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때의 기억이 있다. 지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5살에 처음으로 유치원에 가서 그곳에 있던 기린 모양의 미끄럼틀에서 친구들과 놀았던 때이다. 아직 유치원에 안가도 되는 나이였지만, 형도 이미 다니고 있는 곳이라 1+1처럼 함께 갈 수 있었다. 그 유치원은 나랑 성이 같은 원장선생님이 계셨고, 당시 안경들이 다 그랬던 건지 사각형의 아주 큰 렌즈에 금테로 된 안경을 쓰셨다. 아마도 40대 정도 되셨을텐데, 어린 내 생각에는 할머니처럼 느껴졌었다. 엄마보다 나이든 여성은 다 할머니라고 생각했던 때였다.
다른 선생님들도 계셨는데, 아마도 이십대 초반의 선생님들이었을 거다. 종종 그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자기의 나이를 알아맞춰 보라고 퀴즈를 내셨고, 순진한 우리들은 50에서 1000살까지 말도 안되는 답을 외쳤다. 피부도 하얗고 날씬한데다 키도 크신 선생님들이었는데 아이들은 나이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그냥 아무 숫자나 부른 것이다.
남자 선생님도 한 분 계셨는데, 내 기억에는 피부가 검고 장발머리에 덩치가 아주 큰 선생님이었다. 시설관리도 하시고 운전도 하셨고, 아이들과 체육활동을 주로 맡아서 하셨다. 단체로 나들이 같은 걸 나가면 항상 아이들을 통제하고 장난치지 못하도록 혼내는 역할을 하셨다. 자주 했던 말 중에는 "말 안듣는 녀석들은 저기 나무에 묶어두고 갈거야" 같은 협박성 말이었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이들의 장난은 더 심해졌다. 애초에 장난으로 한 말인걸 알기 때문에 장난이 통제가 안된 것이다.
유치원 소풍은 정말 즐거웠다. 근처 공원으로 간 소풍임에도 엄마와 함께 하는 것이라 더 의미있었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내가 봐도 너무 해맑게 웃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실에 양파링 같은 과자를 매달고 손을 쓰지 않고 입으로만 과자를 먹고 오는 게임을 했는데, 사진을 보니 나는 손으로 과자를 먹고 있었다. 접시에 담긴 밀가루 속 사탕을 먹는 게임은 확실히 기억난다. 나는 스카치 캔디보다 밀가루를 더 많이 먹었다.
어렸을 때의 사진은 내 오래된 앨범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필름시절의 사진이라 한장한장이 참 귀하다. 지금 나는 그 때의 나보다 더 큰 아이들의 아빠가 되었고 우리 아이들의 사진은 인화되지 않은 채로 외장하드에 저장되어 있다. 한장한장 너무 귀한 사진들인데 자주 꺼내보진 않게 된다.
다섯살 이전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아이들도 더 크면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앨범을 꺼내는 것처럼 아이들은 나중에 외장하드를 뒤적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과거의 듬성듬성한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보려 할것이다. 그 때 우리 아이들에게도 지금 내가 그렇듯 즐겁고 따스했던 기억들이 떠올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