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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Nov 24. 2020

운전: 세상에서 가장 손재주 없는 사람의 면허 도전기

모성애가 이렇게 대단한 것이었다니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잔뜩 사놨음에도
브런치에 영광스럽게도 글을 쓸 수 있는 내 공간이 생겼음에도
밤마다 맥주 한 캔에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집중이 안됐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책도 하나도 읽히지 않았고, 브런치에 글 쓰는 건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 모든 건 다 운전면허 때문이었다.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요즘 세상에 운전면허 없는 사람이 어딨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랬다.

내가 면허를 못(안) 딴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나는 운전을 못해서 불편하다는 생각을 거의 못하고 살았다.
지하철로 강남까지 39분이면 도착하는 역세권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동이 불편하지 않았다.
대형마트도 도보로 이용 가능하고, 도서관, 아이 학교 등 모든 것이 근처에 있다. 오히려 지독한 도로 정체보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것이 급한 내 성격에는 더 잘 맞았다.
그리고 남편이 면허가 있으므로, 차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남편이 늘 데려다 주어 큰 문제가 없었다. 이는 아이가 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병원을 갈 때도 늘 남편이 데려다주었으므로, 나는 어쩌면 정말 편하게 살았던 것 같다.

두 번째는, 나의 소심한 성격 때문이다.
사실 나는 필기시험만 세 번을 쳤다.
필기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늘 면허를 따리라 마음을 먹고 시험을 본 후, 운전면허 학원 앞에만 가면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맨날 학원 앞에서 서성이다가 "에이 다음에 등록하지 뭐" 생각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필기만 세 번 쳤고, 학원에서 망설이다 "내일 하자!"를 외치며 돌아온 게 세 번이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손재주 없는 걸로 등수를 매긴다면 아마 세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손재주도 없거니와 물건을 맨날 부수고 잃어버리는 똥 손 중에 똥 손이다.
그래서, 변명 반 진심 반 운전면허를 따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의 교통사고를 줄이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무서웠다. 운전면허는 단순한 자격증이 아니다. 사람의 목숨이 오고 가는, 그래서 신중하게 임해야 하는 강력하고도 무서운 것이다.

그런 내가, 내 발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운전학원 등록을 했다.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은 의외로 아주 단순한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내 딸은 우리 집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어학원에서 영어수업을 듣는다. 그런데 규모에 비해 주차장이 협소하여 학원에서는 최근 영어유치원 어린이들을 제외한 수강생에게 차량을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랑 버스를 타고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일주일 두 번, 하루에 2시간 수업인데 나는 아이가 학원을 들어가면 학원 옆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차를 마시면서 책도 읽었다. 나만의 시간을 갖는 거라 즐겁기도 했지만 가끔은 피곤해서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아이를 위해 그 정도는 인내해야 했다. 가끔 차로 아이 학원을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가서 쉬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와 학원을 가면서 손을 잡고 가는 그 길이 즐겁기도 했다.

그 날은 이른 추위가 밀려온 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아이의 손이 시릴까, 주머니에 손을 꼭 넣고 종종걸음으로 아이를 데려다줬다.
두 시간 후, 나는 바깥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서인지, 학원 앞에 엄마들이 차를 쭈욱 주차시켜놓고 아이들을 한 명씩 태워갔다. 내 딸은 그 모습을 부러운 듯 쳐다봤지만, 엄마가 면허가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의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연신 춥다고 하면서도,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짧은 찰나에 아이의 눈에서 부러움과 피곤함을 읽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아이의 그 눈빛이 왜 인지 잊히질 않았다.

그랬다. 내 아이는 비가 오는 날도, 미세먼지가 심한 날도, 칼바람이 부는 날에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나와 함께 걸었다. 하지만 아이도 힘들었을 것이다. 가끔은 면허가 없는 엄마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차로 데려다주는 다른 엄마들이 부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면 엄마가 분명 속상해할 것이 뻔하기에, 혼자 생각만 하고 삭히던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파도처럼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 파도는 분명 태풍보다 더 강하고 센 그 무엇이었다.

나는 그 날 잠을 한 숨도 못 잤다.
아이를 8년 키우면서 느낀 가장 이상하고도 큰 미안함, 그 이상의 감정이었다.

