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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Jul 08. 2024

난 곳을 잃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하여 (해외이직기)-8

인생 2막, 머나먼 유럽에서

시간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갔다. 20대는 그렇게 속절없이 30대가 되었다. 겹겹이 쌓인 모순을 보니, 직장도 직장의 그 사람들도 그리고 나도 다 문제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 화들짝 놀랐다. 내일 없는 이런 오늘이 다시 나의 내일이 될 것만 같아서. 나는 '그때'의 나도 아닌 것만 같다. 나는 나를 이대로 잃는 건가? 안간힘을 쓰던 나는 어디로 갔나. 나는 나를 위해 어디로 가야 하나, 아니 무얼 해야 하나. 느렸던 내가 언제 이리 급해졌나. 머리가 아찔하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은데, 모순을 모순해야 하는 것과 다른 건 무엇일까.


8편 


"우리는 장소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바꾸기 위해서 여행한다"

장 피에르 나디르, 도미니크 외드  [여행정신 中]


1.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고자 나는 직장을 여러 번 바꿨었다, 더 정확하게는 장소를 바꿨다가 맞을 테다. 나는 각 직장에서의 시간들을 하나의 여행이라고 생각해 왔다. 직장이 장난이냐? 란 말은 하지도 마시라. 직장이 가지는 그 무거움과 버거움 그리고 위태로움 이전에, 그 각각의 시간은 우리의 삶이다. 그저 살아가는 삶일지라도, 그 삶이 장난일린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라 생각했다. 여행은 언젠가 끝나는데 매력이 있다. 여행이 무한한다면, 우리는 여행 그 본연의 유한함에 대해서 깊이 생각지도 않을 테다. 직장기와 여행기가 다르지 않다면, 우리의 태도도 다르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직장에서 맞이하는 정년 은퇴, 그 무한해 보이는 듯한 유한함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어쨌거나 끝나기 마련인 여행이기에. 돌아갈 곳이었던 나의 고향이 나의 추억이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2. 바다를 품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갑갑함을 좀처럼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출퇴근 시간의 2호선을 탈 때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생각에 눈물지어지기도 했다. 그 갑갑함과 답답함을 달래기에 한강은 내게 너무 낯설었고, 너무 멀리 있었다 아주 저 멀리. 하지만 나는 분주해야만 했다. 남들보다 부지런해야만 했고, 남들과는 달라야만 했다. 나의 시계는 그래서 항상 빨리 움직여야 했다. 서울이란 도시가 주는 무게는 적어도 내겐 그랬다. 5시  15분(기억이 가물하다) 첫 차를 타고, 새벽 수영을 갈 때도 이미 지하철은 출근하러 가는 어르신들로 만석이다. 새벽 6시의 수영장은 마치 오후 6시처럼, 수많은 직장인들로 이미 발디딜 틈조차 없다. 강습이 끝나자마자, 혹시나 지각이라도 할까 싶어 샤워실에서까지도 다들 항상 경쟁이다. 

 이 도시에서 내 자리를 지키는 것조차 버겁다는 것을 느낀 것도 아마 이때부터였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야 하는데,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수 없어만 진다. 이런 삶을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좋아하기엔, 이 여행은 내게 너무나 길었다. 좋아해서 하던 것이 의무감이 된 것도 그때쯤부터였을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리란 기대를 가진  것도, 이 여행을 끝내야 되겠단 생각을 가진 것도. 다음 여행에 대한 기대는 그래서 무척이나 컸다. 장소를 바꾸면 모든 게 해결될 거란 아주 순진무구한 생각을 가진 것 또한 말이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실망이 되기도 실수가 되기도 한다.  


3. 고향에서 시작된 다음 여행은 운명처럼 찾아왔다. 하지만 이 또한 장소를 바꾸기 위한 여행이었음을 우둔한 나는 늦게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꽤 괜찮은 명함과 정년보장이 약속됐다면, 그것도 고향에서 가능하다면 최고의 선택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포장지일 뿐이다. 아니, 어쩌면 허구일지도 모른다. 수십 년 동안 구조조정 한번 없이, 매년 정년퇴직을 하는 곳이 숨 막히게 갑갑하고, 숨 막히게 변함없는 곳임을 직접 들어가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밖에서 그토록 원했던 장소가, 숨 막히게 떠나고 싶은 장소로 바뀌는 데는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바다를 업으로 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태초의 바다와 지금의 바다가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딱 그 간극만큼의 변화를 필요로 했던 곳인 거 같다. 생존을 위해 뛰어야만 했던 내가 억지로 걸어야만 했던 곳, 아니 멈춰 서야만 했던 곳.

  장소가 바꾸는 것은 여행이 아니었다. 쉽사리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멈춘 시간에 오직 변해지는 것 또한 나였으니. 고향의 모순이다. 이 현실을 정말 부정하고만 싶은데 부정할 재간이 없다. 고향을 다시 떠나야만 했다. 고향이 그리워서 왔지만, 고향을 위해서 고향을 떠난다. 결국 모순의 모순이다. 적고 보니, 너를 사랑해서 떠난다로 읽힌다. 사랑하는데 떠날 수 있나? 그런 사랑도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준 것 또한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해야하나.

 바라볼 때만 아름다운 것들도 있다. 나의 고향도 내겐 그랬다.


9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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