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_고르고 꿰기만 하면 될 뿐.
"부처님, 현생의 일이 많아서 수행을 잘 못하고 있는데,
좀 쉽게 할 수 있는 방법 없을까요?"
"응, 그래? 그럼 염주를 돌리렴."
“세존이시여, 여래의 모든 법장(法藏)이 비록 깊고 넓으나 저는 근심과 일이 많아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사랑과 연민을 베푸시어 저에게 요긴한 법을 주십시오. 제가 밤낮으로 쉽게 수행할 수 있게 하시고, 오는 세상에서 여러 가지 고통을 멀리 여의게 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번뇌장(煩惱障)과 보장(報障)을 없애고 싶다면 목환자(木槵子) 108개를 꿰어 항상 스스로 지니라. 다니거나 앉거나 눕거나, 늘 지극한 마음으로 뜻을 분산하지 말고 불타(佛陀)ㆍ달마(達摩)ㆍ승가(僧伽)를 부르며 목환자 한 알을 돌려라. 이렇게 점차로 목환자를 열 번, 스무 번, 백 번, 천 번, 내지 백천만 번을 돌려라. 만일 20만 번을 채우고 몸과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며 어떤 아첨과 잘못도 없다면 목숨을 버리고 제3 염천(焰天)에 태어나 옷과 음식이 저절로 풍족하고 항상 안락하리라. 백만 번을 채운다면 108 번뇌의 업을 끊어 없애게 될 것이며, 비로소 ‘생사의 흐름을 등지고 열반으로 나아가는 이’라 하겠으니, 번뇌의 뿌리를 영원히 끊고 위없는 과보를 얻으리라.”
-불설목환자경
"팀장님, 저희 합장주 만들기 시간 언제예요?"
템플스테이를 온 법우님의 눈이 반짝인다. 여러 가지 체험 활동 중에 인기 순위 1,2위를 다투는 것은 단연 나만의 합장주 만들기 시간. 하지만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법우님들만이 아니다.
합장주를 기다려온 사람, 나야, 나
나는 오래전부터 손목에 무언가 차는 것을 좋아해왔다. 왼손목엔 시계를, 오른 손목엔 머리끈이라도 꼭 끼우고 있어야 했다. 그건 단순히 멋 때문이 아닌, 손목에 찬 그것들로부터 안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손목에 무언가 차는 것은 불법을 수호하는 사대천왕처럼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그 무엇이었다. 손목이 허전하면 마음이 불안하고 신경 쓰일 정도로.
마음이 나약한 탓이었을까? 손목에 아무것도 없다고 허전함과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하지만 오늘에 이르러야 그것이 나만의 문제는 아님을 깨달았다.
어쩐지 세상은 흐를수록 누군가에게 힘듦을 털어 놓고,
의지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으니까.
우리는 스스로를 챙겨야하고, 저마다의 위로의 방법을 터득해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에겐 수행이고, 명상이고, 기도 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손목에 차는 팔찌거나, 포근한 이불이거나, 장난감 인형일 수도 있다. 방법이야 어찌 됐건, 내 마음을 챙기고 있다면 우쭈쭈, 엉덩이를 토닥이며 칭찬해줄 일이다.
많은 장신구 중에 내 마음에 쏙 든 것은 우연히 들린 사찰에서 받은 합장주였다. 그 당시에는 염주가 어떤 의미인지 알 턱도 없었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차고 다니기 아주 좋은 팔찌정도였을뿐.
그렇게 의미도 모르는 합장주는 퍽 오랜 시간동안 나와 함께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 비로소 친구처럼 함께 해왔던 합장주 (염주)에 대한 의미를 사찰에 와서 알게 된 것이다. 참 재밌고 신기한 인연아닌가.
"여러분, 염주는 수행의 도구예요. 염불 할 때 횟수를 기억하는데 쓰이기도 하고, 염주 한알을 굴릴 때마다 번뇌를 끊어내는 것을 의미하고요. 염주의 가운데 뚫려있는 구멍은 번뇌의 근절을 나타내고, 하나의 실로 꿰는 것은 관세음부살의 자비를 나타내요. 염주알 개수는 108 번뇌를 나타내는 108개, 보살 수행 54 계위를 나타내는 54개 등 각 개수마다 의미가 있습니다만, 오늘은 개수보다는 자신의 손목에 맞게 알을 꿸 거예요."
모두가 달뜬 표정이 되어 설명에 집중한다.
"그래서 오늘의 합장주는 저희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주려고 해요. 바로 소원을 하나씩 빌면서 알을 꿰는 거예요."
나에게 위로를 주었던 합장주를, 이제 템플스테이에 온 모두와 함께 만든다.
일에 지치고, 관계에 치인 어른들이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고 항이리 속 구슬을 골라 실에 꿴다.
번뇌를 모두 잊어버리고 오로지 지금은 하나,
고르고 꿰기만 하면 될 뿐.
합장주 시간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이 때 사찰에 온 법우님들의 경직되었던 마음이 풀어지고,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늘 처음 만난 여섯 명의 법우님들은 합장주를 함께 만들며 조금씩 어색함을 풀어간다. 나는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곁에 조용히 앉아 법우님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이 분들은 어떤 인연이 되어 오늘 이 날 사찰에서 만나 합장주를 만들게 된 것일까.