다음날 나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운전면허 필기 문제집을 샀다. 사실 문제집을 사면서도 자신은 없었다. 또다시 학원 앞을 서성이다 집에 가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필기시험을 치고 싶었다. 이상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필기시험을 무사히 치렀다.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운전학원이 있다. 한 손에는 필기 합격증을, 다른 한 손에는 두려움을 쥐고 학원 앞으로 일단 갔다. 사람이 엄청 많았다. 기능시험을 치는지 연신 스피커에서는 합격입니다. 불합격입니다. 실격입니다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5분 정도 고민하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무작정 등록을 하고 결제를 했다. 결제를 해야, 내가 학원을 다닐 것 같았다. 아무래도 살림을 하는 입장에서 결제를 하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무작정 결제를 해버렸다. 결제되었다는 문자를 보니 불안하면서도 이유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 이제 운전을 배울 시간이야.






학원 첫날, 나는 속으로 한없이 욕을 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자동차는 왜 아직도 이렇게 복잡한 구조인가. 우리나라부터 세계 각국의 자동차 브랜드까지 싹 다 욕을 했다. 아니 아니, 자동차를 처음 만들었다는 1770년의 그 누군가에게 까지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기능 수업은 4시간 만에 종료된단다. 나는 똑바로 가는 것도 힘든데, 우회전 좌회전은 왜 안 되는 것이며 주차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전진도 안되는데 후진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이걸 어떻게 4시간 만에 다 마스터를 하라는 것인가. 나는 지금 전조등을 끄라고 하면 켜고, 좌회전 깜빡이를 켜라고 하면 우회전 깜빡이를 켜는 수준이란 말이다.

선생님한테 혼이라는 혼은 다 나고 그날 밤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새벽에 혼자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보면서 남편 차에 앉아서 하나씩 만져보고, 운전하는 시늉을 해 보았다. 그다음 날 학원에 가서도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그때 느꼈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자신감과 두려움이었다. 남편 차에 앉아서 그것을 떨치기 위해 정말 무던히 노력했다. 내 아이를 생각하자, 아이를 위해서 뭐든 해보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기능 시험은 토요일에 있었다. 일부러 일찍 학원에 도착해서 다른 사람들이 시험 치는 모습을 열심히 구경했다. 참 많은 사람들이 합격하고 실격을 당했다. 심장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기분이었다. 도망치듯이 근처 약국으로 달려가 우황청심원을 마셨다. 남편이 귀엽다는 듯 깔깔 웃었다. 남편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을 치라고, 떨어지면 또 응시하면 된다고 나를 토닥였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황청심원이 이렇게 효과가 없는 약이었던가. 심장은 이미 하늘로 솟구쳐 사라지고 없었다. 너무 초조해서 시험장을 계속 왔다 갔다 반복했다. 오죽하면 시험관 아저씨가 제발 좀 앉으라고 할 정도로.

그리고 나는, 시험을 쳤다.
처음 출발할 때 좌측 깜빡이를 켜지 않아 5점 감점됐다. 그 이후부터 머릿속이 온통 까맣게 변했다. 어떻게 시험을 쳤는지 모르겠다. 일부러 말을 내뱉으면서 코스를 돌았다.
나는 95점으로 합격했다.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도착지점에서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라는 소리를 들으니 얼떨떨했다. 오히려 남편이 나보다 더 기뻐했다. 아이는 이제 엄마 차 타고 다닐 수 있는 거냐며 웃었다. 아, 너 역시 엄마가 면허가 있었으면 했구나. 그걸 왜 나는 이제야 알아차린 건지. 아이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렇지만 아직 아니야 딸아. 아직 도로주행이 남았어.......




도로주행은 12월이 넘어서야 수업이 가능하단다. 나는 여전히 운전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유튜브를 보며 학습 중이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기특하다. 내가 운전면허에 도전을 하다니. 그리고 그 도전 너머에는 아이를 향한 사랑이 있었다. 영원한 숙제 같던 면허를 아이 때문에 도전하게 되다니.

아이가 나를 도전하게 해 주었고, 무한한 응원과 믿음을 주었다. 나는 아이에게 응답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도로주행도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오직 내 아이를 위해서.

그나저나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이제는 책도 좀 읽고 마음을 좀 놓아봐도 되겠지?
도로주행이 무서우면서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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