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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즈플 Nov 16. 2023

층간소음이 걱정이다

편두통의 시작 01




아파트.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살아본 적 없어 어색하기 그지없습니다. 잘 살 수 있을까요?

아, 이렇게 말하자마자 또다시 위층에서 쿵쿵 발망치소리가 들립니다. 오늘 아침에는 제 알람이 아닌 윗집 핸드폰 진동 소리에 깼습니다. 아니, 아니죠. 이 주제는 지금 꺼낼 게 아닙니다. 이제 이사 온 지 일주일째. 적응되면 이 소음이 좀 익숙해지려니 하고 좀 더 참아보겠습니다.



이사오기 전 가장 먼저 구입한 것은 다름 아닌 슬리퍼입니다. 층간소음용 슬리퍼.


층간소음이 너무나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당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끼치는 것도요.  제 오래된 편두통의 원인이 바로 층간소음입니다. 때는 중학교 2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경기도 이천에서 옆동네인 광주로, 또 서울로 올라온 가족들은 방 2개짜리 빌라의 2층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집에 적응하기도 전, 1층의 가족들이 시도 때도 없이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유는 '층간소음'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아 어머니와 삼 남매만 집에 있었는데, 어머니도 낮에는 화장품을 팔러 밖에 나갔습니다. 주로 아이들만 있는 집이 아랫집은 퍽 우스워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 가족들은 낮에도 청소기를 돌리면 시끄럽다고 딩동, 세탁기를 돌리면 딩동, 걸어 다니면 딩동 딩동 벨을 울렸습니다. 우리가 밤에 가구를 돌린다던지 뛰어다녀 층간소음을 유발하면 모르겠어요. 평일 한낮에 청소를 하거나 걸어 다니는 소리 하나하나가 거슬린다는 이야기를 하고 화를 내니, 처음에는 웃으며 죄송하다고 받아주던 가족들도 나중에는 노이로제에 걸렸습니다. 


그들은 집안에 재수생 딸이 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예민하게 굴었습니다. 다른 이웃들이 말해주었는데, 알고 보니 1층 사람들은 그 빌라에서 유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전 집도, 그전 집도 아랫집 사람들 때문에 나갔다더군요.


"우리 애가 하루종일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데 당신들 때문에 대학 떨어지면 책임질 거예요?"

"큰 딸이 스트레스받아서 우리한테 짜증을 내잖아! 어떡할 거야!"


항상 따지러 와서 하던 말이 저 말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대학을 준비하기에? 그렇게 시끄럽다면 그냥 독서실을 가면 될 텐데? 유치원생이던 남동생은 꼭지발을 들고 살금살금 걸어 다니는 습관이 생겨 어린이집에서 상담요청이 왔습니다. 우리도 소리에 덩달아 예민해졌습니다. 하지만 청소나 빨래를 안 하고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폭발하게 된 계기는 그들이 우리에게 화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였습니다. 옆집 할머니가 집에 들어오는 우리를 잡았습니다.


"너희 아까 집 문 안 열어줬니?"

"집에 아무도 없을 시간인데요?"

"30분 전에 시끄럽다고 한창 문 두드리고 또 소리 지르다가 내려갔어."


나는 보란 듯 문을 열어 옆집 할머니에게 집안에 사람이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없는 집에서 소음 유발이라니. 다음에 오면 분명히 따져야겠어! 하고요.


과연 화가 단단히 난 저는 어떻게 했을 것 같나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힘없고 소심한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까요. 중학교 2학년에게 아줌마 아저씨는 너무 무섭고 커다란 존재였습니다. 그들이 화내고 윽박지르는 소리는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고, 제가 움츠러들게끔 했습니다. 소심하게 "그, 그날 집에 없었는데요." 한마디 했다가 거짓말을 친다며 더 길길이 날뛰는 모습에 더 항변하지도 못했습니다. 


압니다, 바보 같은 거. 그런 제 모습이 스스로도 한심했습니다. 괜히 그들이 가고 나면 센 척하며 동생들 앞에서 "한 번만 더 와봐. 혼쭐을 내줄 거야!"하고 화를 냈지만, 동생들 눈에 제가 어떻게 보였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은 제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었나 봅니다. 아마 집과 학교에 둘 다 적응하는 게 힘든 탓이 컸을 거예요. 탈이 나도 단단히 났습니다.



"엄마, 엄마 나 아파."


엉엉 울며 새벽 한 시에 들어와 겨우 잠든 엄마를 깨웠습니다. 비몽사몽 한 엄마의 눈앞에 펼쳐진 건 토바다였습니다. 거실의 난장판을 본 어머니는 아파서 우는 딸의 등짝을 때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지만, 그때는 아파 죽겠는데 저를 때리는 엄마가 밉고 서러웠어요. 엄마는 거실을 치우고, 나는 또 화장실에서 토하다 잠들었습니다. 다음 날 엄마가 손을 마사지하며 "많이 아파?"라고 묻는 말에 더 서러워져 또 울었습니다. 엄마는 그날 출근을 하지 않고 저를 간호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엄마의 설거지 소리가 시끄럽다고요.


"이봐요! 작작 시끄럽게 하라고요!"

"우리 애가 시끄럽다잖아! 도대체 몇 번째야!"

"아니, 서서 설거지만 하는데도 시끄러우면 어떡하라고요!"

"나중에 해! 우리 애 공부 끝나면!"

"지금이 저녁 일곱 신데 나중에 언제 하라는 거야, 이 사람들아!"


그들의 떽떽거리는 목소리에 두통이 시작되었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마치 뇌수막염 때처럼 아팠습니다. 저는 뇌수막염을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앓았는데도 제법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두통 탓에 눈을 뜨지 못하고, 뇌가 팽팽하게 커져 머리뼈가 터져나갈 것 같습니다.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려야 그나마 제일 지끈거림이 덜합니다. 집안의 가구들이 작게 보이다가 크게 보이며 거리감이 사라지고, 땅이 울렁거립니다. 분명 머리만 아파야 하는데 온몸을 함께 때리는 것 같은 두통입니다. 그 두통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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