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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Jun 23. 2024

엄마와 콩국수

< 삶의 다정한 목격자 >


반백살이 되니 생일에도 감흥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에게 할 말을 해야겠어 전화를 걸었다. 


“엄마, 자식도 많은데 키우느라 고생 많으셨지?

낳아줘서 고마워”


엄마가 피식 웃으신다.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은 언제부턴가 생일마다 엄마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준비되지 않았던 또 다른 말이 툭 튀어나왔다.


“엄마가 낳아준 인생, 소중히 생각하며 잘 살게.”


그러자 잠시 말이 없던 엄마가 목멘 목소리로


“고맙다” 하신다.


잠시 침묵.

엄마는 강낭콩을 까고 계신다며, 다음에 오면 주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완두콩을 주셨다.)

그렇게, 짧은 통화가 끝난다.

그래도 할 말은 한 거 같아서 내심 마음이 후련하다.

말로 내뱉고 나니, 다짐은 더욱 묵직해진다.

엄마에게 한 약속처럼 잘살아 봐야지 싶어 진다.    

 


그리고 이주 뒤, 

팔순을 앞둔 엄마의 생일. 

엄마와 저녁을 먹고 집에 가려고 차에 타려던 찰나 

어둠 속에 서 계신 엄마를 보고 달려가 엄마를 안았다.

근육이 빠져나가 왜소해진 엄마가 품에 쏙 들어오는 듯했다.


“엄마, 태어나 줘서 고마워. 많이 사랑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엄마에게 낯간지러운 말을 잘하게 되었다.)     


팔순을 앞둔 엄마가 “우리 막내가 최고네” 하신다.

그런데 오늘은 마음이 후련하지 않다.

되려, 마음이 아리다.

생각해 보니, 엄마는 “나를 낳아줘서 고마워”라고 할 엄마가 없다.

너무 오래전에 엄마를 떠나보낸 엄마는, 그 부재와 상실감을

어떻게 견뎌내셨을까.

그 많은 시동생과 시누이에 시어머니까지 모시며 힘든 날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엄마도 한 엄마의 아이였음을 잊고 지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손수 갈아준 콩국물로 콩국수를 해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콩국수 중 가장 맛있는 콩국수다.

오래오래 잊지 못할 맛이 될 거 같다.     


작가 문요한은 인간관계가 어려운 것이

‘상대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보지 못해서’, 다시 말해 우리가 

‘자기 중심성’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전히 어렵다.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왜 저렇게 말씀을 하실까? 뜨악할 때도 많고,

엄마처럼 내 딸에겐 안 할 거야 다짐도 하지만..

내년 생일에도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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