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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무개 Jun 30. 2024

불황에서 깨달은 것



호황 때는 모두가 너그럽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손대는 모든 것이 과실을 맺었고, 누구나 자신의 통찰과 실력을 과신했다.

그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바보 소리를 들었고 모두가 불나방 같았다. 언젠가는 이 호황도 분명 끝날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 끝에 서 있게 되는 것은 적어도 나는 아닐 거라 생각했었다.



긴 호황이 끝나자 순식간에 뻘이 드러났다. 너무나 순식간이라서 무리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증발했고, 대부분 불황을 맞이할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벌거숭이가 되어 뻘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아비규환

IMF때도 이보다는 나았다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때는 쓰러진 자는 쓰러졌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불황 속에서 기회를 찾아 우뚝 섰기에 회사는 망해도 곧 새로운 주인이 나타났고, 사업이 잘 못 되어도 누군가는 새 물을 부어 다시 일으켰다고들 한다.

IMF가 실제로 지금보다 나았던 것인지 지금 너무 어려우니 가장 힘든 시기여야만 자기 합리화가 가능한 것인지 확언하긴 어렵지만 확실히 긴 호황의 끝에 드러난 뻘은 어둡고 황량했다.

내가 불황에서 배운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본성이고 관계였다. 나름 자기 성찰하는 인간이라 자부하므로 말하건대 나 또한 호황에 도취되었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길 수 있게 되었고, 내 안에 음험함과 나약함이 있음을 고백한다.

불황 앞에서 나는 처음엔 겸손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겸허해졌다. 시장 이기는 장사 없구나 깨달았고, 나약한 나를 직시하면서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쉽지 않지만 마음 다잡고 한 발 더 뛰어보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이보다 더 근성 있고 뚝심 있게 지냈던 적이 있었을까?

나는 올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의 민낯을 봤고 많은 사람을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잃었다. 그리고 잃은 사람의 수만큼 또 좋은 사람을 얻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지만 어려울수록 콩 한쪽도 나눠 먹는 사람들이 빛났다. 이가 없으면 선이 없다는 이 바닥에서도 이보다 선을 우선하고, 숫자보다 사람과 의리를 먼저 여기는 호인도 많다는 걸 깨달았다.

완전히 지쳐 쓰러질 것 같은 하루가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또 너무나 감사하여 불끈불끈 힘이 솟는 날도 있었다. 사람에 지쳐 염세에 찌들었다가도 사람 때문에 또 힘차게 하루를 나아갈 수 있었다.

불황에서 사람에게 상처받았지만 역시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 치유된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이 자리를 빌려 떠난 이들에겐 원망치 않는다 말하고 싶고, 새로운 희망과 힘을 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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