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필이면 많고 많은 프로야구팀 중에 1992년 때 우승하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한 롯데자이언츠의 팬이다. 나의 청춘은 (지금도 청춘이지만..) 롯데자이언츠와 함께 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와이프는 결혼 후에 나 때문에 롯데자이언츠 팬이 되었는데, 그때부터 그녀는 항상 불만이었다.
함께 유니폼을 입고 잠실 구장에 향하면, 항상 우리 쪽은 풀 죽어서 팀을 욕하고 있고 맞은편 상대방 쪽은 폭죽이 팡팡 터지고 으싸으싸 소리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고 환호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늘 나를 설득했다.
“여보 잘 봐바. 여보는 서울 사람이잖아. 그런데 왜 롯데 자이언츠 팬을 하는 거야? 두산 팬을 하거나 LG팬을 하면 얼마나 좋아?"
"야구를 안 보면 안 봤지 다른 팀을 응원할 순 없어" 하며 단호하게 말하는 나를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심지어 그녀는 아기가 태어나자 '수저 이론'을 여기에 적용하며 나를 설득하기도 했다. 이 때는 사실 잠시 마음이 떨리긴 했다. 그녀는 말했다.
"여보 생각해 봐. 여보가 맨날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하고 있으니까, 공주는 당연히 롯데자이언츠의 팬이 되겠지?"
"어 그렇겠지! 유니폼도 사주고 경기장도 가끔 같이 가자 호호호"
"그런데 생각해 봐. 여보는 여보가 선택한 결과이지만 공주는 뭘 잘못해서 태어날 때부터 동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거야?"
"무슨 소리야 동수저라니 여보?"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다른 팀은 승률이 60%인데 롯데는 보통 40%이잖아. 공주는 롯데 팬을 하면서 기뻐할 일보다 고통받을 일들이 훨씬 많다는 얘기야."
와이프는 공세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공주가 좀 커서 '아빠는 왜 서울사람인데 롯데자이언츠 팬을 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해?' "라고 따지면 여보 뭐라고 대답할래?"
"왜 태어난 아기에게 동수저를 물려주려 하는 거야?"
아.. 이건 좀 세게 왔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나 저렇게 말하나 롯데자이언츠의 팬이라는 건 일종의 종교처럼 나에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미 나의 청춘은 롯데자이언츠와 함께였기 때문이다. 개막전이 있을 때면 부산에 있는 롯데자이언츠 열성팬인 친구에게 티켓팅해놓으라고 하고, 부산을 내려가 개막전을 챙겨 볼 정도였다. 항상 6시 이후에는 핸드폰에 롯데자이언츠 경기 영상이 재생 중이었다. 그 울고 웃었던 기억들은 승률처럼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롯데 팬에서 다른 팀으로 옮겨가는 것은 여전히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불가능한 이야기였지만 나이가 점점 들어가며, 이상하게 야구에 대한 흥미는 나이에 반비례하여 조금씩 식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롯데의 성적도 참으로 처참해졌다. (롯데가 못해서 야구에 흥미가 식은 것인가 생각해 보았는데, 더 못할 때도
열성 팬이었던 거 보면 꼭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마침 코로나 시기까지 겹쳐 직관도 가지 못하게 되면서
더더욱 롯데에, 아니 야구 자체에 흥미를 잃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롯데에서 선수치고 상당히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불방망이를 자랑하던 이대호 선수가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20년 정도 팬 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를 뽑으라고 하면 송승준, 강민호, 조성환, 전준우 선수 등 다양한 선수들이 떠오르지만, 대부분의 롯데 팬들이 그러하듯이 가장 먼저 이대호 선수를 뽑을 것이다.
이대호 선수가 소프트 뱅크에서 돌아와 롯데자이언츠에 복귀하고 첫 경기 때, 일정이 꼬여 직접 관람하러 가진 못했지만 집에서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지켜봤다. 복귀전에서 팬들에게 꾸벅 인사하고 첫 타석부터 홈런을 때려내는데 내 눈물 창고 열기에 충분했다. 정말 스타는 대스타였다. 거기에 은퇴하는 시즌에도 그의 불방망이는 더욱 불타올랐다. 박수 칠 때 떠나는 모습까지도 정말이지 멋졌다.
아무튼 시간은 야속하게 빠르게 흘러 이대호 선수의 은퇴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대호 선수의 은퇴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고 싶었다. 아기가 너무 어리니 직접관람을 하러 갈 상황도 안되고, TV를 보여주지 않기로 한 우리 가족의 결심 상 TV로도 이대호 선수의 마지막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고민하고 있던 나를 보고, 와이프는 "여보가 그토록 사랑하던 선수의 마지막이니까 우리 가족들 다 같이 TV로 보자요. 치킨도 시키구"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 모두가 이대호 선수의 은퇴 경기 및 은퇴식을 보았다. 이것이 임영웅 콘서트 시청 이후 아기의 두 번째 TV 시청이었다. 아기 녀석에게는 등번호 10번 이대호 가 마킹되어 있는 내 유니폼을 입혔다. 내 유니폼 상의였으나 아기는 마치 롱원피스처럼 발만 빼꼼 나왔다. 우리 부부는 한 손에 치킨을 들고 아기는 한 손에 떡뻥을 들었다.
그렇게 이대호 선수의 은퇴 경기를 지켜보는데, 부끄럽게도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나왔다. 와이프는 "이대호 선수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되어서 너무 아쉬워서 그래?" 라며 물어보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20대, 기회만 되면 롯데자이언츠의 경기를 보러 여행을 떠나고, 어딘가에 이동 중에도 롯데자이언츠 경기를 핸드폰으로 시청하며 응원하던 나의 청춘이 저물고 있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노력을 해도 야구를 전처럼 그렇게 좋아하게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대호 선수는 그런 나의 팬심의 상징이었다.
20대의 풋풋하던 시절의 이대호 선수도 어느새 나이가 들어 선수 생활을 방점을 찍고 있었다. 나도 어느새 주변을 둘러보니, 나를 꼭 닮은 아기 녀석이 옆에서 TV중계를 보고 있었고, 부끄럽게 꺽꺽 거리며 울고 있는 내 손을 잡아주는 와이프가 있었다. 이대호 선수도 선수로서의 삶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나 또한 계속해서 롯데자이언츠의 팬으로 남겠지만, 옆에 앉아 유니폼을 입고 재롱부리는 아기를 보며, 내 불타는 청춘은 갔고 인생 2막이 새로 시작됨이 느껴졌다.
날이 좋은 어느 날, 아기에게 유니폼을 입혀서 롯데자이언츠 응원이나 한 번 가봐야 할 거 같다. 뜬금없지만 작은 지면을 할애해 꼭 이대호 선수에게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 덕분에 나의 청춘이 눈물과 환호로 가득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당신의 인생 2막을 응원합니다.