 너머를 볼 줄 알아야지 말여."


나는 보살님의 이야기에 머리를 맞은 듯 강한 충격을 받았다. 됨됨이를 본다. 그렇게 말을 해준 어른은 처음이었다. 속된 말로, 사장님이 보이는 데서 일해라, 열심히 해도 모르면 땡이다, 이런 이야기만 들었었는데, 보이지 않아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믿어준다니.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이 중요할까, 보이지 않아도 나의 됨됨이를 믿어주는 사람이 중요할까?

나는 시끄러운 마음 소리를 다 잡고 더욱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히 일하기로 한번 더 마음먹었다. 나의 됨됨이를 믿어주는 그 마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이판 사판'

조선 시대 불교 승려의 두 부류인 이판승과 사판승을 합쳐서 부르는 말.




사찰에서는 정숙해야 한다지만, 제 직장 생활은 우당탕탕 인걸요. _ 계속

생생한 우당탕탕의 근무일지가 보고 싶다면, 인스타그램 @woodangtangtang_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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