그때 한 법우님이 좀처럼 합장주를 만들지 못하고 고민에 쌓여 있자, 옆에 있던 다른 팀 법우님이 슬쩍 묻는다.
"왜 안 하세요?"
"아, 소원이 너무 많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귀를 쫑긋한다. 고민에 잠긴 법우님에게 과연 어떤 답을 해주실까 궁금하다. 곧 질문을 던진 법우님이 씩 웃으며 말한다.
"그냥 다 비세요. 길면 목에 차면 되죠."
모두가 법우님의 답을 듣고 하하 웃었다. 소원이 너무 많아 고를 수 없어 고민하던 법우님도 귀엽고, 아주 손쉽고 명쾌한 답을 내준 법우님도 대단하다.
법우님의 답을 들으니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 어려운 문제라고 답 또한 어려울 것은 아니라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가볍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우리는 어쩌면 그런 굴레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은 문제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진 않은지.
한창 열심히 합장주를 만드는 법우님들에게 나는 "썰"을 푼다. 굳이 썰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내가 배운 지식을 조금 더 알기 쉽고, 현대식 표현으로 재밌게 하려는 의지가 담긴 단어기 때문이다.
"염주에 대한 기록은 경전에도 나와 있어요. 불설목환자경을 보면 비사리의 왕 파유리가 사신을 보내서 부처님께 여쭙는거에요."
서두를 들은 법우님들의 표정은 별 반응이 없다.
"부처님, 저희 나라가 작은 나라라 맨날 적이 쳐들어오고, 먹고 살게 없어서 제가 걱정이 너무 많거든요?"
합장주를 만들던 법우님들의 고개가 일제히 올라가며 나와 눈을 맞춘다. 표정은 '지금 그거 염주에 대한 이야기 맞죠?'하는 듯하다.
"그래서 수행할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좀 더 쉽게 수행할 방법은 없을까요?"
"엇, 그 시대에도 나같은 사람이 있었어."
한 법우님이 말하자, 모두가 꺄르르 웃는다.
"그 고민을 들은 부처님이 말씀하셨죠. '응? 그래? 그러면 염주를 만들어서 돌리거라'"
"와, 대박."
참가자 중 제일 나이가 어렸던 법우님의 입이 떡 벌어졌다.
"'목환자 열매 108개를 꿰서 불,법,승을 외며 염불하면 번뇌를 끊고 열반으로 갈거야' 부처님의 답을 들은 파유리 왕은 염주 1,000개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해요."
법우님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 중에 이야기를 듣고 제일 놀라워했던 법우님의 표정이 심상치않더니,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지금 부처님한테 감동 받았잖아요."
"하핫, 어떤 점에서요?"
"아니, 솔직히 수행이라고 하면 어려워도 참고 막 견디면서 해야할 거 같은데. 대 놓고 수행 할 시간없으니까 쉽게 하는 법 좀 알려달라 그러면, 제가 부처님 같으면, '야, 넌 글렀다' 이럴거 같거든요?"
법우님의 말에 모두가 웃으며 자기도 그랬을 거 같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부처님은 화를 내기는 커녕, 정말 그 방법을 알려주신거잖아요. 한 명의 중생이라도 구제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런게 확 느껴졌어요."
"오, 그렇네요."
법우님의 부처님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나 또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깨달았다.
'아,그렇구나. 염주에는 한명이라도 더 중생을 구제하고, 이끄려는 부처님의 마음도 담겨 있던 거구나.'
깨달음은 참 생각지도 못한 곳에, 하지만 늘 주변에 있었다.
실에 구슬을 꿰는 것.
그 간단한 행동에도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마음에 드는 구슬을 하나씩 찾아내어 일렬로 늘어놓는 사람, 한 손에 구슬을 몇 알을 쥐고 하나씩 꿰는 사람, 하나의 색으로 통일하는 사람, 한 알마다 다른 모양과 색으로 꿰는 사람등.
사찰을 찾은 한 커플 법우님들도 그랬다.
"저희는 만난 지 이제 십 년이 되어가요."
커플 법우님은 각자의 합장주 만들기에 집중하며 말했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여자친구의 말에 남자친구가 뒤따라 덧붙인다.
"그때마다 화해하기도 했고요."
두 법우님이 맑게 웃는데 그 표정이 너무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은 알까? 자신들의 행복해하는 표정이 똑같다는 것을.
"자, 두 분 합장주 완성됐어요."
여자법우님의 합장주는 검은색 알로 맞춘 것이었고, 남자법우님의 알록달록 구슬로 만들어졌다. 두 법우님의 취향 차이가 이렇게나 다른데 십 년을 만났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다.
그때 검은색 합장주를 남자 법우님이 자신의 손목에 찼다. 그러자 정말 다르다고 생각했던 두 개의 합장주가 만나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쌍의 합장주가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일까.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이렇게 만나고 의외로 잘 어울리면서 맞춰가는 것.
남자 법우님이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여자친구에게 말했다.
"이거 나주라."
여자 법우님은 그저 사랑스럽다는 듯 눈을 맞추며 답한다.
"너 주려고 만든 거야."
아, 오늘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나는 세상을 배웠다.
(... 그런데 두 분, 여기 저도 있어요.)
사찰에서는 정숙해야 한다지만, 제 직장 생활은 우당탕탕 인걸요. _ 계속
생생한 우당탕탕의 근무일지가 보고 싶다면, 인스타그램 @woodangtangtang_tem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