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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Jun 18. 2024

희귀한 취미가 될 '독서?'

< 욕구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



낯선 남녀가 앉아있다.

어색하게 흐르는 공기 속, 남자가 드디어 할 말을 찾은 듯 말을 꺼낸다.


“취미가 뭐예요?”

여자는 수줍게 미소 지으며, 준비된 답변을 한다.


“독서요.”     


예전엔 소개팅이나 미팅에서 취미를 묻는 질문에 '독서'가 참 많았다.

나 또한 예전엔 취미가 '독서'인 사람이었다.

많은 부분을 책에 의존하며, 책에서 답을 구하고자 했었다.

그래서, 서점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고, 종이책 특유의 냄새를 좋아했다.     

요즘은 책 읽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줄어, 독서가 희귀한 취미가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1년에 책 한 권 이상 읽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43% 라고 한다.

전자책, 오디오북을 제외한 종이책 독서율은 32% 정도라고 하는데

독서율이 급감한 가장 큰 이유는 모두가 예상했듯 바로 '유튜브' 다.

하지만, 블로그나, 수많은 독서모임을 보면, 열심히 읽는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꾸준히 책을 읽는다.     


사실, 독서의 힘을 믿은 건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세종 때에는 특별휴가를 줘서 책을 읽도록 독려하는 '사가독서(賜暇讀書) 제'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한가한 절이나 집에서 독서를 하도록 권했으나 성종 때에는 

예문관을 설립해 중단되었던 사가독서를 부활시켰다. 필요한 비용은 모두 나라에서 대줬고 

임금이 음식을 내려 격려하기도 했다고 한다.

헌데, 지금 우리는 점점 책을 멀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나의 욕구 찾기 일환으로 '독서토론모임'에 들어갔다.

'친목 모임이 아닌 순수한 독서토론 모임'이라는 리더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일단 시작하면, 중도에 그만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신중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그냥 해보자 싶었다. 그야말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편식해서 읽다 보니 다양한 책을 접하지 못하게 되고

어느 순간 독서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독서모임에서는 <박완서 작가의 책 읽기>가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처음 접한 책은 박완서 작가의 첫 장편소설 <나목>이었다. 

거장 박완서 작가의 책은 너무나 오래전에 읽은

<아주 오래된 농담> 외에는 접한 적이 없어,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곧 충격을 받았다. 작가의 유려한 필력에 놀라고, 작가의 통찰력에 또 놀랐다. 

시대적 상황은 달랐지만, 지금 시대에 비추어도 너무나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 괜히 거장이 아니었구나. 나는 이 좋은 책을 이제야 읽는구나' 하는 반성이 함께했다.


발제문은 세 가지였고, 발제문에 대한 답변을 나름 정성껏 정리해서 가져갔다.

이 정도면 나름 괜찮지 않을까 하며 첫 북 모임에 참여했다.

회원은 나까지 모두 9명. 연령대는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그곳에선 이름대신

닉네임을 썼다. 

회원들이 모이고, 간단한 인사를 한 후 바로 독서토론이 시작됐다. 

발제문에 따라 한 명씩,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시간, 나는 한 명 한 명의 의견을 귀담아 

들었다. 

나와 비슷한 의견도 있었지만,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의견도 많았다. 

그런 의견들을 접할 땐, 마치 책을 읽다 기가 막힌 문장을 만난 듯, 설렜다.    

 

' 이분들은 진짜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구나! '


깊이 있는 사유는 단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많은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하면서 보는 눈이 길러지고,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는 것이다.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이야?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카프카는 '책은 도끼'라 했다. 또한, 책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읽는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얻는 행위지만 더 나아가 읽기를 통해 우리는

특정한 형태로 변화되어 간다 믿은 것이다.




최근엔, 독서모임 회원들과 워크숍을 위해 북스테이에 다녀왔다.

독서토론만 하다가 처음으로 갖은 사적인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다가오면, 그 사람의 역사가 함께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 가치관, 현재 느끼는 즐거움 내지 고충,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이 몽글몽글해졌다.

사람이 태어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새삼스럽게 경이롭게 느껴졌다.

우린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애쓰며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책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다.

나는 이곳에서 지적 유희를 만끽하며, 나의 욕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책이 희귀한 취미가 될 거라는 경고가 틀린 경고이길 바라며.

가족들이 잠든 밤, 어두운 불빛 속에서 혼자 책 읽는 시간을 즐긴다.

책이 나의 편협한 생각과 좁은 시야를 깨는 도끼가 되어주길 바라며.


다음 모임에선 또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까?

책과, 사람이 함께 하는 시간, 요즘 나에겐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다시, 책이 좋아지고 있다.   

  

“한때 네가 사랑했던 어떤 것들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된다.

네가 그것들을 떠나보낸다 해도 그것들은 원을 그리며

너에게 돌아온다. 그것들은 너 자신의 일부가 된다.”

-엘렌 긴즈버그 <어떤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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